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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영원한 가족을 꿈꾸는 이 땅의 가족들

사진 : Tyler Nix on Unsplash

하루는 예수님의 가족들 곧 어머니와(마리아) 동생들이(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은 항상 수많은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래서 가족들은 많은 무리 때문에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가족들은 사람을(아마도 무리 중 한 사람) 보내어 예수님께 상황을 알렸고(막 3:31), 그는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라고 예수님께 알렸다(마 12:47). 아마도 전달하는 과정에서 무리 중 몇몇 사람이 소리를 보태면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긴급하고 중대한 일처럼 예수님과 무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막 3:32).

예수님의 반응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그분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무리를 떠나 가족들을 만나지 않으셨다. 지금은 사역이 바쁘니 잠시 후에(혹은 다음에라도) 시간을 내서 만나겠다고 가족들이 부탁한 그 사람을 통해 대답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평범한 질문과 요구를 통해 특별한 권위와 지혜가 담긴 교훈을 주시는 것을 즐기셨다. 반전을 통해 생각의 전환을 끌어내셨다. 가족들이 보낸 사람과 온 무리가 듣고 깨우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8, 50)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주님은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키셨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가족들이라고 하셨다(마 12:49). 밖에 있던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들으면 적잖이 오해할 만하다. 혹시 심한 갈등과 다툼으로 가족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려서 이렇게 그들을 책망하신 것일까? 아니면 친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붙들러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멀리하신 것일까?(막 3:21). 자기를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 실망하여 거리를 두신 것일까?(요 7:5).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으로 그분이 하신 이 말씀은 가족들과의 불화, 원망, 시기, 다툼, 분노 등 악한 생각이나 행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고후 5:21). 오히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세와 영광을 가지셨지만, 육신의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또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 섬기는 자로 가족을 대하셨다.

주님은 열두 살 때,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신을 데리러 온 부모와 함께 나사렛에 내려와 “순종하여 받드”셨다(눅 2:51).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 19:26-27). 사람들은 자기 어린 아기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만져 주시기를 바라셨는데, 예수님은 거절하지 않으시고 이를 막던 제자들을 오히려 제지하셨다(눅 18:15-17). 주님은 아들을 잃은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래서 손을 대어 죽은 아들을 살리시고는 “그를 어머니에게 주”셨다(눅 7:15). 이처럼 예수님은 병든 자녀나 부모, 형제와 자매로 인해 고통받고 슬퍼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애통히 여기시고 치유의 손길을 내미셨고 가족이 다시 함께하는 복을 주셨다(나사로, 야이로의 딸 등)

예수님께서 가족을 소중히 여기셨다는 증거는 그분의 가르침에도 분명히 나타난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가족의 비유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는데, 이는 자녀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고 보호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부성애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탕자 비유, 기도의 비유). 예수님은 아내를 쉽게 버리는 당시의 빈약한 가족관을 율법의 정신을 강조함으로 비판하셨다(마 5:27-32). 가족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함부로 나눌 수 없다고 분명히 못 박으셨다(마 19:6).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육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셨다.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에 따라 남녀가 한 몸이 되고 자녀를 낳아 이룬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누구보다도 존중하셨다.

예수님은 영원한 가족을 만들러 오셨다

그러면 주님께서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과 온 무리가 듣도록 하신 말씀의 의의는 무엇일까? 그 확실한 대답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이 땅에 종의 형체로 오신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단순히 육신의 부모를 섬기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는 섬김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육신의 핏줄, 형제들과만 친밀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영생을 누리기 위해 오셨다. 쉽게 말하여 예수님은 일시적인 시간, 한정된 장소에서 누리는 가족애가 아니라 영원한 시간, 무한한 공간에서 누리는 가족애를 선물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참 어머니, 형제, 자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듣는 모든 자들이(육신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셨기 때문이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는 진실함과 행함을 갖춘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원하셨다(마 7:21). 그런 자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만 잠시 누리는 친밀감이 아니라 영원히 예수님과 더불어 생명과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될 한 가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 자기 목숨을 바쳐 이루신 복음이 결국 믿는 자에게 선물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영원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이 초대 교회 성도 중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행 1:14).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유대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자신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했다(약 1:1). 그들은 육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었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 형제와 자매, 참 어머니가 되었다. 일시적인 가족애를 넘어 영원한 가족애를 그리스도와 더불어 맛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되기를 간구하라

해마다 한국의 중요한 명절이 되면(구정과 추석), 가족과 친족들이 함께 모인다. 나라와 민족마다 다른 절기와 기념일이 있지만, 가족애를 나누는 특별한 시간이 있다는 것은 모두 비슷한 것 같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물하신 특별한 인연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나의 가까운 지인이 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한편 서글픈 일은 그들 모두와 영원한 가족애를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따르는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함께 누리게 될 영원한 가족이지만,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아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일시적인 이 땅의 삶이 지나면 영원히 단절된 관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구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는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그들 마음에 말씀의 씨앗이 심기고, 믿음의 싹이 돋아나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지식과 따르는 영을 얻게 하시기를 구하라.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잃어버린 또 하나의 자녀를 찾아달라고 간청하라. 믿지 않는 친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지혜가 요구되고 많은 박해와 조롱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예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되기를 간구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가족들의 시급하고 중대한 요구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예수님은 반전 있는 대답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그러므로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자. 쉬지 말고 기도하자. 이보다 더 중요하고 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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