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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나는 왜 소셜 미디어를 그만두었는가?

사진: unsplash의 ROBIN WORRALL

9개월 전, 소셜 미디어에 관한 팟캐스트를 녹음하던 중에 나는 소셜 미디어를 그만뒀다.

계정을 삭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슬플지, 외로울지, 아니면 사람들과 연락이 끊길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내가 과연 소셜 미디어를 안 하고 살 수 있을지 자체도 가늠할 수 없었다. 사실 직업 면에서 소셜 미디어는 내가 활용하는 자료가 온라인에서 뒤떨어지지 않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게다가 또 온라인에도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은가? 상호 연결이 있고, 다양한 성경 해석을 접할 수 있으면 기쁨이 공유되고 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등 아름다운 활동이 일어난다. 내가 정말로 이 모든 것에서 나 자신을 영구히 차단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여기에 솔직한 진실 하나가 있다. 소셜 미디어를 그만두고 40주가 흘렀는데 한 번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여름 방학, 생일, 그리고 이런저런 휴일을 지나면서 단 한 번도 사진을 게시하지 않았고, 메시지도 읽지 않았다. 또 오랜 친구가 올린 인생 전환 스토리도 보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놓치고 사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다시 돌아갈 계획이나 욕구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는 소셜 미디어에 가입하기 이전의 내 삶보다 지금이 훨씬 더 나아졌기 때문이다. 

왜 소셜 미디어를 시작했는가

나는 스물일곱 살 때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다. 홈스쿨링을 하는 젊은 엄마로서 소셜 미디어는 (말 그대로) 내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건 우리 가족이 무엇을 하는지 그들과 공유하고, 또 나와 같이 홈스쿨링하는 다른 엄마들과 서로 기뻐하거나 위로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페이스북이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울라고 말한 성경 말씀(롬 12:15)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고 소셜 미디어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훌륭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아이들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게 어색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대화를 중단했다. 또 내가 하는 일을 이리저리 떠드는 것도 내 자랑 같아서 점점 줄여나갔다(잠 27:2). 게다가 어떤 이슈에 관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그래서 나는 그런 이야기도 전혀 쓰지 않았다(잠 17:28).

그 시점에 이르자 나는 사실상 잠수를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에 따른 결과는 내가 올린 게시물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도파민의 흥분 호르몬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소셜 미디어를 그만둘 수 없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 일어났는데 행여라도 내가 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왜 그만두었는가

나름 조사한 결과, 나는 소셜 미디어 계정을 폐쇄하는 사람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계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강하게 반대하는 내부 충동을 극복하는 데에는 어떤 자극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의 첫 번째 작은 시작은 에밀리 젠센이 쓴 통찰력 있는 Social Sanity in an Insta World를 읽으면서였다. 그녀는 내가 소셜 미디어를 하면서 일찍이 느꼈던 여러 증상을 하나씩 나열했다. 남는 시간을 때우려고 소셜 미디어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것, 긴 독서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느끼는 낮은 수준의 불안감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내게 결정적인 충격을 준 것은 통찰력 있고 경건한 Z세대 여자아이들과 대화하는 중에 그들을 얽매고 있는 소셜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얻는 것은 거의 없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셜 미디어를 떠나는 데에는 겸손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알고리즘에 맞설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소셜 미디어에 접속할 때마다 느끼는 도파민이 주는 기대감을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페이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며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완전히 성공할 수 없었다. 데이비드 앨런(David Allen)의 표현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는 정복하기 불가능한 일종의 무한 고리이다. 

나라고 소셜 미디어를 적절하게 활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마침내 아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 로라의 경우에는, 소셜 미디어에 며칠 내내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다. 나와는 달리 그녀는 거기에 조금도 매여 있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도구를 통해서도 그녀의 사역을 아름다운 방법으로 축복하고 계신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아무리 관대하고 은혜로운 마음으로 로그인하려고 해도, 다른 글들을 읽을 때면 조급해지거나 지루해졌다. 흥미로운 글이 내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열리도록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날카로운 분노나 좌절감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도록 만들었다. 내가 소셜 미디어를 그만뒀을 때, 나는 결코 그 이전보다 더 친절하고, 더 똑똑하고, 더 현명하거나, 주님을 더 사랑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다 없앴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트위터까지. 

왜 나는 소셜 미디어를 여전히 하지 않는가

에밀리가 옳았다. 소셜 미디어는 그녀와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손을 떼고 난 이후 나는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게 되었다. 더 명확하게 생각하고, 더 효과적으로 내 삶을 조절하면서 집과 직장에서 눈에 띄게 효율성이 높아졌다. 이제 나는 지루함 없이 성경과 다른 책들을 읽을 수 있다. 가족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더 사랑한다. 사라지지 않던 낮은 수준의 불안감이 없어졌다. 더 편안하고 더 잘 참는 사람이 되었다. 선택을 내릴 때도 훨씬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무언가가 소셜 미디어에서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점을 계속 이야기할 수 있다. 더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팟캐스트 Gospelbound에서 내가 Collin Hansen과 나눈 이야기를 권한다.)

이제 나는 누군가가 소셜 미디어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 덕에 나는 트위터에서 벌어졌을 수백 번의 싸움과 험담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진짜 생활과 다른 사람이 온라인에 올린 인스타 생활을 비교하는 일도 내 삶에서 사라졌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다. 물론, 분명히 몇 가지는 놓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 즉 순전한 기쁨, 향상된 집중력, 주님의 인도에 대한 민감성이 주는 장점은 분명하다. 소셜 미디어 사용 여부의 장단점을 결정하는 저울의 추는 하지 않는 쪽으로 더욱더 기울고 있다. 

내게는 이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보통 미국인이 하루에 소셜 미디어에서 쓰는 시간이 두 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신도 ‘내가 왜 이걸 계속해야 하지? 이게 그럴 가치가 있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원제: Why I Left Social Media—and Won’t Go Back

사라 에코프 질스트라 Sarah Eekhoff Zylstra | TGC의 편집자 겸 선임 작가이다. Dordt University에서 영어와 소통(BA),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Christianity Today의 작가였으며, 프리렌서로 지역 신문에도 기고를 하며, Trinity Christian College에서 가르쳤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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