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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주주의 위해 목숨 바친 미군 추모 행사,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서

▲ 추모하고 헌화한 양화진 미군병사 묘원 현장. 사진: 한국교회언론회 웹페이지 캡처

지난 5월 30일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6.25때 산화(散華)한 미군과 그 가족을 위한 29번째 추모 행사가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墓園)에서 진행됐다고 한국교회언론회가 전했다.

양화진 묘원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과 그의 가족과 군목 등 총 126기의 묘가 있다(미군 33기, 배우자 7기, 아기 29기, 군목 57기).

(사)한미친선연합회 주최와 (사)한국사회문화연구원은 매해 5월마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미국군인 및 그 가족 추모 행사’를 가졌으며, 올해로 29회째를 맞았다.

이날 오후 2시에 진행된 추모 행사에서 인사말을 전한 (사)한미친선연합회 홍사광 대표회장은 “미국과 한국은 피로써 맺어진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고인들의 희생을 통해 한미동맹의 결속이 더욱 강화될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또 “한미동맹만이 고인들이 희망했던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이 땅에서 확립할 수 있다”면서, 영원한 “한미동맹 만세!”를 외쳤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한국과 미국 간에는 상호 신뢰, 공유 가치, 그리고 우정을 기반으로 동맹을 맺은 것이 70주년을 맞았는데, 한미 간에 공유하는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에 대한 가치야말로 양국 간의 회복탄력성과 힘의 근원이 되고, 동북아시아와 인도 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보 그리고 번영의 근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사한 우리 나라 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여러분의 헌신과 노력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이 단체는 그동안 훼손된 묘를 재정비하고 유실된 봉분을 찾아 원상 복구하는 등,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피로써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혈맹인 한미 양국의 유대를 위하여 끊임없이, 말없이 수고해 왔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양화진에서의 추모 행사뿐 아니라, 지난 30년 동안 4월 6일에는 인천의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서, 5월에는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서, 그리고 6월 6일에는 부산의 유엔 묘지를 찾아가서, 12월 27일에는 파주의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주기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추모 행사를 이어왔다.

한편,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墓園)에는 417명이 잠들어 있다. 이곳에는 선교사, 언론인, 군목, 군인, 그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묻혀 있다.

가장 먼저 안장된 사람은 J.W 헤론이다. 그는 1885년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알렌, 언더우드와 함께 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질병에 걸려 5년 만인 1890년에 세상을 떠났고 여기에 잠들어 있다.

H.G 아펜젤러는 한국 근대교육과 감리교의 초석을 놓았으며,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1902년 해상에서 선박사고로 순직했다.

S.F 무어는 ‘백정 전도의 개척자’로 불리며, 당시 차별당하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1906년 풍토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R.B 켄드릭은 여성으로 개성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아픈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간호하다 과로로 1908년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M.F 스크랜턴 대부인은 이화학당을 설립해 근대 여성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조선에서 24년 동안 헌신하다가 1909년 세상을 떠났다.

언론인으로 유명한 E.T 베델은 영국인이면서 구한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한국인을 세계에 대변하는 역할을 하다가 1909년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H.G 언더우드에게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개척자’라는 칭호가 붙는다. 그는 새문안교회, 경신학교, 연세대학을 설립했으며, 평생 성경 번역에도 힘썼다. 양화진에는 그를 비롯하여 7명의 가족이 안장되어 있다.

E.A 길보른은 3대에 걸쳐 동양선교회 선교사로 한국 성결교회 정착에 기여했다. 그리고 1928년 세상을 떠나게 된다.

F.M 브로크만은 YMCA를 통해 조국을 잃고 실의에 빠진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당시 학생회 간사였던 이승만과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학생회를 조직했다. 그런데 과로로 인하여 1927년 쓰러져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1929년 세상을 떠났다.

W.M 베어드는 평양에 숭실대학을 세웠고, 1931년 세상을 떠났는데 양화진에는 두 부부의 기념비와 두 아들의 무덤이 있다.

J.S 게일은 캐나다의 평신도 출신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천민 출신도 장로로 세우고, 한국문화를 서양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쓴 한국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1937년 세상을 떠났다.

R.A 하디는 의료선교사로 왔다가 나중에 평양대부흥의 시발점이 된 1903년 원산부흥운동의 주역이었고, 감리교신학교와 협성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1949년 세상을 떠났고, 양화진에는 그의 두 딸의 무덤이 있다.

H.B 헐버트는 ‘한국 사람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분’으로 칭송받는다.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웨스트민스터사원보다 한국에 묻히고 싶다’고 하여 1949년에 양화진에 잠들어 있다.

결핵 퇴치를 위해 애쓴 R.S 홀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로제타 홀은 의료선교사로 남편과 딸을 먼저 잃는 고통 속에서도 45년 동안 한국을 사랑했고, 결핵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발행하여 결핵에 대한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51년 세상을 떠난 그녀는 양화진에 3대에 걸친 6명의 가족들이 합장되어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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