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48)
나이를 더해 갈수록 일은 늘어났다. 오랫동안 교회에 있다 보니 이 일 저 일 책임이 더해져 갔다. 후임자들도 참 많은 분들이 거쳐 갔다. 좋을 때도 있었고 서로 간 어려움도 통과해 지나갔다.
목회 말기에도 낯선 목회자들이 동료로 함께 했다. 연말이 가까울수록 부교역자들의 일도 많아진다. 한 해를 정리하고 오는 새해를 계획하기 때문이다. 새로 오신 어떤 동료는 이 바쁜 때에 심방 간다고 나가서 하루 종일 안 나타나기도 했다. 중요한 심방이었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일손을 안 도와주면 나는 밤을 새워 보충해야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구체적인 사항을 모르시는 담임 목사님(이하 대장님)은 일단 조용히 모든 일이 진행되기를 원하셨다. 내가 책임자라도 그랬을 것이다. 나는 나이가 더해 갈수록 체력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새벽기도회에 지각하기가 일쑤였고 대장님을 보필하기는커녕 늦게 예배에 참석하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꾸 감당하기에 구멍이 나고 후임들은 일의 사안을 잘 모르고 일일이 얘기할 수도 없어 힘든 때가 자주 있었다.
교역자들이 다 함께 담임 대장님을 모시고 심방을 해야 하는 어느 날, 이제 막 가방 들고 교역자실을 나서려는데 대장님이 굉장히 화가 나셔서 나를 막 꾸짖으신다. 내가 전혀 모르는 내용인데 잘못했다고 큰 소리로 야단을 치셨다. 그러고는 휙 다른 후임과 심방을 나가셨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그래도 따라나서다가 손맥이 풀려서 못 가고 성전으로 올라갔다.
화가 나고 기도도 안 나오고 눈물도 안 나왔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속으로 “주님……………” 하고 눈 감고 가만히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기도가 내 깊은 속에서 터져 나왔다.
“이 웬수를 은혜로 갚아주옵소서!”
“와아 이런 기도문이 있어?”
탄성을 지르며 이 기도를 목소리를 내어서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렇게 슬프고 원망스럽고 참담한 꽈악 낀 안개같이 내 숨을 조여오던 감정이 후욱 누가 가져가듯 날라가 버렸다. 언제 그런 아픈 일이 있었냐는 듯이 말끔히 정리되었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은 내가 멍하니 주님 앞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승리롭고 놀라운 기도문을 시편에서도 나는 못 보았다. 성령께서는 기도의 달인이신 것이 맞다.
이 기도를 묵상하며 배시시 웃고 있는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소리를 지르시며 꾸중을 내신 대장님은 얼마나 불편하실까?” 원래 우리 목사님은 ‘욱’하는 데가 좀 있긴 하셨지만 항상 다정다감하신 온화하신 분이신데 후임들 앞에서 고참인 내게 소리소리 지르셨으니 난감하실 것 같았다. 또 기도를 했다.
“주님, 대장님께 이 오해를 풀어드리고 자유하실 수 있게 도와드릴 기회를 주세요.”
그 이튿날 묘하게도 주차장에서 대장님을 맞닥뜨렸다.
“대장님, 어제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뭐가 잘못되었나봐요.” 하고 사과를 드렸다.
“전도사님이 왜 잘못했어요. 오히려 내가 잘못했죠.” 대장님이 소리를 높여 사과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둘러보니 주차장에는 나와 대장님뿐이었다.
“와! 할렐루야!” 하나님은 이 시간과 장소를 완벽하게 마련해 주셨다.
그 이후 대장님과 나는 얼굴 펴고 웃으며 성전 뜨락을 거닐 수 있었다.
내 사역 말년에 여호와 닛시의 깃발을 꽂도록 역사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지금도 가끔 되뇐다.
“이 웬수를 은혜로 갚아주옵소서!”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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