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호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성경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다. 그 들려진 말씀,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말씀 또는 고백을 요약, 소개하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온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먼저 자기 몫의 유산을 받아 탕진하고 돌아올 때 아버지는 기쁨으로 그를 맞아들인다.
그러나 그의 형은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를 못마땅해하며 아버지가 권유하는데도 둘째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다.
그런데 이 비유가 주는 교훈과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죄악의 깊이가 아무리 깊다 해도 다시 돌아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받아주신다는 참으로 위대하고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적인 진리가 이 비유 속에 자리잡고 있다.
죄인이 너무 악해서 도무지 속수무책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을 받지 못할 만큼 악한 죄인은 없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받은 유산을 제멋대로 탕진해버렸다. 아버지의 집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탕진해버리고 자신은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탕자는 그 땅에서 어떤 사람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구걸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 사람은 탕자를 황무한 밭에 내어보냈고, 그는 거기서 돼지를 치는 신세가 되었다. 유대인에게 돼지를 치는 일 이상 수치스럽고 처참한 일은 없다. 그런데 그 잃어버린 아들은 돼지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돼지 먹이를 먹고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탕자의 극심한 처지에 대한 이러한 묘사에서 우리는 유대인에게 그렇게도 혐오감을 주었던 세리들 실상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 동족을 버리고 그 돼지와 같은 이방인들을 섬길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여물통에서 배를 채우고 있다. 주님은 탕자의 처참한 사정의 극심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주님은 죄인들을 위로하시지만, 그냥 묵인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그들의 진정한 됨됨이를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셔서 그들을 영접하시는 것이 아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벤자민 워필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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