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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주의, 무비판적 사고와 방종 낳는다

사진 : Agnieszka Kowalczyk on Unsplash

이 코너는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현상과 이슈들을 성경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재조명해 보고자 새롭게 기획되었다. <편집자>

지난 3월 미국장로교(PCUSA)의 발표를 마주한 세계의 수많은 교회는 충격에 빠졌다. 교회 내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인정하는 교단헌법 개정안 14F(동성결혼 인정)법안을 최종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단을 탈퇴하기로 결의하거나 반발하는 교회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중이지만 미국장로교는 최근까지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마치 동성애에 관해 성경에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도 주일이 되면 성경을 펼쳐 설교를 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대체 어디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져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오게 된 것일까?

신약성경에서 ‘죄’라는 단어로 쓰인 헬라어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의 기준을 벗어남을 의미한다.

건물벽이 기우뚱하게 세워지면 언제 무너질지 모를 위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죄는 결국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시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죄를 이용하는 사탄의 목표이며, 사탄은 그 목표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처럼 잔혹하게 사람을 죽이거나, 성폭행으로 여성들을 짓밟는 사람들은 죄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진리의 기준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죄는 사람을 진리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고 마취 상태에 이르게 한다. 죄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죄를 합리화하는 시대

생명의 영역에 도전하는 생명공학기술과 성개방 풍조에 따른 다양한 문화의 등장으로 이 시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죄를 죄로 보지 않고 죄 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죄를 합리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사탄은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영원한 진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양심과 도덕적 기준마저 허물어 버리고 있다. 진리의 과녁에서 벗어나는 일이 정치, 종교,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전면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또 극단적인 개인주의는 심각한 가치의 상대화 현상을 빚어내 무엇이 진리인지 질문하는 것조차 어리석은 일처럼 만들어 버렸다.

즉, 다양한 가치 위에 군림하는 특정 가치나 중심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多元主義)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회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개인이나 사회 둘 다 가치 있게 여기는 다원성(多元性)을 인정한다.

개인과 사회 집단 모두가 하나님 앞에 책임이 있다(행 17:31)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절대적이기에 유일한 진리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다원주의의 문제는 결국 모든 일에 대해 무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해, 지켜내야 할 윤리적인 영역에서조차 사람들을 무책임한 방종으로 이끈다. 결과적으로 개인적인 선호를 중시하게 돼, 진지한 주제 앞에서는 언제든지 회피해 버린다.

“그래요. 당신의 의견도 일리가 있고, 존중해요. 하지만 나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그럴 권리는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 앞에 영원한 진리를 가진 교회는 복된 진리의 말씀을 제시해야 한다.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암 7:7)”

다림줄은 담벽의 수직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그 다림줄이 지금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 어떤 담을 쌓아놓는다고 한들 그 담 곁에서 주님이 다림줄을 내리시면 모든 거짓은 드러나고야 만다.

인생의 수많은 경험과 쌓은 지식이 진리가 될 수 없음은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공의만이 변치 않는 진리의 기준이다. [복음기도신문]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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