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착하고 멋진 아들을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밥 먹다 말고 일어나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어머닌 틀니가 빠질 정도로 크게 웃으셨어요.
별일 아닌 일에도 잘 웃으시는 어머니, 제가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으면 ‘파하’ 소리를 내며 웃으십니다. 저는 그 웃음소리가 재미있어 밥을 더 열심히 먹곤 하죠.
얼마 전엔 어머니와 대화하다가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글이 생각났어요. 어릴 때 무척 좋아했던 글인데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입은 옷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살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긴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 그가 여자여도 좋고, 남자여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지란지교의 우정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린 소화제로 식혜를 한잔 마시고, 옷에 김칫국물이 묻어도 흉보지 않고, 밤늦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말이 날까 걱정하지 않거든요.
굳이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어머니와 지란지교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90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함께하며 제가 요즘 지란지교를 배웁니다. 맑고 고운 벗은 먼 곳에서 찾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 홀연히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지란지교의 뒷부분을 읽다가 문득 말씀이 떠올랐어요. 한 주간 체력이 떨어져 마음마저 약해지던 차에 말씀을 보니 눈이 번쩍 떠지네요.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아… 역시 정답입니다. 말씀이 정답입니다.
[복음기도신문]
지소영 | 방송작가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2013년부터 서산에 위치한 꿈의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현재는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가정예배와 성경적 성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결혼한 이후 25년간 가족과 함께 드려온 가정예배 이야기를 담은 ‘153가정예배’를 최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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