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박태양 칼럼] 교리 따로, 신앙 따로

사진: unsplash의 CHUTTERSNAP

눈먼 기독교(60)

2012년 한목협과 글로벌리서치가 공동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종교 교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적이 있다.[1] 이 조사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상대적으로 강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개신교인조차도 실제로는 교리를 온전히 믿지 않고 있는 경우가 점차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선, 기독교 교리 중, ‘이 세상의 신은 오직 하나다’라는 항목에 개신교인 67.2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2004년 조사에 비해 11.2퍼센트가 줄어든 수치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이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항목에 개신교인 19.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2004년의 9.6퍼센트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개신교를 믿는 기독교인 열 명 중 두 명은 불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설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시대가 문화의 퓨전을 넘어 종교의 퓨전을 추구하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

‘극락과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는 항목에 개신교인 40.4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2004년보다 2.4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현세에서 그 마음 상태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미리 맛보며 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기독교는 죽은 후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다.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이 열 중 넷이라니, 이것이 과연 이해되는 현상인가?

‘특정 종교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항목에 개신교인 30.2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것은 8년 전 조사 때보다 4.8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적인 신앙이 개신교 안에도 이미 깊숙히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2] 전체적으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에 대한 의식은 아직까지는 개신교인이 천주교인보다 더 확고하다. 그러나 개신교 역시 천주교처럼 종교 통합 또는 불교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전반적 흐름이다.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것은 교리를 불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신앙생활하는 기독교인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이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자신이 속한 종교의 교리와는 별도로 자기 나름의 신앙을 가지고 그 종교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교리 따로, 신앙 따로’인 기독교다.

타협과 편협

현대 기독교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다른 종교와의 관계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있는 다양한 종교는 각기 존중받아야 하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 정도가 아니라 모든 종교가 서로 화학적으로 혼합돼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모든 종교가 다 진리고, 구원이며, 생명이라고 인정해야 일반 대중에게 상식적이고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오직 기독교, 좀 더 정확히는, 오직 예수 안에만 진리가 있다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전통적인 확신이었는데, 이제 이런 확신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다른 종교는 진리가 아니고, 구원이 없으며, 생명을 주지 못한다고 여기는 대신, 다른 종교는 기독교를 해석해 주고, 기독교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 주는 동반자로 여긴다.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가 그 전통적 가치를 잃고 있음을 앞에서 이미 보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서구 복음주의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미 벌어졌다. 이는 다음과 같은 통계 자료로도 입증된다.[3]

“당신과 신앙이 다를지라도 선한 사람은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설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을 보인 비율; 모르몬교도 98퍼센트, 주류 개신교인 96퍼센트, 유대교인 95퍼센트, 가톨릭 신자 93퍼센트, 흑인 개신교도 90퍼센트, 기타 종교 신자 90퍼센트, 무종교인 87퍼센트, 복음주의 개신교도 83퍼센트

이 수치는 미국의 국민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종교의 가르침과 상관없이 천국은 착하게 살면 가는 곳이라고 사실상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 역시 종교적 공존 단계를 지나 종교 통합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대는 바야흐로 성경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복음주의 조차도 온갖 사상과 혼합돼 존재하는 시대다. 그래서 슈바이처, 함석헌, 조엘 오스틴, 헨리 나우웬, C. S. 루이스, 문동환도 복음적이라고 인정받는다. 그래서 현대 사상에 물든 복음주의가 변절이 아닌 적응으로 칭송된다. 이러한 현상을 데이비스 웰스는 이렇게 표현했다.

복음주의는 바리케이드를 낮추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었다. 근본주의의 최대 죄악이 타협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복음주의 권에서 최대 죄악은 편협함이라고 할 수 있다.[4]

과거 복음주의 기독교는 이방 사상과의 타협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길 정도로 꽉 막힌(?) 신앙이었다. 그런데 이제 복음주의라고 스스로 여기는 현대 신앙은 이방 사상과 타협하지 않는 편협함을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긴다. 이것은 비극이다. 다른(즉, 틀린) 신학과의 혼합을 수용하는 것은 타협이라는 성숙함의 모습이고, 다른 신학과의 혼합을 거절한 것은 편협이라는 미성숙의 모습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편협하지 않은 이들이 선택한 신학은 인간의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케 해 주며, 치유해 주는 것을 가장 큰 덕목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 시대의 다른 신학은 치유 신학이며, 이 새로운 신학은 심리학과 떨어질 수가 없게 됐다.


[1]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의식조사”는 전국 7대 도시의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개별 면접 방식으로 조사된 것이다.

[2] 그 밖에 이번 조사가 보여주는 개신교인들의 교리와 신앙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이 세상에 종말이 온다’는 항목에 55.7퍼센트(2004년, 61.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명절이나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는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항목에 20.6퍼센트(2004년, 24.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궁합이 아주 나쁘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항목에 29.5퍼센트(2004년, 15.4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명당에 묏자리(묘지)를 쓰면 자손이 잘 된다’는 항목에 29.5퍼센트(2004년, 15.9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동성 연애자도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항목에 17.5퍼센트(2004년, 17.8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생명복제는 신의 영역이므로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에 54.6퍼센트(2004년, 67.7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3] “신앙문제조사” 미국 국제커뮤니케이션 리서치가 2007년 18세 이상의 성인 1927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전화 설문 결과다. -로버트 D. 퍼트넘과 데이비드 E. 캠벨 공저, 『아메리칸 그레이스』, 페이퍼로드, 641쪽

[4] 데이비드 웰스, 『신학 실종』, 부흥과개혁사, 210쪽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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