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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칼럼] 하나님의 재산 보물 제1호

사진: Zwaddi on Unsplash

요한계시록 다섯 번째 이야기(5): 쎄굴라(계 1:4-6)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계시인 서막(Prologue)을 알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후, 소 아시아 일곱 교회에게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축복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b)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은 성령 하나님,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이시다. 사도 바울의 인사법과는 다른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사용된 3중 구조로 된 요한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사도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 이름으로 고난의 때인 이 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삼위 하나님에 대한 구조는 창세기 1:1-2, 2:4절을 그대로 닮았다. 처음을 시작하는 책, 창세기와 끝을 마치는 책, 요한계시록의 수미쌍관법(inclusio)인 전체 성경의 구조(창 1-2과 계 21-22)와 그 내용에 있어서(삼위 하나님) 완전한 대칭 구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창 1:1-2, 2:4)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장엄 복수 형태로 알려진, “אֱלֹהִים”(엘로힘)은 삼위 하나님을 말한다. 창세기에 성부 하나님(1:1)과 성령 하나님(1:2)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데, 성자 하나님은, “אֱלֹהִים”(엘로힘) 이란 단어 외에, 찾기가 힘든 것으로 구약 학자들은 보았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삼위 하나님이, 아들 되시는 성자 하나님이 계셨다면, 신약에 가서야 나오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창세기에도, 아니 창세기 첫 단어에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창세기 1:1 절 첫 단어인 “בְּרֵאשִׁית”(브레쉬트, in the beginning)에 “머리 되시고 처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태초에”, “בְּרֵאשִׁית”(브레쉬트) 단어 안에는 히브리어로 “머리, 처음”(רֹאשׁ, 로쉬, 계 1:8,17, 21:6, 사 44:6)와 “으뜸”(רֵאשִׁית, 레쉬트, 계 3:14, 골 1:18) 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처음이 되시고 머리가 되시고 으뜸이 되시는 분이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창 2:4에 기록된 히브리어로 특별한 단어, “בְּהִבָּרְאָם”(베히바르암, 그것들이 창조되어질 때, 성자 하나님에 의해)은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 문법 안에 분명하게 담아 놓았다(요 1:3). 참으로 놀랍다! 필자도 이 한 단어에서 명확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 문자(말씀)를 통해 감격으로 마주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첫 책인 창세기에 나타난 삼위 하나님이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나타난다. 삼위일체 교리는 비록 니케아 회의(380)나 칼케돈 회의(451)를 통해 교리가 확립되었지만 창세 전에 이미 자존하시고 지존하신 삼위 하나님이 존재하셨다.

축복(계 1:4-5b)에 이어 고양된 송영(doxology)이 나타난다. 이 송영은 고난의 때를 넘어가고 있는 1세기 로마와 소아시아에 흩어진 디이스포라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송영이었다. “주의 신실하신 사랑”과 “십자가에서 죄로부터의 해방, 그 날에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는 사탄의 유혹 앞에서 육체로 견딜 수 없는 고난을 믿음으로 넘어가게 하는 큰 복음의 능력이 되었을 것이다. 송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복음을 확증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1:5b-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자신의 로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죄인 된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참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큰 축복이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나라”와 “제사장” 삼으신 이 축복을 입을 가지고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나라”와 “제사장”이라는 문구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독특한 지위를 주신 출 19:5-6절을 반영한다.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태생의 유대인들에게 직접 이 히브리 본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들으면 선택 받은 이스라엘 됨의 의미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감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סְגֻלָּה)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세계를 장중에 다 가지고 계신 분이, 이스라엘에게 순종하고 언약을 지키는 조건으로, “하나님의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최고의 세 가지 칭호(이름=영예)를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한 하나님의 소유가 될 것이며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변하고 선포하며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스라엘을 택하여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나라”로 삼으신 것이다. 여기서 “나라”라는 개념은 왕이 다스리는 “통치” 개념이 들어있다. 이스라엘이 세상 나라와 구별되어 특별한 선택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왕과 제사장으로 섬기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הְיִיתֶם לִי סְגֻלָּה מִכָּל-הָעַמִּים
You shall be my own precious treasure from among all peoples
(출 19:5)

여기서 “내 소유”가 되겠다고 하는 히브리 표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에게 주어지는 아주 독특한 표현이다. “סְגֻלָּה”(쎄굴라, His own precious treasure) “하나님 자신의 아주 특별한 소중한 보물”이란 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재산 보물 1”란 의미다. 놀라운 축복이다. 이스라엘을, 나를 하나님의 재산 보물 제 1호로 삼으신다니! 하나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장 가치 있는 존재로 이스라엘을 취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주셨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요한의 이러한 선포는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것이 구약의 역사를 넘어 지금 고난 받고 있는 성도들,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이루어진,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 이라는 구도 속에서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며 제사장 나라이다. 이 약속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미래 천년 왕국에서 궁극적으로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말 3:17, 엡 1:10, 벧전1:4, 계 5:10, 20:6).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신약의 말씀으로 가보자. 사도 베드로도 당시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계시록에 나와 있는 동일한 말씀으로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 훨씬 이전에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자들이 세상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당당하게 거침없이 수행해야 할 것을 도전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를 택하셔서 선민으로 왕 같은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그의 소유가 된 백성(סְגֻלָּה)으로 삼으신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를 사탄의 종 되었던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하나님의 신기하고 놀라운 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ἀρετὰς, the excellencies)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아름다운 덕!”(히브리어, תְּהִלּוֹת, 벧전 2:9, 아람어역, 합 3:3, 사 43:21, 63:7) 그의 소유가 된 백성(쎄굴라)의 입에서 선포되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덕!”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는 교회가 최고의 가치로 삼고 달려가야 할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순종의 고백이요 선포이다! [복음기도신문]

김명호 | 헤브론선교대학교 성경언어대학 교수. 복음과 기도의 기초 위에 성경의 원어 연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부흥과 선교완성을 위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사역으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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