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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

‘긍정의 힘’이라는 책으로 알려진 레이크우드교회의 조엘 오스틴(Joel Osteen) 목사가 최근 신간을 냈다. 제목은 ‘나 자신의 힘: 오늘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킬 두 단어(The Power of I Am: Two Words That Will Change Your Life Today)’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말의 힘, 격려, 내적·외적 대화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나는 매력적이지 않고 남들보다 똑똑하지 않고 느리다. 그러나 이 세 개의 부정적인 말에 30~40개의 긍정적인 말들을 덧붙일 수 있다. 나는 건강하고 훈련됐고 초첨을 맞추고 있다.

여러분들이 이런 긍정적인 말들을 계속 묵상하면 이러한 장점들이 여러분들에게 끌려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 계속 씨를 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말들이 진리에 기초한 주장일까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의 마음을 깊이 파헤치며 성리학의 기초를 쌓은 주자(朱子)가 문인들과 학문을 논한 내용을 정리한 주자어류(朱子語類)란 책에는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정신을 한 곳으로 집중하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없다.’라는 뜻이다.

어떤 일을 만나든 내 자신이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마음먹기에 따라 그것의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과 생각과 말들이 정말 그렇게 믿을만한 것인지, 마냥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고, 그것에 집중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까?

불교의 한 승려는 이런 말을 했다. “하늘을 믿든, 나무를 믿든, 돌멩이를 믿든, 믿음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믿음의 내용은 진위를 따질 수도 없고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믿음은 믿는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승려의 말은 결국 향방 없는 믿음도 그 믿음 자체가 가져오는 결과가 반드시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이라는 개념을 막연히 바라고 원하는 ‘희망사항’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성경적인 믿음은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는 것을 결코 그 터로 삼지 않는다. 믿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분명한 ‘실재’(實在)를 믿는 것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랄 수 있는 것이고(롬 4:18), 세상을 이기는 승리가 될 수밖에 없다(요일 5:4).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식의 이야기에 반해 오히려 성경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렘 17:9)이라고 선고한다. 부패한 인간의 마음을 기준삼아 그것을 믿고 소망으로 삼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얘기다.

앞에서 말한 조엘 오스틴의 주장이 성리학과 불교의 승려의 견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미 긍정의 힘으로 무장된 나에 대한 확신이 성경의 어떤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할뿐이다.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의 힘’을 의지하게 하는 세상의 가르침은 아주 교묘하게 포장되어 지금도 복음 앞에 서 있는 성도의 믿음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참된 제자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만왕의 왕 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그분만을 따른다.

나 자신에 대한 완전한 절망은 절대 은총을 가져온다. 복음은 보다 나은 인간으로의 개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었음을 믿는다. 이것이 영원한 복음이다. [복음기도신문]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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