308호 | 음악이 있는 삶
어린 시절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된 나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불렀던 찬송가의 악보를 찬찬히 들여다보곤 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익히게 된 음악 기초 이론들이 있어 습관처럼 악보를 살펴보곤 했다. 찬송가는 4성부로 되어 있어 당시 나로서는 읽기가 어렵기도 했다. 어리고 단순한 생각에 빼곡한 음표들 속 쉼표는 찾아보기가 ‘참 어렵구나.’하며 작은 손으로 한 장 한 장 악보를 넘겨 보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억은 찬송가에 못갖춘마디의 곡이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를 펼쳐보면 1장(만복의 근원 하나님)부터 못갖춘마디의 곡으로 시작된다. 그외에도 19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27장 ‘빛나고 높은 보좌와’ 등 셀 수 없다. 못갖춘마디란 말 그대로 곡의 첫마디와 끝마디가 박의 수를 갖추지 못한 곡을 뜻하며 다른 이름으로는 불완전소절(不完全小節)이라고도 한다. 또 첫 박의 강세가 생략되어 여린 박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여린내기라고도 부른다.
가사가 있는 곡일 때, 가사의 강세와 높낮이를 악보에 그대로 반영해야 하므로 음악의 강세와 언어의 강세가 일치할 수 있도록 못갖춘마디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갖춘마디 곡의 악보를 보면 셈과 여림의 규칙에 따라 일정하게 묶어놓은 각 마디마다 정해진 박자표에 따라 일정하게 박자를 갖추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러한 갖춘마디와는 달리 못갖춘마디는 첫마디와 마지막 마디가 박자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데 재미있게도 이 둘을 합하면 정해진 박자표에 따라 갖춰진 마디가 되는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되어 비로소 완전하게 갖춰지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허물 많은 내 모습과 실수 많은 내 삶이 못갖춘마디로 시작하는 여린내기와 같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한다. 처음 복음을 만나고 많은 생각들로 좌충우돌하는 시간들을 보낼 때 나는 나를 더 다듬고 잘 갖추어 준비되면 그때 주님께 헌신하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 내게 주님은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신 27:6)라는 말씀으로 다가와 주셨다. “다듬지 않아도 돼. 아니 다듬은 돌은 오히려 부정해. 모나고 부족해도 괜찮아. 못갖춘마디, 여린내기여도 괜찮아. 갖춘마디가 가질 수 없는 멋과 맛을 내는 건 못갖춘마디, 여린내기라는 걸 알고 있잖아.”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주님께 헌신했고 그 이후 주님을 따른 지 수년이 흘러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못갖춘마디와 같다. 날마다 부끄럼투성이다. 그러나 나는 여린내기여서 낼 수 있는 소리는 매우 작지만, 강박을 돋보이게 하는 여린박처럼 주님이 드러나신다면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다.
가장 못갖춘마디, 여린내기와 같은 나를 주님은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한결같은 사랑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그 주님만 빛나신다면 세상이 보기에는 첫 번째 마디조차 될 수 없는 작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원수가 아무리 공격해 온다 해도 나는 예수님의 신부 된 교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복음과 기도의 두 기둥이 견고히 세워진 교회는 겉모습이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으로 충분한 영광스러운 예수 교회임을 나는 믿음으로 선포한다. 오늘은 못갖춘마디의 찬양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 안에 주님과 교회 된 우리의 작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하다. [복음기도신문]
이혜진 선교사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나 한 사람이 전부인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
‘그대는 나의 안식’… 안식에 들어가기를 더욱 힘쓰리라
‘나팔수의 휴일’… 믿음으로 힘차게 나팔 불며 행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