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자가 되고 싶었다.
반평생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써대는 작가로 살았을 때는 언제쯤이면 이 쓰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까? 절필의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였을까? 나에게 천형 같았던 ‘쓰는 것’이 이 하나님 영광의 통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하나님 허락하신 달란트를 나의 먹고 사는 것을 구함에 사용하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록을 할지, 기록을 해서 어디에, 어떻게 남겨야 할지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기를 쓰는 것이 최선이었다.
시에라리온에 다녀온 뒤 시에라리온에서 받은 은혜를 틈틈이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리면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과연 어느 출판사에서 책을 내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출판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하루하루 블로그에 기록해나갔다. 그러면서 글을 쓸수록 기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알아갔다.
처음에는 나의 직업이 작가였으니까 기록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사명으로 받아들여졌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잊혀진다. 복음도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이 되었다.
시에라리온의 은혜를 기록하면서 나는 비로소 ‘기록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오랫동안 하나님이 준비해두신 소망의 발견이었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복음의 능력이 인생과 사회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것을 잘 기록해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증인이 되고 싶은 소망을 글을 쓰면서 발견했다. 오래전 하나님께서 밭에 감추어두신 보화를 발견하듯 말이다.
작가가 된 이후 수많은 글을 썼었다. 드라마 대본도 쓰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뮤지컬 대본도 썼다. 동화책도 쓰고 대필작가가 되어 누군가의 인생을 쓰기도 했고 탈북민 선교의 은혜를 쓰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트북에 잠들어 있는 글들은 얼마인지. 방송되지 못하고 상영관에 걸리지 못하고 무대에 올리지 못한 글들을 원고지에 옮긴다면 아마 작은 산 하나는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원고의 산이 쌓여갈수록 작가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의 마음은 쪼그라져 갔다. 재능이 없는 열정의 가혹함은 천형과도 같았다. 그 굴레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언제나 노트북 앞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서야 왜 그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산처럼 쌓여야 하는 훈련의 분량이 있다는 것을. 분량이 차고 쌓이는 과정을 하나님은 생략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 쉽게 가지 않으신다는 것을. 지름길도 꽃길도 없다는 것을. 십자가가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물었다.
“그럼 글 안 쓸 거야?”
“그동안 그렇게 애쓰고 노력했는데 아깝잖아”
솔직히 아깝긴 했다. 산만큼 쌓아 올린 원고들이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싶었지만, 결국 그 원고들이 있었기에 기록하는 선교사로서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나를 작가로 만드신 목적을 담아내신 것이다.
나의 책을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는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열악한 출판시장을 뚫어 버릴만한 작가의 네임벨류(NAME VALUE)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나의 원고를 읽어본 후배가 ‘언니 이 글은 많은 이들이 읽어야 해요’ 하면서 나의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를 차렸고 자신의 재정을 깨트려 출판에 필요한 초반 재정을 채웠고 펀딩을 통해 예비 독자들이 출판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의 은혜를 기록한 책을 출판하기 위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펀딩을 시도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목표 금액을 달성했다. 이 과정을 통해 ‘기록’이라는 선교 사역도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기록 선교사로 간증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나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면서 내가 증인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을 더욱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 선교사로 탄자니아에서 1년을 살면서 탄자니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의 기록을 신문으로, SNS로, 편지로 부지런히 기록하고 전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의 인생들이 하나님의 기록이라는 것을 알아갔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6개월이 되었고 다시 탄자니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작가에서 기록하는 선교사로 믿음으로 순종하고 결단하기까지의 과정은 내 인생의 전환기였다.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계획하면서 인생은 정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올바르게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며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다듬어 주셨고 영적 여정을 힘있게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허락하셨다. 선교라는 사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임을. 그 앎이 삶의 실체가 되어가는 훈련을 받았던 시간이었다.
죽을 때까지 나의 발걸음이 선교의 발걸음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곳이 세상 가장 낮고 가난한 곳이기를. 가장 복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닿아있는 곳이기를, 그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하루하루가 하나님이 열어두신 문이었고 하나님의 소명 자리였으며 선교의 현장이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하루가 소명의 시간이었다.
때로는 나의 연약함으로 넘어지기는 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런 나의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담아내셨다. 그리고 다시 선교지로 향한다. 선교의 소망보다 [오직 예수, 복음의 갈급함]이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탄자니아로 함께 가자 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해두셨다. 재정도. 기도의 동역자도. 후원자들도. 파송교회도. 협력교회도. 무엇보다 기록 선교사의 역할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갈 5:6)’
그렇게 나는 기록하는 선교사가 되어 하나님을 기대하며 다시 탄자니아로 향한다. [복음기도신문]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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