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호 | 음악이 있는 삶
시외할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올해 연세가 90세였던 할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견딜 수 없는 압박과 괴로움에 시달리다 도망치듯 일본으로 건너가 60년 동안 외롭고 고된 삶을 사셔야만 했다. 낯설고 외로운 그곳에서 설움에 찬 할머니가 부를 수 있었던 이름은 단 하나.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다니던 교회에서 들었을 소중한 이름 바로 예수님이었을 것이다.
모진 세월 얼마나 많은 눈물로 기도를 하셨을까? 얼마나 많은 시간 주님을 부르셨을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고국으로 돌아오신 할머니는 잃어버린 딸들을 찾기 위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교회에서 주님이 보내주신 장로님 한 분과의 만남을 통해 가족들을 찾는 일에 도움을 받게 되셨고 오랜 세월 볼 수 없었던 딸들을 다시 찾게 되셨다. 그중 둘째 딸인 나의 시어머님은 6살 무렵 갑자기 잃게 된 친어머니를 찾아주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선하신 인도하심에 감격하며 기쁨으로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와 할머니 생애 마지막 1년 여의 시간을 눈물과 기도로 주께 하듯 섬기셨다.
늙고 병들어 쇠약해지신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작년 가을 어느 날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것 같았다. 주름이 깊이 파인 할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며 잘 오셨다고 인사드릴 때 할머니를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주님께 너무도 감사했던 기억이 선하다. 작고 연약한 할머니의 고단한 인생길을 함께 하시며 그 모든 탄식과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애 마지막 시간들을 고국에서 딸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고 함께 먹고 마시며 그동안의 삶과 아픈 마음을 보듬으시는 주님으로 인해 위로와 안식을 짧게나마 누리셨던 게 아닐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할머니의 관 위에는 이 말씀이 쓰여 있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마음을 어둡고 무겁게 만들곤 하지만 놀랍게도 장례식에서 매일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 선포된 귀한 진리의 말씀이 마음을 새롭게 해주시는 밝고 기쁜 시간들이었다.
할머니는 이제 죽음이라는 문을 열고 천국으로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심을 믿는다.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는 아름다운 하늘나라에 들어가셨으니 아픔도 설움도 눈물도 고통도 없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우리들과 이 땅의 교회들을 응원하시며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참 아름다운 마무리구나.’ 생각하며 저녁 하늘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면서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곡 한 곡이 생각났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한 단어 한 단어를 마치 한 땀 한 땀 수놓듯 마음을 담아 어린 시절 소중히 배워가며 불렀던 서정적인 슈베르트의 독일 가곡 ‘그대는 나의 안식(Du bist die Ruh)’이다. 할머니의 장례에 함께 하는 동안 나는 나의 안식 되시는 예수님을 더욱 깊고 고요한 소리로 불러보았다. 십자가 복음에 참여하여 내가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참 안식을 맛보았기에 이 땅에서의 주어진 남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더욱 힘쓰리라, 견실하여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리라 결단해본다. [복음기도신문]
이혜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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