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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공연을 못하면 어때? 웃음꽃이 피면 되지

사진: 김봄 칼럼 제공

성탄절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무슬림 마을에 교회가 생긴 이후, 성탄절은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마을 사람에게 특별한 하루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축제다.

생전 교회에 오지 않은 한국의 아이들도 성탄절만큼은 연례행사처럼 교회를 찾듯이, 이곳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사탕과 비스킷 등의 간식과 미국과 한국 등에서 보내온 장난감 선물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주일학교 유치부 아이들과 ‘특별공연을 준비하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유치부 아이들 50여 명 중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아주 간단한 영어를 알아듣고 말할 줄 알고 노래와 율동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 10명의 아이가 뽑혔다.

영어를 못하는 아이들과 팀니어를 못 하는 나의 상황을 고려해서, ‘아이들의 귀여움은 최대한 돋보이되, 최대한 간단한 노래와 율동을 하자!’를 공연의 목표로 정했고, 고심 끝에 선정한 곡이 만국의 캐럴인 징글벨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두 곡이었다. 음악도 MR로 준비되어 있고, 율동도 쉽고, 아이들은 후렴구만 같이 하면 되는 난이도 최하인 곡이었다.

먼저 통역사인 폴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에게 가사와 율동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눈(雪)을 몰랐다. 썰매도 몰랐다. 산타도 몰랐다.

아뿔싸. 시에라리온 아이들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선곡이었다.

대대적인 각색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벽에 부딪히는가 했는데, 폴이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었고, 나는 핸드폰에 저장된 설경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이들은 눈빛을 반짝이면서 기대했다. 나 역시 기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장 다음날부터 연습하기로 했는데, 더는 폴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문제 없다며 폴을 안심시켰다. 진짜 문제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진 40여 명의 아이와 그 아이들의 친구들까지 연습 장소로 몰려온 것이다.

피부가 하얀 이방인 선생님과 함께 성탄 공연을 연습하는 아이들은 이미 온 마을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연습 장소인 교회 마당은 수십 명이 넘는 동네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아이들이 조용히 구경만 할 리는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샤론티차를 부르고,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울고불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통제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신력이 완전히 붕괴한 나는 결국 회초리를 들었다.

맞고 자라는 게 법인 이곳에서 나만큼은 절대 회초리를 들지 않는 다정한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국, ‘오죽하면 어른들이 회초리를 들었을까?’라는 합리화로 회초리를 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 같게도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마법 같은 회초리의 위력이었다. 아이들이 회초리 하나에 완전히 통제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 눈빛을 보자 후회가 몰려왔다.

‘난 여기 통제하러 온 게 아닌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왔는데, 사랑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회초리를 들었다니.’

다시는 회초리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는, 결국 10명의 아이 외 모든 아이를 연습 장소인 교회 마당에서 쫓아내고 출입 금지를 선포했다.

나는 이번 임무를 잘 수행하고 싶었다. 공연을 잘 올리고 싶었고, 아이들이 박수받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기억될 만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렇기에 연습에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구경하는 아이들만 없으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이 생각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다. 간단한 가사임에도 아이들은 숙지하지 못했고, 수천 번을 연습했는데도 돌아서면 까먹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높아졌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다정한 샤론티차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애씀과 아등바등은 당연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워?’ 겨우 누르고 누른 짜증들이 내 마음의 찬바람을 일으켰다.

나의 마음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 수 있었다.

문득 ‘거인의 정원’이라는 동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지만, 사람들을 들여보내지 않아 언제나 겨울이었던 거인의 정원에 아이들이 들어오자 비로소 새싹이 돋고 꽃이 피고 새들도 날아들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속 거인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아이들의 놀이터이었던 교회 마당이 겨울바람 불고 꽁꽁 얼어버린 거인의 나라가 되었다.

누구를 위한 성탄절 공연인가? 성탄절 연습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진다.

“왜 그렇게 애써? 내가 무엇을 기뻐하는지 모르겠니? 나는 나의 탄생을 누렸으면 좋겠다. 네가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좀 못하면 어때? 왜 잘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물으셨다.

그러게 난 왜 잘하고 싶은 거였지?

근사한 말로 대답하고 싶었는데, 결국 난 그냥 미션을 잘 수행하고 싶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너의 미션이 뭐니?”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복음을 전하는 거였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날, 나는 겨울바람이 부는 정원의 대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아이들의 웃음이 보였다. 연습은 무슨, 그냥 음악을 켜놓고 춤추면서 놀았다. 그러자 꽃이 피었다. 아이들 웃음꽃이 피었다.

성탄절 공연 연습은?

뭐 아무렴 어때!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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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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