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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칼럼] 우리는 성경을 수호한다

사진 : Ivan Samkov on Pexels

송준기 목사는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의 순종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그같은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담아냈다. 이 칼럼은 그의 저서 발췌와 집필을 통해 선교적 교회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한다. <편집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분부한 모든 말씀

웨이처치 첫 모임 이후,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 따라가기를 지속했다. 1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합당한 자”(마 10:11)를 찾아 모임을 만들었다. 모여서 성령의 충만을 위해 회개하며 함께 기도했고(행 2:38),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나누었다(마 28:20).

모임을 실행하니 더욱 기도와 말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화를 위한 성경공부의 자발적 필요성이 모일 때마다 커졌기 때문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의 명령 때문이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

예수님의 명령은 분명했다. 그분은 말씀의 ‘일부’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것도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우리는 놀라서 서로 물었다. 그 ‘전부’란 무엇인가?

처음에는 사복음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담겨있고, 주님의 직접적인 말씀들이 붉은 색 글씨로 표기되어있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구약과도 깊은 연관이 있었다(마 5:17). 부활 직후, 예수께서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장면을 생각해보라. 주님은 구약에서 당신을 누구라고 하는지 가르치셨다(눅 24:44-48).

‘그렇다면 우리가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예수님 말씀의 모든 것은 사복음서와 구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좇아 구약 전체를 가르쳐 지키게 했던 내용이 신약 전반에 나타나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 직후에 사도들은 설교하러 나갔다(행 2:14). 그들은 구약을 예수님의 관점으로 전했다(행 2:16-21). 사도들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구약을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관점으로 성경을 통으로 가르쳤다(행 7:1-53). 게다가 사도들은 입을 모아 “교회는 성경의 터 위에 서 있다”라고 말했다(고전 1:5-9, 엡 2:20).

성경적인 사람

교회가 무엇인지는 모호하지 않다. 성경에 답이 있다. 우리가 성경적인 교회가 되려면 먼저 성경대로 교회를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는 제자들을 교회와 동일시했다(행 8:1,3, 9:2,17-22). 바울도 “교회는 성도들”이라고 정의했고(고전 1:2), 성령의 임재가 있는 사람들을 곧 성전이라고 불렀다(고전 6:19). 이후에도 성경은 어디서나 “성도들=교회”라고 말한다. 만약 이를 받아들인다면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는 방법은 성경적인 사람에게 있다’라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한다. 성경이 있는 한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것은 보류나 시간 벌기가 아니라 불순종일 뿐이다. 답의 존재가 아닌 순종 액션에 의해 성경적인 교회인지 아닌지가 판가름 난다.

성경적인 교회를 세우려면 성경적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성경대로 행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성경지식은 불신이다. 불순종자가 말하는 진리는 성경을 복잡하게 보이도록 할 뿐이다. 성경지식은 실천지식이다. 삶에 녹여내지 않는 지식을 들고 말씀을 안다고 선포하는 것은 성도를 미혹하는 것이다.

교회는 모임이다

성경은 교회가 무엇인지 모호하게 다루지 않는다. 구약에 “하나님의 집”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대상 6:48, 시 135:2). 신약은 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돌들이 바로 ‘성도들’이라고 말한다(벧전 2:5). 예수님은 그 돌 위에 자신의 집을 세우신다(마 16:18).

신약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집’은 돌로 쌓은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성도들을 “산 돌”로 사용하셔서 직접 지으신 사람 건물이자, 그들의 삶과 신앙이 서로 어우러진 영적 건물이다. 주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손수 석재들을 고르신다. 그 재료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성도들’이다. 성경은 그들을 “모임” 즉, “오이코스”라고 부르며,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는 행위를 “오이코도메오”라고 칭하신다(마 16:18).

성경대로 하자면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행위를 할 때’ 탄생한다.

왜 모여야 하는가

모임에는 목적과 내용이 있다. 교회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이유는 성경에서 모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다(행 1:4). 최초의 교회는 그 명령에 근거해서 모임으로 탄생되었다. 그 모임은 목적이 분명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 한마디로 ‘성령 임재’였다.

예수님은 모임의 결과도 알려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제자들은 성령의 권능으로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함께 모여서 성령 임재를 위해 합심기도를 했다(행 1:14).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이 임했다(행 2:1-4). 제자들은 곧 권능으로 말씀을 전했으며(행 2:14-40), 세상 도처에서 제자화를 진행했다. 순종하자 말씀이 삶에 나타났다. 그 실체가 바로 ‘교회’였다.

모여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행하자 말씀대로 이루어져 교회가 되었다. 예수님의 명령을 믿고 모여서 기도했더니 약속대로 성령님이 오셨다.

성령님은 오이코스에게 방언을 주셨다(행 2:3). 바벨탑 사건(창 11:7, 8) 이후 처음 일어난 언어의 통합과 자유였다. 합심기도는 성령 임재와 동시에 방언으로 이어졌고, 방언은 다시 사도들의 말씀 선포로 이어졌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주셨다(요 14:26). 제자들은 그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마 28:20, 행 2:11, 14-41).

이후로도 기도와 말씀은 모임에서 빠지지 않았다. 성령 임재의 약속이 실행된 이후, 제자들은 끊임없이 모였고(행 2:46, 히 10:25), 합심기도와 말씀 전하기를 지속했다. 교회는 모임이었고, 모이면 기도와 말씀이 진행되었다.

성경의 터 위에

성경은 한 권의 책이다. 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스승은 성령님이시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 직접 가르치신다(요 14:26). 성령의 능력으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 그리고 역사 속의 다른 선배들도 성경을 한 권으로 가르쳐 지키게 해왔다. 그들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부를 전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마 28:20). 그 일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이것이 그분의 역할이다. 우리 손에는 성경책이 있다. 이것은 66권이거나 27권이거나 혹은 4권으로 다룰 수 없다. 성경은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는 일에 힘쓴다(고전 1:6).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며, 지키게 한다.

일부가 아닌 전부를 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12주 혹은 40주 만에 다 끝낼 수 없다. 자신이 먼저 말씀을 먹고, 실행으로 소화하며, 제자에게 전하는 것은 평생 걸린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당신이 성경적인 사람이 되는 일이다. 설교자에게 성경을 맡겨두기만 해서는 교회를 이룰 수 없다. 성령의 사람은 성경을 읽는다. 자신의 마음에 성경이 이미 들어와 있지 않으면 어떻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해주실 수 있겠는가?

성경 전체에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이 모임의 내용이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으로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예외나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주인 되신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장형 사고방식이나 메가처치 현상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말씀대로 한다. 그래야 성경적인 교회가 될 테니.

우리가 교회를 가기만 해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교회로 존재할 때에야 비로소 세상이 변화될 것이다_마리사 베이커(Marissa Baker)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끝까지 가라(도서출판 규장)>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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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기 | 총신신대원 졸. 웨이처치 담임 목사. ‘교회와 선교는 하나’라는 주장을 이론만이 아닌, 선교적 교회 개척 실행을 통해 순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서 <끝까지 가라> 등 10권의 책에 그동안의 생각과 순종의 여정을 담았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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