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김명호 칼럼] 요한계시록 아홉 번째 이야기(9): 계 2-3장

사진 : Ludovic Charlet on Unsplash

거룩함으로 일어서야 할 주의 소유된 교회

요한계시록 이야기는 요한이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한 내용이다”(계 1:19) “지금 있는 일”이란, 그리스도께서 요한을 통해 현재 고난 가운데 있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다. 요한계시록 2-3장을 말한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계 1:4) 형식으로 된 내용은, 실제 당시 독자들을 염두 해 두고 기록되어 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일곱”(7) 교회는 실제로 1세기 소아시아의 서쪽에 있는 지역 교회였다. 따라서 각 교회의 회중에게 보낸 편지라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먼저 요한계시록을 우리가 서있는 현대 교회의 상황이나 입장이 아니라, 1세기 소아시아 교회의 입장에서 읽고 생각해야 한다. 당시의 입장이란 교회의 생존이 위태로울 만큼 핍박과 고난 받는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각 교회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신실한 교회를 향하여서는 격려하고 그렇지 못한 교회를 향하여서는 회개의 촉구를 말씀 하시며 모든 교회를 향해 박해 받는 동안 인내할 것을 말씀하셨다.

일곱 교회의 순서는 의도 된 대칭 구조(chiastic structure)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A) 에베소 교회(2:1-7) 심각하고 위험한 교회

   (B) 서머나 교회(2:8-11) 신실한 교회

     (C) 버가모 교회(2:12-17) 중간 상태의 교회

      (D) 두아디라 교회(2:18-29) 음행 간음하는 교회(거짓 선지자 용납)

     (C’) 사데 교회(3:1-6) 중간 상태의 교회

  (B’) 빌라델비아 교회(3:7-13) 신실한 교회

(A’) 라오디게아 교회(3:14-22) 심각하고 위험한 교회

대칭 구조라는 문학적인 구성에서 볼 때 에베소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를,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그리고 중심에 놓여있는 두아디라 교회(2:20,21)를 눈 여겨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교회들을 대칭 구조를 통해 다각도로 볼 수 있는 면들 가운데 한 면을 취하여 생각할 수 있다.

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메시지는 거의 동일한 패턴을 사용하여 다음 7가지 내용으로 되어있다: (1) 받는 사람 (2) 보내는 사람 (3) 교회의 행위에 대한 언급 (4)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경고 (5) 인내할 것을 권고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것을 명함 (7)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

사도 요한은 일곱 교회를 향해, 한 교회 한 교회에게 편지를 썼다. 일곱 교회가 있는 도시들은 소아시아 지역에 속해 있었으며 실제 지역에 속한 지역 교회였다. 지리적인 장소를 따라서 모이는 일반적인 신자들의 모임,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 ‘-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였다. 모임의 특별한 성격이나 어떤 오늘 현대 교회와 같은 모토를 내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모인 특별한 모임이 아니었다. 지리적 위치에 따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역 교회의 의미에서 볼 때 이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 이 지역 교회들은 로마의 우편 구역에 따라 에베소라는 지역을 시작으로 큰 도로를 따라 둥그렇게 오른쪽으로 돌면서 위치해 있었다.

사진 : 김명호 제공

일곱 교회를 다루려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다양한 방법(tool)을 알아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소아시아 7 교회를 어떻게 보고 해석할 것인가?”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교회는 소아시아에 있는 실제 교회이기도 하지만 교회 역사 전체에 있었던 교회의 종류나 그 특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교회 이름은 지리적인 위치에 따라 정해졌지만 그 교회의 성격은 믿는 특성에 따라 나타나고 주께서 말씀하심에 따라 정의가 되어질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성경 주석가들은 일곱 교회가 역사상에 그 시대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에베소 교회는 신실했던 1세기 교회를 대표하며(AD 30-100), 서머나 교회는 박해 받는 시대의 교회를 대표하며(카타콤 시대, AD 100-313), 버가모 교회는 콘스탄틴 시대의 교회를 대표하며(AD 313-590, 첫 교황 그레고리 1세), 두아디라 교회는 중세시대의 암흑 교회를 대표하며(AD 590-1054, 동서교회 분리),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를 대표하며(AD 1054-1517, 타락하여 부패된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는 현대 선교 운동 시대를 대표하며(AD 1517-1900), 그리고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의 배교 시대의 교회를 대표(AD 1900-현재, 자유주의, 진보주의,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교회)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일부분은 맞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각 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이기에 전체적으로 맞지 않는다. 핍박 받고 고난 받는 소아시아 7 지역 교회에 보낸 개별 편지인 동시에 전 교회에 편지하고 있기에 결국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있는 지역 교회들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복음이 구원사적으로 한 개인을 넘어 한 백성을 향하여, 더 나아가 온 열방을 위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요한계시록의 중심은 사실 장차 일어날 하나님의 계시이지만 계시록 4장에 들어가기 전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는 계시록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 교회 된 우리의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주님이 교회를 향하여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알고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지혜를 성경에서 배우고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말씀은 신실함을 잃어버린(계 2:3) 현대 교회를 향한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돌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신실함으로 돌아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인 책임이나, 제도의 개혁이나, 인간의 도덕성이나, 인간 사회 윤리나, 변할 것 같은 외부적인 법에서 떠나, 거짓 유혹으로부터 떠나 인간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는 본질로 돌아가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외부적인 제도나 율법으로는 수시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한 점도 고칠 수 없다. 무능할 뿐이다. 존재를 변화시키는 복음으로 돌아가는 길 만이 살 길이다. 교회는 이 세상 나라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생명의 그리스도의 몸 된 기관이다. 영은 영으로, 그 해결 방법은 영에 있다. 교회의 표지는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됨(Una=Oneship)과 그 분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Sancta=Holiness)을 회복하는 것이다. 거룩은 교회에게 약속한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하신 이유가 하나님 소유를 삼으려고 택하시고 구별하셨다. 이전에 했던 방식으로 내가 나를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에 들어가면 소유권이 이전 된다. 나를 주장하고 나를 다스릴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전에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원대로 정욕을 따라 마음대로 했지만 이제 그렇게 사는 인생은 끝났다. 기억하자!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인생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말이다. 주님의 마음을 따라, 주님의 뜻대로, 말씀을 따라, 거룩한 영으로 살아야 한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교회의 표지(sign)되는 거룩과 관련하여 구약 성경에 자주 표현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택하신 표현, 수학 공식과 같은 중요한 표현이 있다. 선택 공식(Election formula)이라 말한다.

  לָקַח+ל12= 라멛2(용도) + 라멛1(소유) + 취하다(לָקַח , take)

히브리어는 이렇게 표현한다. “취하다” 또는 “선택하다” 또는 “구별하다”라고 하는 동사와 전치사 소유를 나타내는 “라멛”(ל)을 두 개 사용하여 표현했다. 첫번째 라멛은 “소유”를 나타내는 라멛, 그리고 두 번째 라멛은 “용도”를 나타내는 라멛(ל)을 사용하여 하나님이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성경이 말한 이것을 잃어버리면, 이스라엘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은, 성도 된 우리의 사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내가 너희를 내 소유로 삼았느니라! 그리고 그 용도는, 소유로 삼으신 용도는, 백성(열방에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으로, 거룩한 백성(“ 카도쉬” Holy people, 사 62:12) 으로  택하고자 함이라!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사 62: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택하신 이유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함이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구별하실 때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그것이 바로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용도다. 그 용도가 안 맞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이크의 용도는 전하는 사람의 말이 귀에 소리가 잘 들려서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용도에 아무 짝에도 쓸모 없기에 버려야 한다. 주님이 그렇게 우리를 택하시고 친히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거룩한 삶을 살도록 새 언약을 통해 자신의 형상을 회복하셨기에 주님이 친히 일하시고 이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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