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61)
독일의 철학자인 포이에르바하는 인간학으로서의 신학을 주장한 유물론자다. 잠시 신학 공부를 하기도 했던 그는 성경은 고전(古典)으로서의 가치를 가질 뿐이고 하나님은 환상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은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왜인가? 위로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갈망을 ‘투사’ 하거나 ‘대상화’ 하고,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이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은 그저 인간적 갈망의 투사일 뿐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이러한 하나님 인식은 카를 마르크스와[2]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흔히 현대 문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세 사람으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다윈을 손꼽는데, 이들이 각각 주창한 공산주의와 정신분석, 진화론은 기독교를 무장 해제시키는 데 최고의 공헌을 하였다.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무신론자였던 프로이트는 평생 종교를 연구했다. 그는 기독교의 원죄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던 반면에 일반 종교는 인간 심리 상태의 반영으로 보았다.
나 자신도 이 이상으로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종교 심리학에의 기여다. 이것은 1907년에 강박행위와 종교적 관습(예배의식)과의 사이에 놀랄 정도로 유사성이 있는 것을 확인한 것이 동기가 되어 시작한 것이었다. 아직 너무 깊은 관련은 알지 못한 채로 나는 강박 노이로제를 왜곡된 개인 종교라고 하고, 종교를 말하자면 세계적인 강박 노이로제라고 했던 것이다.[3]
프로이트가 말한 종교는 주로 기독교며, 그에게 기독교는 집단 정신질환에 불과했다. 이 말은 결국 기독교로 대표되는 종교는 차라리 없는 것이 인간에게 유익하다는 생각을 그가 가졌음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이처럼 종교(기독교)가 유해하다고 주장했건만, 기독교는 프로이트 심리학을 빌어 신학을 보완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평생 영적 세계를 부정한 자인데, 영적 세계를 다루고 설명하는 목회자들이 세속적 상담과 정신 분석의 기법을 목회 방법으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심리학 분야에서는 프로이트가 가장 지명도가 높지만, 사실 신학이나 목회학과 관련해서는 카를 구스타프 융이 더 깊게 연관돼 있다. 분석심리학을 주창한 융은 MBTI라는[4] 성격 유형검사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융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했지만 뜻밖에도 하나님이 아닌 악신(악령)과 밀접한 교류를 나누었던 사람이었다. 융은 어린 시절부터 특이한 꿈을 꾸고 독특한 영적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별로 건강하지 못했던 가족 관계 때문에 누구에게도 그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가 기독교의 어떤 개념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혹 하더라도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무조건 믿어라’였다. 청소년기 무렵 그는 철학에 심취하게 됐고, 그중에서도 쇼펜하우어를 좋아했다. 그는 한평생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초심리적 현상을 체험했는데, 이것은 그가 빌레몬이라고 불렀던 자신 안의 어떤 영적 존재와의 접촉을 말한 것이다. 이 빌레몬이야말로 융이 만났던 ‘신’이다.
융은 1960년 1월 21일 BBC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신(神) 관념을 밝혔다.[5]
(전략) 우리가 종교적 경험의 문에 들어설 때 고대적 혹은 중세적 사고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방송에서 나는 ‘신이 있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나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신을 알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내가 특정한 신(제우스, 야훼, 알라, 삼위일체의 신 등)을 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어떤 미지의 요소에 직면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나는 ‘신’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나는 신의 이름을 불러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때마다,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오, 하느님’ 할 때마다 신을 기억하고, 그 신에 의지합니다. 그런 현상은 내가 나보다 더 힘센 누구 또는 무엇을 만날 때 일어납니다. 신이란 나 자신의 정신 체계 내에서 내 의식적 의지를 억누르고, 나 자신에 대한 통제권도 행사하는 모든 압도적인 정서를 지칭하기 위한 적절한 이름입니다. 나는 내 의지가 나아가는 길을 난폭하고도 무참하게 가로막는 모든 것, 내 주관적 견해‧계획‧의도를 무너뜨리고 내 인생의 경로를 더 좋게 혹은 더 나쁘게 변화시키는 모든 것을 신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전통에 따라 나는 이렇게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나의 통제력 바깥에 근원을 두고 있는 이 운명의 힘을 ‘신’이라고 부릅니다. 내 운명은 곧 내게 커다란 의미를 지니기에 그 신은 또한 나의 ‘사적인 신’이기도 합니다. (후략)[6]
융은 종교와 신을 전통적 방식으로 인식하기를 거부한다. 그에게 신은 단지 미지의 존재일 뿐이다. 이러한 신이 자신의 의지, 견해, 계획, 의도를 변화시킨다고 융은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의지와 의도는 그의 학문 용어로 ‘그림자’라고[7]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이 그림자를 종교성이 억압할 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이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났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림자를 억압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그래서 위험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독교가 인간의 죄성을 억제하므로 그것이 좋지 않다는 시각은 결국 프로이트가 종교를 강박 노이로제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이다.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같은 저서들로 인해 기독교 저술가로 오해받기도 하는 에리히 프롬은 개인의 심리는 물론 일반 대중의 심리를 연구한 사회 심리학자 겸 정신분석가다. 프롬은 선(善)을 가장 신(神)적인 요소로 여겼으며, 무집착과 무소유야말로 예수, 부처, 에크하르트, 마르크스같이 위대한 인생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한 가치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개인 심리 분석이 사람들의 신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사람마다 신 개념이 각각 다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프롬이 이해한 신은 성경이 말한 ‘절대 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유신론적 종교에서, 그것이 다신론(多神論)이든 일신론(一神論)이든, 신의 최고의 가치는 가장 바람직한 선(善)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특별한 의미는 한 사람에게 가장 바람직한 선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신 개념의 이해는 신을 숭배하는 사람의 성격구조(性格構造) 분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8]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융, 에리히 프롬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정신적 아노미를[9] 겪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종교적 역할을 감당했다고 자부한다. 이들은 사람들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종교의 최고 목표라고 여겼는데, 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목회자들이 오늘날 적지 않게 존재한다.[10]
[1] trendsetter, 어떤 유행이나 사고(思考) 패턴을 주도하는 존재
[2] Karl Heinrich Marx, 공산주의 혁명가, 역사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3] 프로이트, 『프로이트 심리학 연구』, 청목서적, 225-226쪽
[4] The Myers-Briggs Type Indicator,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하는 심리검사다. 브릭스와 마이어스 모녀가 개발했다. 성격 유형은 모두 16개며 외향형과 내향형, 감각형과 직관형, 사고형과 감정형, 판단형과 인식형 등 네 가지의 분리된 선호경향으로 구성된다. 선호경향은 교육이나 환경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 잠재되어 있는 선천적 심리경향을 말하며, 각 개인은 기질과 성향에 따라 각각 네 가지의 한쪽 성향을 띠게 된다.
[5] 이 글은 원래 1959년 BBC방송에서 융이 “나는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 신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오자 자신이 신에 대해 언급한 것을 좀 더 상세히 품어 설명한 것이다.
[6] 에드워드 암스트롱 베넷, 『한 권으로 읽는 융』, 푸른숲, 224쪽
[7] 그림자(The Shadow)는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위험한 유전적 본능을 일컫는 융의 용어로서, 인간의 악한 본성 또는 기독교의 죄성과 비슷한 것이다.
[8]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77쪽
[9] anomie, 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 의식이나 이상이 상실됨에 따라 사회나 개인에게 나타나는 불안정 상태
[10] 성공주의 목회를 평생 추구한 로버트 슐러 같은 목사가 바로 그렇다. 그는 기독교가 전통적인 전도와 개종 같은 가치 대신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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