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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나 칼럼] 참으로 뻔뻔한 요-‘나여’!

AI 제작. DALL-E

소리전쟁 3

하나님은 지중해 바다를 흔드신다. 얼마나 무섭게 폭풍이 일어났으면 배안에 있는 사공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믿고 의지한 신(god)의 이름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물건들을 바다에 던졌겠는가. 그런 상황임에도 배 밑층에 가서 깊은 잠을 자는 요나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요나서 1:5). 바다의 폭풍이 감탄하지 않았을까?

“와! 세상에 이런 일이”

이렇게 배가 깨질 정도로 큰 폭풍이 내려치는데도 잠을 자는 요나의 모습에 말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이러한 바다 폭풍의 재앙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이는 분명 누구의 잘못으로 인한 재앙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비를 뽑게 되고, 결국 요나가 재앙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큰 재앙을 당한 그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였기에, 선장은 요나를 깨워 하나님께 구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요나서 1:6)

무리들이 요나에게 하는 질문을 들어보자 (요나서 1:8).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왔는지 말하라!”

“당신 생업은 무엇이요?”
“당신은 어디서 왔소?”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소?”

요나 선지자는 무리들의 이런 다급한 질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하고 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요나서 1:9)

“나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요!”(요나서 1:9)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요나의 대답이 너무나 뻔뻔하게 들리는 것은 나만 느끼는 걸까? 정말 요나의 대답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아니면 울어야 할까? 그가 히브리 사람인 것은 맞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가?”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해 지중해 바다가 흔들리고,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의 생명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데 배 밑층에 내려가 깊은 잠을 자고 있었던 요나가 무리들 앞에서 태연히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서’ 이런 결과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무리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오히려 요나 선지자를 책망하고 있다.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요나서 1:10)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 정말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 맞소?”
“당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소?”

바다의 큰 폭풍은 점점 흉용해 지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자 요나는 이 모든 일의 원인과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내가 바다에 빠져 죽는 다 할지라도 나는 니느웨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니느웨에 갈 바에야 차라리 나를 바다에 던져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런 사람이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차라리 다른 사람을 선택해서 사용하시면 되지 않는가?”

뻔뻔해도 어쩌면 그리 뻔뻔하고 고집스럽고, ‘자신의 의(self-righteousness)’로 똘똘 뭉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요나라는 이름을 거꾸로 사용해보라! 이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 성경은 누구를 다루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요나’를 거꾸로 쓰면 ‘나요!’가 된다.

요나 하면 우리는 고집스럽고 자기주장과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길로 가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다. 그런데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이러한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가 우리모두의 마음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이러한 상황과 환경에 처하면 요나와 같이 말도 안 되는 고집과 아집과 자기주장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바다를 흔들어 깨워도, 자신을 바다에 던져 죽여 달라고하는 이런 뻔뻔스러움의 행동을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한
가지 소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늘 아버지’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 “너는 요나서의 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최요나: “글쎄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요?”
하나님: “왜 많은 사람들이 요나서를 읽으면서 불편한 줄 아니?”

최요나: “글쎄요, 워낙 고집도 쎄고, 말도 안 듣고, 하나님께 말대꾸하고 죽여

달라고 하는 사람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하나님: “대부분의 사람들 안에는 요나 콤플렉스(Jonah complex)가 있단다.”
최요나: “그게 뭔가요?”

하나님: “내가 요나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중요한 주제는 요나의 모습을 통해 먼저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자 했다!”

최요나: “내 안에도 요나와 같은 못된 심보가 있고, 욕심이 있고, 지독한 분노와 불순종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으셨다는 말씀이세요?”

하나님: “요나를 거꾸로 읽어보렴.”
최요나: “나요!!, 아 그렇구나!”

“요나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것이다!”

요나 선지자가 참으로 뻔뻔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요나와 같은 못된심보가 있고, 욕심과 아집이 있고, 지독한 분노와 불순종의 모습이 있다는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다. 참으로 뻔뻔한요-‘나요’!!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최요나 선교사 | 총신대 신학대학원 졸. 국제오엠 이스라엘 소속. CCC와 YWAM 예배인도자와 순장으로 사역. 저서 <네가 나의 영광을 짓밟았다>(규장 간, 2020)에 이어 최근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살아왔던 ‘하나님의 소리’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2023년 11월 <소리전쟁(엎드림출판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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