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46)
어떤 때는 교인의 요청으로 심방을 갈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회가 요구해서 간다. 그러나 때로는 갑자기 그 가정에 방문하고 싶어서 이끌리듯 심방을 갈 때도 있다.
해외에 사는 친구가 여동생 남편의 별세로 갑자기 문상차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동생은 나와 안면은 있으나 친교는 없었다. 전화번호와 주소만 받아놓고 추모할 때가 된 것 같아서 꽃을 구입하여 방문했는데 부재중이었다. 아파트 문고리에 꽃을 걸어놓고 카드에 메모해 놓고 오면서 전화했다. 꽃을 걸어놓았으니 추모에 쓰라고 했다.
여러 날 후 그 여동생이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전화했던 날 사실은 한강 쪽에 있었는데 자살을 생각하며 가고 있었노라는 것이었다. 남편 작고 후 일을 했으나 돈이 벌리는 것이 아니고 감당할 수 없이 빚이 불어나서 죽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정신이 들어서 집에 왔노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날은 하나님이 그 목숨 살리려고 갑자기 나를 보내신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살아보려고 이 일 저 일 했지만 재정이 풀리지 않았다. 한날은 가보니 도시가스, 전기, 수도가 다 끊긴 상태였다. 우선 애들하고 기본생활은 해야 되니까 이 또한 카드 할부로 납부해 주고 겨우 위기는 면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 가정에서는 두고두고 고마움을 표한다. 그 돈이 내 돈이면 나에게 고맙지만 나는 돈 버는 사람이 아니니 오직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고 말해주었다.
이 가정의 자녀들은 고생길을 벗어나 사회의 중요 일원들이 되었고 내 친구 여동생은 이제 남을 많이 도와주는 하나님의 손길로 살아간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
이렇듯 심방은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지만, 내 인생의 진액을 짜서 사랑 한 방울 만들어야 하는 일도 있다.
엘리야는 3년 가뭄에 사렙다 모자를 먹여 살리려고 심방했지만, 오히려 그 가정이 먼저 자기들 한 끼밖에 없는 양식으로 선지자를 섬기는 과제를 받았다. 이를 성심으로 수행한 이 과부는 3년 내내 굶어죽는 가정 많건만 때거리가 늘 공급되었다. 급기야 아들이 죽음에 이르렀으나 엘리야의 간구로 이 아들을 부활로 받을 수 있었던 신실한 공궤였다. 이런 사랑 한 방울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시고 두고두고 상을 주신다.
현역으로 있을 때는 좀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명절 때마다 떡값을 가지고 일일이 방문하여 위로했다. 성탄절에는 케익을 사서 가정마다 배달했을 때가 제일 기뻤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계절은 교통량이 많으니까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밤이 되기 전에 다 전달해야 하니 참 바쁜 일정이었다.
멀리 심방갈 때마다 같이 해 준 청년 집사님이 있었다. 한날은 선교사님이 비우고 간 조립식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집사님 내외분을 졸라서 함께 갔다. 집 문을 열고 보니 뜨거운 열기가 확 뿜어 나온다. 집에 있는 초가 다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자 집사님이 뛰어 들어가더니 난방 스위치를 닫았다. 누가 들어와서 겨울이니까 난방 스위치를 켜 놓고 끄지 않고 퇴실하여 과열이 된 것이었다. 그날 그 시에 안 갔으면 그 집은 전소될 번 했다. 여기저기 근본적인 차단을 하여 위험을 막을 수 있었다. 선교사님께 임시로 빌려 준 건물이었는데 잘못되었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주님이 “가 봐라.” 하시면 무조건 가는 편이었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순종이 최고임을 입증해 주셨기 때문이다.
어느 어버이날 늦도록 교회 일이 많아서 밤 두 시에 퇴근하려니 아뿔싸! 우리 어머니 드릴 ‘카네이션’을 못 샀다. 그 당시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강남 킴스클럽이기에 허둥허둥 들러서 겨우겨우 샀다. 이렇듯 명절에는 우리 집 떡 살 겨를도 없고 어버이날에는 그 흔한 꽃 한 송이 구입할 틈이 없이 동분서주하는 것이 내 심방 일상이었다.
그래도 송구영신예배 끝나고, 다 집에 보낸 후 그 많은 성찬기와 잔을 정성껏 닦을 때는 내가 싱글인 것조차 고마웠다. 다 끝내고 나면 새벽 4시가 되었다. 혼자 새해 첫날 첫 새벽예배 드리고 한강 다리를 지나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 나 혼자만을 위해 해가 두둥 떠오르며 격려하는 것 같아 너무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다.
부활절 전날은 참 분주했다. 교인들과 함께 계란을 준비하고 나면 한밤중이었다. 새벽예배를 위한 양초를 준비하여 자리 자리에 놓을 때는 감격이다. 부활의 새벽에 울고 있는 마리아를 생각하며 내가 마리아가 된 듯 기뻐서 피곤도 사라지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벅찬 감동이 내 가슴 가득히 밀려 왔다.
목회자가 다같이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갈 때도 있는데 신임 전도사가 잘못하면 목사님이 꾸중을 하실 때도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니 입을 뾰로통 내밀고 있다. 그럼 내가 나서야 했다. 우스개 소리를 하면 다같이 웃었다. 그 사람도 웃었다. 나중에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꾸중을 들어도 그 자리에서 풀어야지 다음 가정에 심방할 때 주님 인도받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고쳐줘서 고맙다고 또 어루만지셨다. 우린 이렇게 주님의 식구들을 섬겼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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