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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에서 죄를 보자

unsplash의 Joshua Newton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그리스도인이 만나는 가장 까다로운 과제 중 하나는 그 문화가 주는 틀 안에서 상상력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십자가의 공로 안에서 안식하며, 또 인류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성경이 규정하는 규범에 관해서만은 백 퍼센트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믿음은 어떤 의미에서 내가 살고 있는 문화의 가치로부터 쉽게 영향을 받는다. 이것은 신약 시대부터 있어 왔던 과제였다. 예를 들어, 고린도 사람들이 신체를 이해하던 관점을 보자. 그것은 창세기가 아니라 그리스 문화에서 형성된 생각이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가 나의 신앙과 실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리하게 인식하고 성경을 더 깊이 깨달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인간 중심의 죄 교리

죄에 대한 교리를 생각해 보자. 뉴질랜드나 호주 같은 세속 문화권에서 하나의 개념적 우주라는 측면에서 인간이 하나님보다도 훨씬 더 크게 보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은 죄에 대한 교리를 왜곡한다. 이런 식으로 형성된 죄에 대한 교리의 한 예를 로저 울지(Roger Wolsey)의 “죄와 죄인에 대한 진보적 기독교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울지가 묘사하는 죄는 옳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엇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고 나로 하여금 더 나은 판단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인간의 성향을 강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깨지고 부서진 존재” “금이 간 항아리” “불완전한 그릇” “아름다운 엉망진창” “실수투성이”이다. 죄는 “중독성이 있어서” 나를 “자기 파괴의 절벽”으로 끌고 가는 경향이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이 꼭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죄를 지을 때, “우리는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죄에 관한 이러한 인식의 틀이 가져오는 결과는 무엇일까? 울지에게 회개는 변형과 재조정의 과정이다. 그 결과 개인의 인격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마침내 “거듭났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지의 글에서 가장 주목할 사실이 사라져버린 대상이다. 그는 대체로 죄를 다른 사람에 대한 범죄 또는 나 자신에게 가하는 해악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에게도 죄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인데, 그 이유는 단지 “목표를 놓쳤기” 때문이다. 글 말미에 그는 우리가 죄를 지을 때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지독하게도 인간 중심이라는 인상을 준다. 즉,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주로 인간의 안녕에 있다.

울지는 사실 죄에 대한 종교적 공식화를 비판한다. 그는 예수님 시대에 “죄는 성전 제사에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순결하지 못하고 ‘더러워진’ 상태를 말하는 법률적 개념으로 축소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한 구약의 율법을 “일종의 보복에 필요한 법률집”으로 간주한다.

죄와 관련해서 강조하는 것과 무시하는 것만을 놓고 볼 때, 신학적으로 보수를 자처하는 그리스도인조차도 이와 비슷한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빠질 수 있다. 의도치 않게 죄의 공리주의적, 사회학적, 치료적 차원에 치중하고 하나님과 관련해서 죄가 초래하는 결과에 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죄에 대한 정통 교리는 하나님 중심이다

죄에 대한 인간 중심의 틀을 다윗 왕의 간음과 살인 사건 이후에 쓰인 시편 51편과 비교해 보자. 4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내가 오직 당신께만 죄를 지었고 당신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고 고백한다. 그가 여러 사람을 심각하게 해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것임을 깨달았다.

죄의 교리에 관련해서 존 스토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용서의 문제”라는 제목의 장에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로서 죄에 대한 성경의 여러 은유를 강조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보다 높고, 죄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계신다(예: 사 6:1; 57:15; 수 3:4). 하나님은 또한 접근이 불가능한 빛이시며, 소멸하는 불이시다. 그는 거룩하고 실로 위험할 정도로 거룩하시다(예: 딤전 6:16; 히 12:29). 스토트는 그 중에서도 구토의 은유를 “가장 극적인 것”으로 꼽았다. 구토는 “아마도 신체가 표현하는 가장 격렬한 반응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너무나 역겹게 여기셔서 심판을 통해서 죄인을 토해내셨다(예: 레 20:22-23; 계 3:16).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죄의 속죄

다행히도 하나님은 거룩하시지만 또한 사랑도 많으시다. 속죄에 대한 성경의 설명은 깊고 다면적인 죄 문제가 십자가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죄가 초래하는 죄책감, 죄에 대한 형벌, 죄의 더러움에서 구출된다. 그리고 죄에 의해 모욕당하신 하나님과 화해한다.

죄에 대한 잘못된 교리는 다른 하나님 교리(특히 그의 거룩함에 대한 교리), 다른 속죄 교리(대속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음), 인간에 대한 다른 확신(지나친 낙관주의), 그리고 세상의 병폐와 그 해결책에 대한 다른 개념을 요구하거나 또는 바로 그런 사실에서부터 파생된다. 무엇보다도 죄에 대한 잘못된 교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기독교 세계관을 드러낸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에 근거해서 형성된 하나님과 그의 세상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는 오늘날 세상 문화의 기본 사상에 잠식될 것이다. 이런 실패는 교회 역사 속에서 흔히 발생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실패를 목격하는 게 꼭 두려움을 초래할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런 현실을 자극으로 삼아서 우리는 제자 됨이라는 확고한 토대 위해서 비판적인 기독교 지성을 훈련하고 기독교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에 노력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포스트 기독교 시대를 사는 목사와 교사가 이보다 낮은 기준으로 사역해서는 안 된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Importance of a God-Centred Doctrine of Sin

크리스 노스코트 (Chris Northcott) | Lincoln Road Bible Chapel의 장로이다. School of Theology at Laidlaw College에서 전문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개혁파에 의한 히브리서 6:4-6에 대한 개혁주의 해석의 역사가 존 오웬이 해석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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