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원정하 칼럼] 가버나움과 벳세다, 그리고 ‘와시가오’ 슬럼

▲ 사진 : 원정하 제공

오늘(2/20)은 제 모교회인 옥토감리교회(담임 원성웅 목사)에서 온 네 번째 단기 선교팀의 실질적인 첫 번째 날이었습니다. 옥토교회는 지금까지 세 번의 팀을 보내주셨는데, 늘 청년 위주의 팀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특별하게 담임목사님 내외 분과 장로님들이 이번 여정에 참여했습니다.

▲ 사진 : 원정하 제공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를 빼면 실질적인 일정은 화, 수, 목 3일입니다. 그리고 화요일인 오늘은 마히마 교회 사역 팀과 함께 ‘와시가오’라는 빈민가에서 순회 의료선교를 했습니다. 150여 빈민들에게 의료 처방과 약을 제공하고, 만화 전도 책자와 기드온 성경 등 생명의 양식도 나누었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들은 각기 여러 가지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 언어나 민족으로 묶인 곳, 특정 종교 집단으로 모인 곳, 특별한 직업별로 묶인 곳, 현저히 불법적인 직업(매춘, 밀주 등)으로 묶인 곳 등입니다. 그중 ‘와시가오’ 슬럼은 주로 넝마주이 및 구걸로 연명하는 이들의 빈민가입니다. 특유의 거칠고 뻔뻔한 문화 때문에, 단기 선교팀과 함께 가끔 대규모 사역으로 들르기는 해도 정기적인 어린이 사역은 아직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12년 전 뭄바이에 처음 도착해서 슬럼 사역자가 된 후 그곳의 존재를 인지했습니다.

사실 이곳의 걸인 아이들은 대부분 제가 탄 차창을 두드리며 저에게서 돈(20루피 – 약 320원 지폐)과 만화 전도책자를 받아 가곤 합니다. 자그마치 10여 년입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지 알 수밖에 없는 이들입니다. 복음 자체는 충분히 전파된 것입니다.

▲ 사진 : 원정하 제공

그런데 오늘, 사상 처음으로 이곳에서 순회 의료사역을 했는데 정말 지난 12년간 해 왔던 것 중 가장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심지어 선교사를,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평생을 걸인으로 살아온 아이들은 무조건 ‘줄을 서고 질서를 지키고 정직하면 손해’라는 마음으로 삽니다. 그리고 무엇을 요구할 때 아주 끈질기고 뻔뻔합니다. 줄만 서면 10분 후에 받을 수 있는 것을 결코 줄을 안 서고 생글생글 웃으며 한 시간 이상, 마치 처음 말하듯 반복해서 요구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 – 특히 중산층, 외국인, 단기 선교팀 등 – 의 정서적인 약점들을 어떻게 공격하는지를 만능 침술사나 저격수처럼 정교하게 짚어내고 도발하기도 합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악다구니를 벌이며 싸우다가도, 어떤 때는 그림 같은 팀워크로 단체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저희는 고마운 적선 대상이 아니라, 아무런 애정 없는 ‘공략 대상’ 및 ‘놀이기구’에 불과합니다.

▲ 사진 : 원정하 제공

다행히 경험이 충분하고 팀워크가 잘 되어있고 같은 유니폼을 입은 수십 명의 마히마 교회 성도들과 단기 팀원들이 인의 장막, 영의 장막을 치고 있기에 늘 어느 정도 사역 진행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칼날 위를 걷는 긴장 속에서 간신히 질서가 유지되는 형국이지요. 그리고 그런 질서는 아주 가느다란 실수 하나로도 완전히 무너져 버리곤 합니다.

가끔은, 예수님께서 전도자들에게 어느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든지 듣지 않으면 발에 신을 떨어 버리라고 하셨던 매몰찬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가버나움 등 진리를 영접할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은 곳들에게 소돔과 고모라 이상의 저주를 내리셨던 것도 이해갑니다. 단 한 번의 복음의 기회도 없었던 곳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성경 속 전도자와 선지자들이 늘 ‘천사표’였던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와시가오’ 빈민가

장담컨대, 저보다 더 많이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애써 온 선교사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이곳 사람들을 곳곳의 구걸 포인트에서 만나 각종 전도 책자와 구제금을 나누었고, 이를 위해 격주로 20루피(320원) 지폐를 새 돈으로 바꾸어 오는 것을 넘어, 아예 그들을 위한 전도책자를 따로 제작하기까지 했습니다. 거기에 코로나 때에는 마을 전체가 ‘레드 존(확진자 사망자 대량 발생지역)’이 되어도 목숨을 걸고 몇 주에 걸쳐 거의 모든 가정에 빠짐없이 두 주 치 비상식량과 만화 전도 책자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저는 ‘와시가오’의 모든 사람들이 각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제가 인도에 있는 한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마을 공동체’로서의 와시가오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오직 음란과 폭력, 거짓말과 뻔뻔함만 배워 나갈 뿐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저희끼리 평소에 가기는 힘이 모자라는 곳인데, 단기 팀과 가면 그들이 약점이 되어버리는 곳. 다만 그들의 주 직업이 걸인이니만큼,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전도 책자를 보급하는 게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미 제가 알고 있던 ‘와시가오’의 3/4은 이미 정부에 의해 철거가 진행되었습니다.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이 마을이 온전히 부수어져서, 그들이 공동체적인 악한 문화에서 떨어져 나와 각 개인으로서 영광의 주님을 뵈옵게 되기를 소망할 뿐입니다. 그래서 죄악과 비극의 대물림이 끝나기를 소망합니다.

아무튼, 오늘 사역을 통해 의약품과 음식은 나누어졌고, 성경과 만화 전도 책자도 나누어졌습니다. 씨앗은 뿌려졌으니 나머지는 주님의 몫입니다. 저희의 부족한 수준에서나마, 할 일은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사랑해야 하듯, 개인은 구원의 대상으로 보되 마을은 심판의 대상으로 여기겠습니다. 제 생각이 틀렸다면 주님께서 바로잡아 주시고, 옳다면 힘을 주시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 사랑과 정의, 질서와 지혜가 함께하는 사역되게 해 주시기를.

옥토 단기 선교팀의 남은 여정 및 40일간 함께 했던 임하원 군의 귀국 일정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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