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 잠 4:8

[김봄 칼럼]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사진: Brian-Gordillo on Unsplash

한국어 수업 시간에 어거스타가 서툰 한국어로 묻는다.

“선생님은 가족이 몇 명입니까?”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여동생. 남동생. 언니. 오빠. 형 등 가족의 호칭과 한 명. 두 명. 세 명……. 사람을 세는 단위에 대해 배우고 있던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가족이 열 명이 넘다 보니 숫자 10까지를 겨우 익힌 아이들은 헷갈렸고, 왜 사람은 한 개 두 개가 아닌 한 명 두 명이라 하는지, 어려워했다.

그런 와중 어거스타가 생각이 난 듯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받은 건 처음인 것 같다.

아이들은 주로 ‘티차! 과자(스윗) 있어요? 어디 가요?’를 묻는다.

그리고 질문보다는 요구하고 호소한다.

‘주세요. 아파요. 배고파요. 필요해요. 같이 가요. 놀아요.’

질문은 언제나 나만 했다. 아이들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무성한 질문이 되어 쏟아졌다. 일방통행만 하는 것 같았는데, 어거스타의 질문은 마음 한 자락 나눠 받은 것 같아 감동되었다.

하지만 막상 ‘선생님의 가족은….’ 대답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예전, 많은 이들이 나와 딸에게 ‘가족이 몇 명이에요?’를 물었다.

‘우리 가족은 두 명이에요.’라고 대답하면 되레 질문한 이가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왜 두 명뿐이야?’라고 물어봐 주면 좋겠는데, 그들은 묻지 않고, 두 명뿐인 우리의 가족을 세 명은 되어야 가족이 되는 자신들의 세계에서 배제해버렸다.

이 아이들도 두 명뿐인 내 가족에 대해 오해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남편에 관해 물어보면 어떡하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같이 수업받는 멜빈도 미혼 엄마의 아이이고, 이곳에서 미혼 엄마는 쉽사리 볼 수 있지만, 미혼 엄마에 대한 인식은 내가 미혼모로 아이를 낳았던 당시의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이야 지금은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았던 당시의 미혼 엄마는 몸을 함부로 굴리다 책임 지지 못할 아이를 낳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이자 불행의 아이콘이었으며, 함부로 대해도 되는 만만한 존재였다.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음에도 나는 여기저기로 몇 번이나 불려 다녀야 했다. 미혼 엄마를 일탈의 대가로 간주하고 폭력적으로 대했다.

특히 미혼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혼모 시설마저도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숙식도 제공하고, 무료로 산부인과 진료도 받을 수 있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 모든 혜택을 아이를 키우겠다는 미혼 엄마는 받을 수 없었다. 미혼모 시설의 입소 조건이 아이의 입양이었다.

엄마의 당연한 권리,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던 시절을 지나왔다. 그런데 또다시 시에라리온이 나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되었지만, 겨우 가족이 몇 명이라는 간단한 질문에 뭘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나 싶었다. ‘딸이 있어. 남편은 일찍 죽었어.’라고 대답한다고 해도 뭐가 문제겠어?

그렇다면 아이들은 또 묻지 않을까?

‘남편은 언제 죽었어요?’

대충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니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세상 가장 대답하기 쉬운 질문에 왜 이렇게 복잡한 마음일까?

문득, 나는 어거스타에게 묻고 싶었다.

‘진짜, 선생님 가족이 몇 명인지만 알고 싶은 거야?’

나는 어거스타가 ‘아니’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선생님’이라고.

내가 아이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너희 가족은 몇 명이야?’를 물었듯이 어거스타 역시 그랬으면 좋겠다.

‘선생님 가족은 몇 명이에요?’라는 질문에는 ‘선생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누구와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라는 나를 향한 어거스타의 마음이 담겨 있기를 원했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 하더라도, 진짜 단순히 내 가족이 몇 명인지만 알고 싶고, 어떤 마음도 담겨 있지 않은 인사치레 질문이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내 가족은 두 명입니다.’라는 대답 속에 숨겨놓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을까?

“선생님의 가족은 두 명이야. 이제 어른이 된 선생님의 딸이 선생님을 전도했어. 선생님의 딸이 태어났을 때, 아빠가 없었어. 그런 딸들도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누군가는 눈먼 자로 태어났듯이 말이야. 아빠가 없이 태어난 선생님의 딸이 선생님을 전도했어. 그것도 7살에. 놀랍지?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냈듯이, 선생님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선생님의 딸을 이 땅에 보내신 거야. 그래서 선생님 가족은 하나님의 선물인 딸과 선생님 두 명이야.”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우리 가족은 두 명입니다.’는 숨기고 싶은 아픔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 되자 ‘우리 가족은 두 명입니다’ 안에는 신묘막측한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 은혜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질문들을 아이들이 나에게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언제 가장 기뻤어요? 언제 화가 나요? 선생님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질문하든, 나의 대답안에 하나님을 담아내고 싶다.

언제든 아이들에게 들려줄 하나님의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해두어야 하겠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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