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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C. S. 루이스를 알린 사람

▲ 루이스가 킬비에게 보낸 편지봉투, 1957년 2월 11일 발송. 출처: thegospelcoalition 캡처

1935년 서른세 살 클라이드 S. 킬비(Clyde S. Kilby)가 영어 조교수이자 남자 학생 사감으로 휘튼 대학 교수진에 합류했다.

1943년에 킬비는 C. S. 루이스가 출판한 기독교 변증(The Case for Christianity)이라는 제목의 신간을 읽었고, 이 책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이 책은 루이스가 BBC에서 했던 두 편의 방송 강연인데, 나중에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의 처음 두 섹션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나는 그 책을 단숨에 읽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심오한 무엇이 내 정신과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킬비는 마치 ‘바닥이 없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고, 그리고 그는 ‘루이스의 표현에 담긴 관찰의 깊이와 신선함, 그리고 표현의 영속성’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킬비는 루이스의 책이 출간되는 대로 빠지지 않고 읽어나갔다. 그로부터 거의 십 년이 지난 1952년 12월, 휘튼 대학 영어과 학과장이 된 킬비가 루이스에게 1953년 여름에 영국에서 만날 수 있을지 묻는 편지를 썼다. 두 사람은 옥스퍼드 막달렌 칼리지에 있는 루이스의 사무실에서 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16세기 문학, 예술, 르네상스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킬비는 그날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에게는 모든 대화를 시작할 때부터 진정한 즐거움으로 만드는 좋은 유머와 진실성이 있다.”

킬비, 미국 복음주의자들에게 루이스를 소개하다

루이스 작품 집행인(literary executor) 월터 후퍼(Walter Hooper)의 회상이다. “그날의 만남으로 루이스에 대한 킬비의 존경심은 확고해졌다. 그는 미국에서 루이스 최고의 팬이자 옹호자가 되었다. 루이스에 대한 그의 판단은 무척 건전하고 타당했기에, 킬비를 ‘루이스 연구과의 학과장’ ‘루이스를 사랑하는 미국인의 대부’로 부르는 건 당연하다. 킬비가 단지 루이스를 미국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게 소개한 것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자명하다.”

그날의 만남이 두 사람의 유일한 만남이 되었지만, 그 이후로 두 사람은 1962년까지 십 년 동안 서신을 주고받았다. (루이스는 65세 생일을 일주일 앞둔 1963년 11월에 사망했다.)

1965년 킬비는 휘튼에 메리언 E. 웨이드 센터(Marion E. Wade Center)를 설립했다. 여기에 대한 그의 구상은 루이스와 잉클링즈(Inklings)(특히 오언 바필드(Owen Barfield), 찰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 도로시 L. 세이어스(Dorothy L. Sayers))의 저술과 관련된 보관소이자 연구 센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1966년 여름, 킬비는 몇 번 서신을 주고받은 적 있는 J. R. R. 톨킨(당시 74세)을 만나기 위해 한 번 더 옥스퍼드로 가는 길이었다. 그 여행에서 그는 루이스의 유일한 형제인 워렌 해밀턴 루이스(Warren Hamilton Lewis) 소령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워렌이 죽으면 자신이 루이스의 편지, 원고 및 개인적인 기록을 받을 수 있을지를 타진했다. 워렌은 기꺼이 동의했고, 이 자료는 웨이드 센터 루이스 컬렉션의 기초가 되었다. (워렌 루이스는 1973년에 사망했다.)

마크 놀의 지적이다.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홍보하려는 킬비의 노력은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미국 복음주의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킬비의 노력 덕분에 루이스는 근본주의자와 복음주의자, 그리고 어느 정도는 미국인 전체에게까지 널리 알려지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루이스에 관한 킬비의 작품

킬비는 루이스의 작품을 진지한 문학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 루이스가 죽은 다음 해인 1964년에 킬비는 루이스 사상에 대한 최초의 비판적 연구 중 하나인 C. S. 루이스의 기독교 세계(The Christian World of C. S. Lewis)를 출판했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초기 루이스 소개에는 1944년 미국의 예수회(Jesuit America) 잡지에 실린 찰스 브래디(Charles Brady)의 두 편의 에세이, 그리고 채드 월시(Chad-Walsh)가 1946년 에 쓴 기사 “C. S. 루이스: 회의론자를 위한 사도(C. S. Lewis: Apostle to the Skeptics)”가 있다. 이 글은 1949년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 1967년에 킬비는 1950년부터 1963년까지 루이스가 메리 셀번(Mary Shelburne)이라는 여성과 주고받은 서신을 담은 미국의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an American Lady)를 수집하고 편집했다.

• 1969년에 킬비는 루이스의 저작을 주제별로 정리한 선집, 깨어있는 마음(A Mind Awake)을 편집했다.

• 1973년 킬비는 보충 캡션과 설명이 포함된 그림책 C. S. 루이스: 그의 세계를 담은 이미지들(C. S. Lewis: Images of His World)을 공동 집필했다.

• 1970년대 후반에 킬비는 C. S. 루이스의 소설에서 본 구원의 이미지(Images of Salvation in the Fiction of C. S. Lewis)를 썼다.

• 1983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워렌 루이스의 일기를 공동 편집한 것이었다.

• 최근에 웨이드 센터(Wade Center)는 경이의 샘: C. S. 루이스, J.R.R. 톨킨, 그리고 잉클링스(A Well of Wonder: C. S. Lewis, J.R.R. Tolkien, and the Inklings)라는 제목으로 킬비의 에세이 모음집을 그의 사후에 출간했다.

킬비의 영향을 받은 두 명의 학생

1960년대 킬비의 학생 중에는 문학을 전공한 마크 놀과 존 파이퍼가 있었다. 놀은 지금 복음주의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역사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파이퍼는 가장 잘 알려진 목회자이자 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은 휘튼 마지막 해에 킬비가 진행하는 필수 코스를 같이 들었다.

놀은 시에 대한 킬비의 접근 방식을 이렇게 말한다.

킬비는 문학을 사랑했고 상상력을 믿었다. 그는 자유롭게 워즈워스의 시를 인용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시가 설교의 마지막 요점을 강조하기 위한 부가적인 장식에 불과하다는, 기존 휘튼 근본주의자들의 생각을 반박하려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킬비는 시가 자신의 삶 자체였다고 선언했다. 단지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서도 그랬다는 것이다. 나 역시 개인적인 삶의 굴곡을 겪는 중에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시를 좋아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전까지 시와 삶을 연관시킨 적은 없었다.

놀의 경우에 역사에 관한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또한 경력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잡지에 약 서른 편의 시를 소리 소문 없이 출판한 시인이기도 하다. 1997년 베이커(Baker)가 출판한 은혜의 계절(Seasons of Grace)이라는 시집도 그중 하나다.

킬비의 수업을 듣는 시기에 존 파이퍼는 다음과 같이 노트에 썼다.

킬비는 아마도 내가 만난 최고의 선생일 것이다. 킬비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파이퍼는 킬비에게서 받은 영향을 다음과 같이 썼다.

평생 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는 것을 마침내 보게 되었을 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다. 킬비는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거의 아는 게 없다. 킬비가 내게 영향을 끼친 건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 그리고 세상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사물의 경이로움을 생생하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실로 신학교에 들어와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주어진,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살아야 할 영혼을 준비하는 데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일이었다.

파이퍼 자신도 여러 권의 시집을 썼는데, 거기 실린 시의 일부는 그가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베들레헴 침례교회를 목회하는 동안 대림절 기간에 매년 진행한 성경적 시 쓰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은퇴 사 년 전, 그리고 죽기 십 년 전인 1976년, 킬비는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제일 언약 교회에서 “정신 건강을 위한 열 가지 결심”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 자리에는 당시 세인트 폴에 있는 베델 대학의 성서 연구 교수였던 존 파이퍼가 참석했다. 그 강연의 개요는 킬비가 학생들에게 모델로 삼고 가르쳤던 하나님의 세계가 주는 경이로움, 삶을 긍정하도록 하는 놀라움이 어떤 것인지 조금 맛보도록 한다.

강연은 이런 식으로 끝을 맺는다.

설령 내가 틀렸다고 판명되더라도, 나는 다음 가정에 생명을 걸겠다. 이 세상은 멍청하지 않다. 세상은 결코 부재하는 집주인이 운영하는 곳도 아니다. 반대로 바로 오늘, 이 우주라는 캔버스에는 또 하나의 붓질이 더해지고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나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부르는 건축가가 오늘 새롭게 새긴 그 붓질을 기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킬비는 단지 미국 복음주의 청중에게 루이스와 톨킨, 잉클링즈 가족의 소개자이자 해석자라는 유산만을 남긴 게 아니다. 그는 복음주의 세계에 중요한 공헌을 할 두 명의 젊은 대학생에게도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복음기도신문]

출처: The Man Who Introduced American Evangelicals to C. S. Lewis

저스틴 테일러(Justin Taylor) | 저스틴 테일러는 크로스웨이(Crossway) 출판 담당 부대표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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