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통신]
크리스마스 다음 날, 탄자니아 1년 사역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송별식을 부득이하게 크리스마스에 해야 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 보좌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가 탄생한 축제의 날에 이별의 슬픔을 나눠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우리의 이별이 성탄의 의미나 기쁨을 희석하면 어떡하나 싶었다.
그런데 성탄절은 다가오는데 그 어디에서도 성탄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무슬림이 많은 시골 마을이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고사하고 작은 전등 하나 밝히는 교회가 없었다.
당연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거나, 카드를 돌리거나, 특별행사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난한 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고단하고 힘든 365일 매일 중 한 날일 뿐, 특별한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없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감사하게 한국의 방송작가 신우회로부터 크리스마스 특별 헌금이 도착했다.
어렵게 구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크리스마스 장식도 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생전 아이들이 맛보지 못한 사탕과 초콜릿 등으로 간식 바구니도 준비했다. 구제 시장에서 구매한 가방, 신발, 옷가지 등과 쌀, 기름, 세제 등 생필품을 갖춰서 달란트 시장도 열었고 아이들과 함께 성탄 공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필라오도 만들고 만다지도 튀겨서 함께 나누었다.
12명의 아이에게 장학금도 전달했다. 적어도 일 년 동안은 학비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에게 크리스마스 축제의 날이 되었다. 가장 큰 선물이신 아기 예수님이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다.
축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을 때 즈음 이별 인사를 했다.
“마침내 여러분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 오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크리스마스에!!
예수님이 이 땅에 왜 태어나셨을까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를 이곳까지 오게 했습니다. 2023년이 시작되는 1월에 여러분들을 만나서 지금까지 참 행복했습니다.
가끔은 나의 마음 같지가 않아서 속이 상하고 화도 나고 슬프고 아팠던 적도 있었지만 행복했던 때가 더 많았습니다.
선교사로서 탄자니아에 복음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싶었지만, 제가 이곳에서 가장 많이 한 일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곁에서 1년을 함께 산 여러분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받았습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스와힐리어를 잘 하지 못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저의 마음도 잘 나누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이 좋은 기억이 되어 여러분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보고 싶을 겁니다. 보고 싶은 만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힘써 여호와를 알고 사랑하는 축복의 자녀들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를 위해 그렇게 기도해주세요. 비록 우리가 한국과 탄자니아 멀리 떨어져 있지만, 기도를 통해 만날 수 있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고 누릴 수 있도록 저도 힘써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음에 우리가 만날지 못 만날지 모르지만, 나의 기억 속에는 여러분들이 언제나 있을 거예요. 잘 지내요. 여러분들은 예수님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귀하고 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1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곳에 도착하고 3개월은 벼룩과의 전쟁이었다. 그 전쟁은 어떤 사역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곳에 오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데 고작 벼룩을 잡고 있는 것인가? 라는 자괴감에 빠져있던 날에도, 땅속 깊숙한 곳에서 잠자고 있던 물이 터진 날에도, 인형극 공연이 좌절된 날에도, 마을 아이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벌였던 날에도,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주일학교 공과 교재가 나왔던 날에도, 말라리아로 아팠던 날에도. 발톱이 빠질 정도로 걸으면서 전도를 나갔던 날에도, 사탕을 받아먹었던 히잡을 쓴 동네 무슬림 아이들이 교회에 몰려왔던 날에도, 믿었던 현지인 아이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 도망갔던 날에도… 그 모든 날이 은혜였다.
뭔가 대단하고 의미 있는 사역들을 감당하고 눈에 보이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일 년의 사역을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그냥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전부였던 일 년이었다.
살면서 함께 울었고, 싸우고, 화해하고, 오해하고 이해하고 예배하고 그러다 보니 일 년이 지났다.
한국을 떠난 지 350일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고, 한국에서 2024년 새해를 맞이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탄자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아이들과 함께였는데, 한국의 겨울과 일상이 낯설다. 문득문득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목구멍에 뜨거운 것이 걸린 것처럼 욱신거리지만 한국이 좋긴 하다.
3시간 이상 불을 켜놔도 전기가 나가지 않고, 원숭이와 벼룩과 날짐승, 들짐승이 없고, 인터넷도 빵빵 터지고, 찰진 쌀밥과 고기와 두부와 콩나물을 먹을 수 있고, 손빨래하지 않아도 되고, 모국어로 예배드릴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 한국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이곳에서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2024년도 불편하고 힘든 곳으로 향하는 나의 선교의 발걸음은 계속되리라는 것을.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곳에서 나는 또다시 안녕하며 하나님의 평안을 전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 게 되리라는 것을.
하지만 두려움보다 기대로 그 소망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불편과 힘듦을 덮어준다는 것을 내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기도신문]
탄자니아=김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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