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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아이 엄마 역시 상처 투성이의 영혼이었다

사진 : Vignesh Nalla on pexels

브래드의 중이염이 회복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밖에서 난리가 나서 나가 봤더니 온몸이 피범벅이 된 브래드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브래드는 자기 이마를 가리켰다. 보니 이마가 찢어져 있었다.

망고를 따려고 나무에 올라가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몸을 덮고 있는 엄청난 양의 피보다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 흘러내리지 않은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 정도 상처라면 아이는 피의 양만큼 눈물을 흘리면서 아프다고 고래고래 악을 쓰고 울어야 한다.

벌렁거리는 가슴으로 피를 닦고 보니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얼른 토마스 전도사에게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했다. 제발 별 탈 없이 잘 치료받고 오기를 바랐던 나의 간절함과 달리 브래드의 봉합 상태는 ‘발로 봉합한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엉망이었다. 역시나 이틀이 되지 않아 봉합한 곳은 찢어지고 상처는 덧났다. 그런데도 아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며칠 동안 소염제를 먹이고 드레싱을 하고 나서야 겨우 상처에 딱지가 앉았다. 그러는 동안 브래드의 부모는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존재하지만 본 적 없고, 볼 수 없는 바람과 같은 존재인가 싶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브래드가 다시 찾아왔다. 이마의 상처가 잘못됐나 싶었는데, 온몸이 불덩이였다. 열을 재보니 38.9 도. 어른도 견디기 힘든 열이다. “이 몸으로 어떻게 온 거야 ?”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귀에 진물이 나와도, 이마가 찢어져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살려달라고, 아이의 몸이 보내는 절규와도 같은 눈물이었다.

해열제를 먹이고 냉찜질했더니, 두어 시간 후에 열이 내렸다. 그런데 내 속에서 울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부모는 뭐 하는 인간이야. 이럴 바에 차라리 보육원에 보내든가! 오늘은 반드시 브래드의 부모를 만나리라, 바람과 같은 존재의 실체를 확인하겠다고 결심한 나는 종일 기다리기로 작정하고 아이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나의 비장한 결심을 비웃기라도 한 듯 스물도 되어보지 않은 여자가 때에 찌든 매트 위에 누워있었다. 마치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듯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낯선 이방인인 나를 보고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깨진 슬래브 지붕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 보는 그녀의 눈빛은 초점이 없었고, 눈가에는 말라비틀어진 눈물 자국이 상처 딱지처럼 눌어붙어 있었다.

‘Are you OK?’라고 묻고 싶지 않았다. 척 봐도 Not OK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 외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제야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울먹이면서 겨우 대답했다. ‘He‘s gone’ 마치 유행가를 읊는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이 마을의 여느 여자들처럼 그녀의 남편도 떠났구나. 아이를 방치한 엄마인 그녀를 조금은 이해하기로 했다.

남편이 딴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이후, 찾아왔을 우울증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긍휼한 마음을 가져주기로 했다. 어쩌면, 그녀가 딴 여자였을 수도 있었다. 그는 본래 그의 아내에게로 돌아갔을 수도. 브래드의 온몸을 감싸고 있는 우울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던 이유가, 아파도 아파할 수 없었던 이유가, 받아 줄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상 유일한 보호자인 어린 엄마의 우울함이 브래드의 눈물과 아픔과 기쁨과 즐거움을 덮어버리고 있었던 거였다. 엄마가 웃지 않아서 아이가 웃지 않았고, 엄마가 울지 않아서 아이가 울지 않았다. 그녀 역시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상처투성이 영혼이었다.

갑자기 이 가련한 모자에게 미안해졌다. 팀니어를 몰라서. 그녀를 원망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비타민이라도 챙겨올걸. 보온병에 따뜻한 차라도 담아올걸. 초콜릿이나 빵이나 갖고 올걸. 하지만 그 모든 게 그녀의 위로가 될까?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이 “교회에 와요. 당신의 슬픔과 고통을 들어줄 사람이 있어요. 모든 것을 아는 이가 있어요.”라며 그녀는 알아듣지 못할 영어로 이야기했더니 역시나 그녀는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등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문 앞의 브래드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 우울의 우물 속 같은 곳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뛰쳐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눈물과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도 외에.

아직도 미열이 남아 있는 브래드를 꼭 안아주는 것 외에. 눈물마저 메마른 이들을 위해 울어주는 자가 되고 싶다. 나의 눈물이 복음의 씨앗이 되어 구원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녀의 눈물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복음의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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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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