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저는 실패자예요. 이런 저를 써주신 것만 해도 영광이죠”

주님의 손길에 빚어지고 있는 송신호 목사(한국제자훈련원 원장)

지난해 12월 다시복음앞에 연합집회에 참석, 많은 이들을 감동과 회개의 자리로 이끌었던 송신호(72) 목사. 집회이후 듣게 된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현재 온 몸의 뼈가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으며 홀로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서 집회 당일 새벽, 집을 나서는 송 목사에게 부인인 조영희 사모가 집회 참석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주님이 주신 말씀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33:4) 말씀을 의뢰하면서. 새벽 강단에 섰다. 말이 어눌해진 그의 메시지를 모든 청중들은 숨까지 죽여가며 경청했다.
“저는 주님께 반역을 했어요. 그런데 주님은 지금도 저를 써주시고, 저를 빚어가고 계세요….” 그의 메시지가 끝났다. 예배실에 앉은 수천명의 성도들과 함께 순서를 맡은 강사들도 ‘주님의 은혜’에 감격해 함께 통곡하며 기도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훈련원 관계자를 통해 건강상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뷰 일시는 일사천리로 잡혔다. 인터뷰는 독특하게 진행됐다. 순 우리말로 대화를 하는데도 인터뷰어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발음이 더욱 어눌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원을 함께 섬기며, 그의 마음을 알고,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아는 사역자의 통역 도움을 받았다.<편집자>

–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저의 말을) 듣는 사람이 고역 일텐데…. 그저 한순간 한순간 순종해왔어요. 현재 하는 사역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죠. 그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안됐으면 해요. 돌아보면 아내에게 참 죄를 많이 지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순종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방문한 날은 마침 이곳 한국제자훈련원에서 30년 이상 섬겨온 십자가캠프(구 정기훈련) 제441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오전 시간송 목사가 맡은 강의를 마치고 ‘사역자 송신호’로 씌어져 있는 명찰을 목에 건채 회의실로 들어왔다. 강의 시간 역시 동역하는 사역자의 통역 도움을 받아 강의가 진행됐다고 했다.

– 제자훈련이 어떻게 시작됐나요?
“한국제자훈련원의 제자훈련 사역은 설립되던 1976년부터 청소년을 대상으로 시작돼 지금은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십자가 복음으로 제자의 삶을 살아내는 훈련을 하고 있어요. 훈련비는 없이 헌금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러나 부족함 없이 지난 30여년 동안 5만여명의 제자들이 배출돼, 사회 곳곳에서 열방을 섬기고 있어요. 제자훈련은 샘이 솟아나는 수원지와 같아요. 물을 계속 흘려 보내는 거예요. 흘러가면 가는대로 내버려둬야죠. 그러면 새롭게 위에서 흘러온 물로 채워지는 것이죠. 제자훈련을 그런 마음으로 섬겨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총신대를 마친 이후, 미국의 한 신학교(페이스신학대학)에서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어요. ‘새 생명, 양육, 제자도’를 주제로 하는 논문을 썼어요. 그때의 관심이 제자훈련으로 이어지게 됐죠.”

– 긴 세월 동안 어려움도 많았을텐데요.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비효율적이고 부족한 점이 많겠죠. 제자훈련 사역의 비전이 없다고 아주 매섭게 혹평하신 분들도 없지 않았죠. 어떤 분은 개선하라고 많이 권했죠. 그러나 저희 사역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동역자들의 후원이 끊어지기도 했죠.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아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자훈련이 마케팅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얼마나 성취했는지는 정말 관심이 없어요. 보내주시는 만큼 순종하면 됩니다. ”

– 구체적으로 어떤 비판이 있었나요?
“무엇보다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은 제자훈련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해봐요. 사실 강의 한 편 듣고 온전해질 수는 없어요. 정말 안타까운 것은 사역자들이 하나 되지 않을 때에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인간적으로는 실망스러운 일이죠. 그러나 우리 사명을 생각하면 그런 견해도 달라져요. 사역은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기에 내가 그 모든 과정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수 있겠어요. 그 마음으로 주님이 허락하신 사역지에서 섬겼어요.”

– 매서운 비판을 받을 때, 서운한 마음이드시기도 하셨을텐데요.
“정말 감사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전 없다고 악평을 들어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를 대적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 비판적인 시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연합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사명은 연합이라고 생각해요. 먼저 섬기는 자는 세우는 역할을 맡는 것이죠. 그 역할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은 연합의 은혜로 구별되는 것이죠.”

– 그 연합의 의미를 조금 더 풀어 설명해주세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님은 오셔야 해요. 그러나 그 일은 전적으로 주님께 달려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뭘까요. 방해를 받아도, 어려움이 있어도,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만 남아있는 것이죠. 연합해서 이 일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죠. 연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에요. 내 마음대로 하면 연합할 수가 없어요. 내가 옳다. 네가 틀렸다. 그렇게 비판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복음과 진리로 바르지 않은 사실과 타협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해요. 주님이 주신은사를 인정하며 함께 나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연합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됩니다. 연합은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것.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망이겠지요.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다는 말은 주의 나라가 이뤄지도록 나를 바치는 것이에요. 나를 축복의 통로로 바치는 것이죠. 신뢰가 쌓이면 축복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러나 신뢰가 쉽사리 형성되지 않아요. 실수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실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해결점을 찾아야 해요. 어떤 문제를 타인의 연약함으로 보기 시작하는 사람은 연합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때 가장 어려운 일이 용서에요. 용서는 일방적이기 때문이에요. 상대방이 나를 용서했다고 내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연합은 이뤄지지 않는 거예요. 내안에서 나의 부족함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죠. 그때 비로소 연합이 이뤄집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그런 우리의 존재 변화를 성화라고 할 수 있어요.”

–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연합을 바랄텐데,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연합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데서 시작됩니다. 저희 훈련원에서 함께 섬기던 사역자를 다른 기관이나 교회에 파송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했어요. 저희보다 연약할 수도 있고, 또 그 사역자가 필요한 기관이 있을 수 있죠.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의뢰하고, 그 분을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죠. 문제는 그 사명이 끝나면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죠(웃음). 복음을 누리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은혜에요. 연합은, 그 은혜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거에요. 그래서 연합은 한 마디로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을 오해하는 것이죠. 이렇게 구분해볼 수 있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 안에 이단(異端)이 있었죠. 종교적인이단, 성령론적인 이단, 이제는 교회론적인 이단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 그런 모습이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요?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성장주의에 빠지기 쉽죠. 교인들은 또 다른 교회로 떠나는 것이죠. 지금 교회들이 건물 짓는데 너무나 많은 비용을 들이고 있어요. 빚을 내서 교회를 건축하고, 이자를 갚는 교회가 많다고 해요. 문제는 헌금으로 이자를 낸다는 거에요. 그럴 수는 없어요. 건축보다 선교가 먼저에요. 선교를 중단할 수 없어요. 우리는 선교하다 주님 만나야 해요. 건축하다 주님 만날 수 없지 않아요? 교회를 개(個)교회로 만 보는 것은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 최근 신학계에 이런 시각이 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100여년 동안 서구교회가 2000여년 동안 겪어온 부흥, 성장, 회심, 타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례를 경험했는데 단 한 가지. 교회개혁만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집단적인 개혁을 생각하면 어려워요. 개인의 신앙이 개혁되면 됩니다. 변화는 개인적입니다. 구원도 개혁도 개인적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개인적이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인 만남.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한 변화. 그것은 주님의 제자만이 할 수 있는 순종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집회 자체에 의미가 부여되는 대형 군중집회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대형집회에 들어가는 비용으로 한 생명을 살리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제자훈련을 받으신 분들이 그렇게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계신 분들이 많겠죠.
“이미 고인이 된 이중표 목사님도 한참 어려움을 겪다가 이곳에서의 시간이 계기가 됐다고 해요. 이 목사님의 ‘별세신학’이론이 곧 나 죽고 예수 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삶을 강조한 것인데, 그때의 깨달음에서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한 사람의 변화가 그가 속한 공동체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거예요. 필리핀에서 원주민을 위한 제자훈련을 하는 분. 미국, 독일, 영국, 중국, 아프리카 등 전세계 곳곳에서 제자훈련을 통해 주님의 제자를 양육하고 있어요. 물론 지금 동일한 형태의 훈련사역이 중단된 곳도 있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주님의 제자는 배출되고 있다는 것이죠.”

– 어떤 계기로 목사님은 이같은 복음의 삶을 누리게 되셨는지요.
“20살 때인 1961년에 회심을 했어요. 그때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주님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사실로 믿어졌어요. 그리고 군에 입대해 군복무 시절 전도하다가 생긴 에피소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어요. 전도하기 위해 심지어 탈영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제대 이후 65년에 총신대에 입학해 신학을 하고 이후 재소자와 상이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등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열심을 내기도 했어요. 그러다 72년에 내가 주인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주님이 깨닫게 해주셔서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목회 길로 접어들었어요.”

송 목사는 목회를 하며 정말 주님을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으로 만족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온 몸으로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송 목사의 형인 송천호 목사(현 미국 월드비전 대변인)가 미국 시애틀에서 사역할 때 미국인의 도움으로 지금의 훈련원 자리에 청소년 수양관을 지을 때 그도 건립에 함께 참여했다. 당시 이곳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배로 자재를 실어 날랐다고 한다. 그러던 송 목사는 81년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뇌막염이라는 거예요. 당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어요. 죽는다는 것이죠. 살아도 모든 기억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들었어요. 그때 주님이 다니엘 4장 19절의 느부갓네살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어요. 눈물에 눈물로 회개를 했어요. 그런데 주님이 살려주셨어요. 그때 한 가지 말씀을 주셨어요. 할일이 남은 사람, 즉 사명을 감당한 이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죠.”
송 목사는 2004년에 섬기던 교회에서 은퇴한 이후 훈련원에서 제자훈련 사역에 몰두하게 된다. 1976년에 세워진 한국제자훈련원은 초창기에는 청소년들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교육시키다가 이후 모든 연령층으로 확대, 실시해온 십자가캠프를 441회 실시했다. 그 외에도 군종병 훈련, 청소년훈련, 숭실대 백석대 한동대 명지대 등 대학생들의 위탁 훈련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주님의 제자 된 삶을 살도록 섬겨왔다.

– 끝으로, 오늘 믿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실패자예요. 세상 관점에서 저는 바보예요. 주님이 저를 써주신 것만 해도 영광이에요. 더 이상 저의 계획은 없어요. 저의 비전은 주님이에요. 오늘 넘어지신 분이계신가요? 주님은 한번 넘어진 베드로 같은 사람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세요. 넘어져 보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먹일 수 없어요. 저는 정말 많이 넘어졌어요. 그러니 털끝만큼도 불만이 없어요. 그리고 진리를 믿으세요. 제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보이지만 진리로 볼 때, 저는 이미 치료됐어요. 저는 환자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사람일뿐이에요. 제가 약하니까 저를 돕는 사람이 생겼어요. 돕는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이죠. 저는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며 감사 기도했습니다. 오늘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송 목사는 부인 조영희 사모와 슬하에 현재 훈련원에서 사무국장으로 섬기는 장남 영훈씨와 목회자인 둘째 영석씨, 막내 딸로 CCM아티스트이자 재즈피아니스트로 국내 외에 유명한 영주씨 등 2남1녀를 두고 있다.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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