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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칼럼] 제3 문화권의 아이들

사진: 오영철 제공

“태국에 돌아가고 싶어요”

외국에 사는 태국인이 한 말이 아니다.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된 일본 청년 ‘나오미’의 바람이다.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단지 태국에 잠시 놀러 가고 싶은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태국이 그녀에게 가장 편한 고향 같은 곳이라는 의미이다.

왜 나오미는 태국의 ‘치앙마이’가 가장 편한 곳이 되었을까? 그 원인을 살펴보면 고향을 떠나 외국에서 사는 선교사 자녀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선교사 자녀들은 ‘제3의 문화권의 아이들(Third Culture Kids)이라고 부른다. 성장기에 대부분을 부모가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나오미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나오미는 일본 국적이지만 치앙마이에서 태어난 일본 선교사의 자녀이다. 나의 딸과 비슷한 나이이고 같은 초중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잘 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녀의 집은 그녀의 아버지가 가르치고 있었던 실로암 신학교 부지 안에 있었다.

집에서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 음식을 주로 먹었지만 집을 나가면 카렌족 공동체이다. 바로 옆집은 영국 침례교에서 온 ‘재키’ 선교사가 있었기에 넓지 않은 공간에 일본, 영국, 카렌 세 개의 문화가 혼재했다.

그녀가 다녔던 학교는 기독교 국제학교로서 다양한 국가 배경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있었다. 방학 때마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오미는 일본을 방문했다. 그녀는 바로 집 옆에 있는 카렌 교회 친구들과 가까웠다. 학교 친구, 일본에 있는 일본 친구 그리고 교회의 카렌 친구들이었다. 다양한 문화권 배경의 친구들이었다.

10년 전 경 그녀는 전혀 새로운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LA에 있는 일본 교회 담임 목사로 오면서 미국에 오게 됐다. 그녀는 이전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교회에서는 일본 문화이지만 그녀가 다녔던 학교는 다민족 배경의 미국 대학이다. 10대 후반에 미국으로의 이동은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그녀의 모든 세상이었던 태국 치앙마이의 친구들, 집, 학교, 장소, 날씨, 음식, 놀이 등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의지와 관계없는 부모의 결정 때문이었다.

나오미는 누구인가? 국적은 일본이고 일본말을 하고 일본 친구들이 있다고 해서 완전한 일본인이 아니다. 영어가 모어이고, 미국에 있고 미국 영주권이 있고 미국에서 일한다고 해서 미국인도 아니다. 태국어가 가능하고 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태국에 친구들이 많다고 해서 태국인도 아니다. 그녀는 “제 3의 문화권에 있는 아이들(Third Culture Kid)”의 전형적인 경우이다.

9월 18일 ‘나오미’에게 메시지가 왔다. 토요일에 우리를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다. 일정을 조정하여 지난 9월 30일 나오미가 우리 숙소에 방문했다. 오기 전에 우리를 만나는 마음이 어떤지 그의 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But I am still excited to go see you and your wife kha.”
“저는 여전히 선교사님 내외분을 만날 생각으로 기대에 차 있습니다.”

마치 가까운 이모와 삼촌으로 대한다. 세 시간 정도 같이 시간을 나누면서 그녀의 새로운 계획을 들을 수 있었다.

“올해 말에 영국으로 가서 2년 동안 ‘워킹 홀리데이’를 보낼 예정입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여 질문하였더니 두 가지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는 하나님의 다양한 인도 하심을 경험하고 싶고, 두 번째는 영국에서 일하면서 유럽을 다녀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에 대하여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늘 함께 있었는데, 독립적인 생활도 하고 싶습니다.”

나오미가 부모와 사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존경스러운 부모인 것에 대하여 그녀는 감사하고 있다. 아버지 에이찌 목사는 세계침례교 연맹(The Baptist World Alliance)청년회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고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그런 연유로 어디를 가든지 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이 때로 부담이 되었다. 이제 비로소 독립을 시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원하지 않아도 늘 부모 옆에 있어야 했다. 부모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이제 10월 말이면 LA를 떠나 영국으로 출발한다. 둥지를 떠난 새가 독립적인 객체가 되듯 나오미도 그런 시도를 하고 있다.

인간에게 ‘소속 욕구’는 ‘생존 욕구’ 다음으로 중요하다. 선교사 자녀들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문화권에 성장하면 ‘소속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제3의 문화권’에 있는 아이들은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나오미에게 소속감은 단순하지 않다. 그의 표현 속에서 그의 감정적 소속감을 느낀다.

“태국에 돌아가고 싶어요”

그녀에게는 태국 치앙마이가 어느 곳보다 편하고 안정을 주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대화 속에 가장 많이 나온 주제들은 치앙마이에서의 삶이었다.

나오미에게 카렌 교회 공동체는 단지 종교 공동체가 아니었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그곳에 있고, 그들과 여전히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있는 카렌 주민들을 호칭할 때 ‘삼촌(파띠)’, ‘이모(므가)’, ‘할머니(피)’, ‘할아버지(프)’라고 부른다. 그것은 단지 호칭 정도가 아니라 나오미에게 카렌들이 그런 가까운 친척들과 같은 존재다. 나오미에게 치앙마이는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녀가 치앙마이를 방문할 때 카렌 가정이 ‘청설모’로 요리한 음식을 해 준 이야기를 할 때는 마치 친 할머니 댁에 방문한 것 같은 모습을 하였다. 카렌과 깊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오미에게는 맑음이 있다. 붙임성이 좋고, 착하며, 타인을 존중하며, 배려심이 깊다. 그녀에게 남다른 은사가 있다. 갓난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즐겁고, 어른들에게 연락하고 찾아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부모님과 카렌들의 좋은 성품을 물려받아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나오미가 쉽게 살아온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정체성의 혼란함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

한편 나오미에게 혼란하게 하는 요인들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상호 연결점이 된다. 그녀가 사는 미국, 그녀가 태어난 태국, 그녀의 국적 일본은 모두가 중요한 관련성이 있다. 이것은 그녀가 남들보다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녀를 접하는 세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은 그녀의 선함과 배려, 맑음을 보고 매력에 빠질 것이다. 그것을 통하여 그녀에게 함께 하는 잔잔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독립된 객체로서 출발하는 나오미를 통하여 이루실 하나님의 일을 기대한다.

나오미의 모습에 나타난 정체성의 혼란은 나의 자녀들 속에도 있다. 나의 두 딸은 한국어를 하지만 한국이 편하지 않다. 중국에서 일하지만, 중국이 그가 계속 살 곳은 아니라고 느낀다. 사실 우리 안에도 그런 모습들이 있다.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베드로전서 2:11)”라고 베드로는 이야기한다. 이 세상이 영원한 안식처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제3의 문화권”에 있는 나그네와 행인으로 영원한 나라를 향하고 있다. 나오미를 통하여 나그네인 나를 돌아본다. 내가 마치 영원한 거처처럼 이 땅을 생각하지 않는가? 혼란함이 때론 유익할 때도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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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철 선교사 | 1995년 GMS 선교사로 태국에 파송된 뒤, 현지 신학교에서 학생과 목회자를위한 교수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수부족인 카렌족교회가 주민족인 타이족을 위한 선교적 교회를 세우는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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