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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칼럼] 아테네 대학로 건물 벽화의 마지막 인물 사도 바울

김수길 제공

그리스 이야기 (13)

아테네 그리고 사도 바울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일이 모여 사는 대도시(메트로폴리탄)이다. 아테네는 아티카 분지의 중심에 위치하며, 4개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북쪽에 1413m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파르니타(Πάρνητα)산이 있고, 서쪽에는 아이갈레오(Αιγάλεω)산, 동쪽에는 히메투스(Υμηττάνου)산, 북동쪽에는 펜텔리쿠스(Πεντελικός)산이 자리하고 있다. 중심부에는 여러 개의 작은 언덕도 있으며, 그중 가장 높은 리카비또스(Λυκαβήττος) 언덕에서는 아테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남서쪽의 사로니코스(Σαρωνικός)만을 내러다 볼 수 있다.

주전 5세기,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맹주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아테네는 표현하기 힘든 고대와 현대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시내 곳곳에 산재해있는 유적과 유물들은 고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곳에서 상상력이 풍부한 여행객이라면 정치가 페리클리스(Περικλής)의 열띤 연설소리를 들을 수 있고 프라톤의 아카데미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신 유행의 패션 감각을 지닌 젊은이들과 관광객으로 항상 붐비는 에르무(Ermu)거리에는 여느 유럽 도시에 뒤지지 않는 현대적인 빌딩과 고풍스러운 전통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중세 비잔틴 건축물 또한 곳곳에 남아 있어,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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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아테네의 시작

아테네는 신화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아테네의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을 무렵, 아테나 여신과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이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놓고 다투었다고 한다. 두 신은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을 주는 쪽의 이름을 따르기로 했고, 지역 왕인 케크롭스 1세(Κέκροψ Ι)가 판관이 되었다. 포세이돈은 그의 주 무기인 삼지창을 땅바닥에 꽂아 우물을 만들어 물을 솟게 했다.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선사하고 그 나무를 기르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 경쟁에서 케크롭스 1세는 아테나 여신의 손을 들어주었고, 도시 이름은 아테네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일부 학자들은 오히려 여신의 이름이 도시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테네의 실질적인 역사는 주전 8-7세기에 아테네 주민들이 주변의 분열된 4개의 부족과 연합으로 시작되었다.

기원전 508년, 클레이스테네스는 강력한 개혁을 주도하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세워, 아테네 도시 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기존 혈연 중심의 부족제를 지역 기반 부족제로 재편하고, 민회(에클레시아)를 강화하고, 독재방지를 위해 도편추방제를 도입하는 등 시민이 평등하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는 이오니아 반란을 진압했다. 이때 아테네가 이오니라 반란을 지원하자, 페르시아는 그리스 본토를 참략해, 제1차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이 발생한다. 우리가 잘 아는 기원전 490년의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인들의 용맹과 애국심이 제2차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에서도 승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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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아테네의 전성기

아테네의 최전성기는 페리클레스(Περικλής)의 시대이다. 전쟁으로 불타버린 아크로폴리스를 불타지 않는 대리석으로 새롭게 건축했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에도 아테네는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로마에 점령된 시기에도 아테네는 부와 명성을 유지한다. 특히 하드리아누스(117-138 AD) 치하에서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이 완공되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수로가 건설되었다. 아테네를 너무도 좋아했던 이 황제는 아테네의 제우스 신전을 자신의 신전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사후 다시 제우스 신전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가 세운 신전의 대문만은 지금도 하드리아누스의 문으로 불린다.

이 후 로마 제국의 쇠락과 함께 아테네 역시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신앙심 깊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아카데미아를 폐쇄할 시점에는 이미 존재 자체가 유명무실했다. 아테네가 자랑하던 파르테논 신전과 헤파이스토스 신전 등의 신화는 사라졌고 파르테논 신전은 소피아 교회로 바뀌었다. 1204년 십자군은 아테네를 점령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운명에 따라 아테네 역시 1456년에 오스만 튀르크에 함락되었다. 그 후 아테네는 완전히 몰락해 아크로폴리스 주변에 작은 촌락으로 전락한다.

1828년 그리스 왕국이 독립한 이후 원래 그리스의 수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나플리오였다. 1833년 오토 왕의 주도로 아테네가 새로운 수도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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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제공

아테네에서 사도 바울

정치의 중심인 국회 의사당에서 오모니아 광장까지의 길이 ‘대학로’를 으미하는 빠네스테떼미우(Πανεπιστημίου)거리이다. 이 길 중간에 바울에게 복음을 영접했던 아레오바고의 관원 디오누시오의 이름을 딴 디오누시오 교회가 있다. 그리고 잠시 떨어진 지점에 아테네 대학교 본부 건물이 있다. 이 건물 정면에 벽화가 있다. 프로테메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훔쳐주는 장면을 시작으로 각 연대별로 중요 인들이 등장한다. 이 벽화의 마지막은 사도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하는 장면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사도 바울은 가장 귀중한 복음을 이곳 아테네 사람들에게 주었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도 헬라세계에 복음의 사도였던 바울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의 아테네 사역은 당시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바울 사도인 것이다.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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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길 선교사 | 총신 신학대학원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GMS 선교사로 27년간 그리스에서 사역하고 있다.

[관련기사]
[김수길 칼럼] 바울의 열정과 믿음을 떠올리게 하는 항구 ‘디온’(Διο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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