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TGC 칼럼] 디지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바른 온라인 식단

사진 : Lisa Fotios on Pexels

우리가 하루에 보고 듣는 정보의 양은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보 과부하로 우리의 감각, 특히 영적 감각은 점점 더 무디어진다.

무감각이 미치는 영향은 단지 사소한 사건까지도 쉬지 않고 스크롤하는 엄지손가락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점점 차가워진다. 단지 기사 하나를 통해서 자연재해나 끔찍한 비극을 접한 우리는 즉시 다음 기사로 넘어간다.

그리고 정치에 대한 논평, 아이들이나 동물이 나오는 재미있는 비디오, 그리고 건강과 웰빙을 개선하라는 각종 기사를 스크롤하기에 정신없다. 그 결과가 뭘까? 모든 게 흐릿해진다. 너무 많은 정보, 지혜라고는 찾을 수 없는 시끄럽기만 한 배경이다. 

나는 매일 소셜 미디어에 시간을 할애한다. 때로는 꽤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더불어서 신학, 정치, 문화 분석 등 다양한 경향이나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는다. 나는 다양한 미디어와 각종 정보 채널에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거기서 얻은 유익에 감사한다.

그러나 아무리 소셜 미디어에서 좋은 것을 찾아도, 오로지 유익하고 교육적인 팟캐스트만 들음으로 영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자료만 섭렵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얼마든지 팟캐스트 피드의 메뉴에 있는 “지금 듣기”(listen now)에 중독되어 그때그때 올라오는 최신 정보를 받지 않으면 조바심을 느낄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최신 소식을 듣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갈망은 우리의 영혼에 깊고 미묘한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상실

온라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최신 정보와 발맞추려는 욕구는 과거 아니, 최악에는 영원까지 희생하면서도 오로지 현재에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지금 우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시대에서 벌어지는 토론과 논쟁에 대한 명확한 관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신앙의 기초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신실한 신앙을 유지하려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지 뉴스 속보나 이번 주 핵심 토론 주제 등을 대충 훑어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바른 신앙인은 믿음의 기반에까지 더 깊이 파고 내려가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든든히 설 곳이 있음을 점검한다.

아무리 거센 문화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는 나무처럼 우뚝 서기 위해서 우리는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우리에게 뿌리가 없다면, 우리는 바람에 흩날리는 파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매일 소용돌이치는 뉴스와 정보에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내가 The Thrill of Orthodoxy를 쓴 목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이 주는 짜릿한 아름다움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교회가 만난 가장 큰 도전은 새로운 오류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진리가 더 이상 놀라움을 주지 않아서이다. 온라인에 종속될수록 성경의 깊고 풍부한 진리는 더 이상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은 마비되고 가슴은 쪼그라든다. 오늘 하루도 쓸모없는 정보로 머리를 가득 채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일에 대한 식욕을 느끼지 않는다. 

얕은 곳으로 향하는 낡은 길

세상 모든 일을 다 알아야 할 이유가 없다. 현재 일어나는 사건은 표면 아래 정도를 살짝 파헤치는 정도로 충분하다. 우리가 뿌리를 내려야 할 곳은 성경이 펼쳐놓는 이 세상의 위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나?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세상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기독교의 진리와 궁극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확실하게, 또 끊임없이 상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없이 천박해질 것이다. 두 마음을 품고 모든 길에서 헤매며(약 1:8), 오늘을 살아가는 데 가장 신실한 길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지혜조차 갖추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주의가 분산된 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파스칼은 “혼자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인류에게 생기는 문제에 관해서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쉬지 않고 산만함과 자극을 찾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독과 성찰의 시간을 피한다. 그러나 고독과 성찰이 사라진 기독교는 시들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정기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음미할 충분한 공간과 집중이 필요하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가장 상상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쁨과 안정을 찾을 것이다. 바로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 역사적 신경(creed)과 교회의 신앙고백이다. 

팟캐스트보다 신앙 신조? 

수많은 신경에서도 특히 사도 신경, 니케아 신경, 그리고 아타나시우스 신경, 이 셋이 두드러진다. 이 속에는 성경에 따라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분이 하신 일에 관한 설명이 담겨있다. 더불어서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를 적시한다. 종교개혁 기간과 그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역사적 신앙고백서는 마치 잘 짠 직조물처럼 신앙의 충만함을 자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신경이 하나의 상부 구조, 그러니까 청사진을 제공한다면, 고백은 세부 사항을 채우고 그리스도인의 삶에 더 큰 명료성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은 수천 페이지의 산문을 통해 세상에 대한 진실과 인간의 위치를 연구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 물으셨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기독교 신학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그분이 누구인가에 관해서 확신을 품고 고백하려는 우리의 시도이다. 신학은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만나고 그의 의로운 성품과 구원 행위의 탁월함을 누리는 것이다. 

고대의 신경은 끝없는 수다와 논쟁이 펼쳐지는 소셜 미디어 같은 온라인 세상과는 동떨어진 세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신경이 중요하다.

신경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먼지투성이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그것이 단지 문서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 우리와 우리의 사고방식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신경은 신앙의 기초를 설명한다. 정통을 지키는 난간이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목소리이자 진리의 기둥, 그루터기인 교회의 증언이다(딤전 3:15). 신경은 모든 시대에 불어닥치는 폭풍우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안정되게 유지한다. 

소음에 대항하는 전략

소음이 진동하는 디지털 시대에 지혜를 기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이라는 천박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실을 담은 우물에 우리 자신을 깊이 잠기도록 하는 관행을 구현해야 한다. 

첫째, 매일 아침 “휴대폰보다 성경”이라는 규칙을 따를 것을 촉구한다. 휴대폰은 다른 방에 두고 구식 알람 시계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로 옆에 성경과 기도 가이드를 준비하라. 세상의 소음이 끼어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시간을 보내자. 매일 아침 하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삶이 얼마나 풍성하겠는가? (나는 종종 Psalms in 30 Days(30일 시편 묵상)이라는 기도 여행 가이드를 따라서 아침 시간을 보낸다.)

둘째, 온라인 기술을 유익한 방향으로 전환하자. 영적 성장을 돕는 (성경에 깊이 잠긴 목소리, 신경 정통에 기반을 둔 조직 등) 소셜 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라. 팟캐스트 구독 리스트에 교회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을 추가하라. 

셋째, 스크롤을 공부에 활용하자. 온라인 섭취에 대한 제한을 설정하라. 그리고 거기서 얻는 정보의 일부를 실질적인 신학 내용으로 대체하라. 하루에 15분 또는 20분 이상 앱을 사용하면 알림이 울리도록 휴대폰을 설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생각 없는 습관에서 마음을 스트레칭하는 습관으로 바꾸고 싶다면 최소한 소셜 미디어에 보내는 시간만큼은 책 읽는 데에 보내야 한다.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꿰뚫는 두꺼운 신학책을 하나 집으라. 가장 두꺼운 조직신학 교과서나 교회사 책이라도 하루에 두세 페이지씩 꾸준히 읽으면 일 년 안에 완독할 수 있다. 

넷째, 혼자 하지 말라. 최신 뉴스보다 변치 않는 진리를 우선시하려는 믿음의 친구를 찾아라. 신경은 나 혼자 믿는 게 아닌 우리가 믿는 것에 대한 진술이다. 애초에 개인이 고백하는 믿음의 진술로 시작한 사도 신경은 세례 의식으로 발전했고, 세례식은 개종자의 선한 고백을 축하하기 위해 온 교회가 참석하는 축제가 되었다. 

폭풍 속에서도 꾸준히 열매를 맺자

마음 없는 스크롤에 대한 해결책은 오로지 집중뿐이다. 성경을 공부하고 고대 신경과 신앙고백을 숙고하는 것은 우리가 지식과 지혜를 키움으로 예수님을 더 잘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모두가 다 최신 소식에 요동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오로지 주님께 뿌리를 내림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변하는 뉴스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 속에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다시 일깨워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만날 격동의 시대에도 꾸준히 열매 맺는 주님의 신실한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Man Cannot Live on Feeds Alone: The Christian Diet for a Digital Age

트레빈 왁스 Trevin Wax |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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