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호 | 청년선교
청년 선교사들의 생생한 좌충우돌 믿음의 순종기를 담은 [청년 선교]. 기독교인 청년을 찾아보기 어려운 지금, 복음과 운명을 같이한 20대 청년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 곳곳에서 매주 치열한 믿음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편집자>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지 12시간이 넘었지만 길이 없는 잠비아 어느 산골짜기에 떨어졌을 때는 집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붕대를 감싼 다리로 15kg이 넘는 배낭을 매고 다니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해 흙바닥에 주저 앉아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10km를 이 산 속을 뚫고 지나가야 해.” 동행하는 현지인 선교사 조셉이 짐을 고쳐매며 말했습니다. 해는 이미 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는 빠르게 이동해야 했습니다. 수풀을 헤치고 우거진 숲을 지나 한참을 이동했을 때 나타났던 작은 마을과 수십 명의 아이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교사들의 모습은 저로 하여금 ‘부르심’이 무엇인지 생각나게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부터 내륙국가인 잠비아로, 그리고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귀환하기까지의 2월부터 5월까지의 여정이 이번 이야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잠비아를 거쳐 다시 남아공으로”
2024년 1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한 로고스 호프는 6개월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총 5개의 항구를 거치는 저희에게 리차드 베이(Richards Bay)는 로고스 호프의 첫 번째 항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1월이 다가왔다는 뜻은 많은 선교사가 배를 떠나 본국으로 귀국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들었던 동료 선교사들을 떠나 보내고 선교지에 남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장소에 저 혼자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사역을 마치고 잠깐 쉬기 위해 배에 있는 대강당으로 내려갔는데 청소년 수련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에서 쉬려고 할 때 들려지는 청년들의 찬양과 예배 소리는 저를 그 자리에 머물러 함께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 중 청소년과의 질의 응답 시간 중에서 한 형제가 일어나 한 가지 질문을 저희 로고스 호프 선교사에게 던졌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눈에 보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검증된 세상의 가치를 포기할 수 있죠? 어떻게 그것을 포기하고 성경이 말하는 하늘 나라의 가치를 따라갈 수 있나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기회는 제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수련회의 마지막 시간에 그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 학생들의 손을 붙잡고 한 명, 한 명씩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기도했습니다. 그들 안에 진정한 가치 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저희는 머리로 이해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보배 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그분을 경험한 순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학생을 만나주시기를 기도했을 때, 주님은 저 또한 만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로 다시 일어나 힘을 얻고 남아공의 영혼을 품으며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해안 선교에서 내륙선교로 – 잠비아 단기 선교
“사실 저희는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전해 받은 정보도 없고요.” 잠비아 단기선교 출정을 일주일 앞두고 가졌던 현지 선교사와의 화상 채팅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잠비아 아웃리치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습니다. 2024년 5월, 로고스 호프는 리차드 베이(Richards Bay),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 그리고 이스트 런던(East London)을 지나 남아공에서의 네 번째 항구인 더반(Durban)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한 달 반 가량 조선소에서 배 수리 기간을 갖기 위해서였지요. 배가 정비에 들어가는 기간에는 필요인원을 제외하고서는 배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로고스 호프는 정비 인원을 제외한 수 백명의 선교사들을 근처 지역으로 단기 선교를 보내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 중 몇 팀은 근처 지역이 아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파송되기도 합니다. 정비공이 아닌 저는 아프리카의 내륙 국가인 ‘잠비아’라는 나라로 팀을 이끌고 한 달 정도의 단기 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역지를 통보 받으면 사역 내역을 함께 통보 받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인데 저희 팀의 경우 출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조차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비아에 계신 동기 한국인 선교사님을 통해서 오엠 잠비아 본부에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을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전해 받은 정보도 없고요.” 오엠 잠비아 본부에 연락을 취하고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들었던 현지 선교사님의 말씀은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 배는 며칠 전부터 연락을 취했을 터인데 오엠 잠비아 내부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다가와 5월 13일, 저는 두 명의 팀원 선교사님들과 함께 남아공 더반(Durban)에서 잠비아의 카브웨(Kabwe)라는 도시로 떠납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역- 잠비아 무쿠시(Mkushi)
잠비아는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내륙 국가입니다. 영국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이름을 지은 빅토리아 폭포가 잠비아와 국경국 짐바브웨에 걸쳐 자리잡고 있기도 하지요. 오엠 잠비아의 선교본부는 수도인 루사카(Lusaka)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카브웨라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카브웨 지역 교회를 순방하며 잠비아의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에 동원시키는 것이 저희 팀의 임무였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 인해 잠비아에서 저희의 사역은 근처 어린이 사역을 돕는 것으로 제한되었습니다. 목적과 다른 사역에 당황도 했지만 맡겨 주신 일을 섬기며 일주일의 시간이 잠비아에서 흘렀고, 저희는 본부가 있는 카브웨를 떠나 무쿠시(Mkushi)라는 지역으로 가서 일주일간 섬기고 올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아악!!” 발목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저는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청소년 농구 사역을 도와 함께 경기를 뛰던 중 점프 후에 착지를 잘못하여서 발목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무쿠시로 이동하기 하루 전날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음 날 아침 5시에 로컬 버스로 이동해서 수백 킬로가 넘는 거리를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앞이 깜깜해졌습니다.
배에 이 소식을 알렸을 때, 배에서는 무쿠시라는 지역을 가지 말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오엠 잠비아 본부는 이상하리만치 저희가 그곳에 다녀오기를 원했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만 가면 차로 저희를 데려올 것이라는 말에 팀장인 저는 계획대로 무쿠시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주어진 본부의 권위에 우선적으로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왜 가요? – 잠비아 무쿠시(Mkushi)
“그러니까 거기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어떤 것을 저희가 경험하거나 돕기를 원하시나요?” 저희 팀이 무쿠시로 가기로 요청 받았던 것은 출발 이틀 전이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저희가 잠비아에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사역의 이유와 목적은 저희에게 있어서 필수적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현지인들도 잘 가지 않는 지역을 외국인 세 명을 현지인 없이 보내려 하니 어떤 이유가 있어서 저희를 보내려고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6번이 넘는 물음에도 오엠 잠비아는 대답을 회피하며 아프리카를 경험해야 한다는 말 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이유를 몰랐을지 모릅니다. 그들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위험한 지역이니까요. 다친 발을 붕대로 싸매고 길을 나서는 것보다 이유와 목적을 모른 채로 길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에 짐이 되었습니다.
14키로가 넘는 배낭을 매고 팀을 이끌고 사람이 붐비는 버스를 옮겨 타며 300km를 이동해 13m 산길을 흑암 속에서 걸어서 도착한 오엠 무쿠시 베이스. 발은 너무 아팠고, 속상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아침이 밝고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이 산속 마을에 80명의 아이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곳에 있는 선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농사일을 돕고 아이들을 가르쳐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마을에 주님을 사랑하여 이곳에 오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 선교사들을 보자 누가 제게 대답해주지 않아도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어떤 필요가 있어서 오기보다 주님이 ‘가라’ 하셨기에 그곳이 어떤 곳이든 가서 섬기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짧은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고 현지 선교사들에게 성경을 시간을 보냈습니다. 길이 없어도 주님의 말씀을 길로 삼고 순종하는 사람. 그들을 통해 순종을 배우는 기쁨으로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북쪽, 희망봉에서
잠비아에서 돌아온 후, 로고스 호프는 수리를 마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Durban)에서 한 달간 더 머문 뒤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마지막 항구인 케이프타운(Capetown)으로 항해하였습니다. 케이프타운에는 15세기에 항해사들이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기뻐하며 이름지었던 ‘희망봉 (Cape of good hope)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오랜 항해 끝에 드디어 동쪽의 인도를 향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던 이곳은 오래 전 이곳을 지나가는 항해선들로 하여금 기쁨과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타운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참 소망과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로고스 호프는 정박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루 수천 명의 방문객들이 로고스 호프를 방문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있는 지금,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곳 케이프타운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지난 6개월간 로고스 호프가 정박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든 지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들로 참 소망을 품게 하시기를 말입니다. 케이프타운을 끝으로 로고스 호프는 서아프리카로 북상하여 항해할 예정입니다. 그 모든 과정 또한 순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우시준 선교사(헤브론원형학교 용감한정예병 파송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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