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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칼럼] 그 가슴에 꽃다발 마음껏 담아주고 싶어라

사진: Iewek Gnos on Unsplash

세상이 온통 꽃다발 같은 계절이 왔다. 집 앞 둑길을 걷노라니 길 따라 서 있는 사쿠라(벗꽃) 나무의 진분홍, 연분홍 꽃이 어느새 활짝 피어 눈꽃 송이를 이루었다. 그 아래에 다소곳이 빼어나온 노란 맨드라미들이 밭을 이루었다. 둑 아래에는 작고 하얀 싸리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다. 곳곳에 피어나온 노란 개나리꽃이 그리움을 묻어낸다. 길가에 들풀들이 정겹다. 만물이 살아나고 있다. 누구에게 받은 꽃다발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나!

가슴에 마음껏 담았다. 하나님이 주신 것.

추운 날을 이기고 생명이 왔다.

일본은 4월에 모든 것이 시작된다. 처음 이 땅에 와서 다이어리가 4월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신기하게 여겼다. 3월이 년 말이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입학식을 하고, 관공서와 회사에서는 시무식을 하고, 텔레비젼 아나운서도 새 얼굴로 바뀌었다.

오래전 이렇게 꽃다발 같은 날,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 조선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자랐고, 성인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내정 받아 4월부터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 취업이 되어 기뻐하며 오사카 지점에 발령을 기도했더란다. 뜻밖에도 오사카에서 너무 먼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시즈오카로 가기 전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었다. 밥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전화할 수 있었기에 늘 옆에 있는 것을 당연한 듯 여겼나 보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은 크시고 능하신 것을 신뢰하면서 또 물음표를 던졌다. 왜 자꾸 하나 주고 가져가시고 하나 주고 가져가시냐고. 이렇게나 허전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이 아이를 오랜 세월 우리 옆에 두고 뜸을 들이셨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그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대로 초점을 맞출 수 있었음이 감사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녀 삼으실 때는 독수리 날개 침 같이 강하고 급하게, 하지만 조금도 엉클어짐 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능하게 자녀로 취하셨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 노릇 하게 되었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7)

이렇게나 이 아이에게 풍성한 구속을, 풍성한 생명을 입게 하셨다.

‘사랑하는 아이야~

다른 무엇이 아닌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고 시즈오카로 가는 발걸음이 참 복되구나.

너의 새로이 시작되는 생명 안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벅찬 삶의 이유가 되길 기도한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이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라기3:3)

봄비가 내리는 주일 아침, 가족이 식탁에 앉아 찬양과 감사로 예배를 드리고, 받은 은혜를 마음에 잘 담은 채 우리 학교로 향했다.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에는 동포들이 많이 와 있었다. 마지막 학교 행사에 시간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고 돈을 모아 함께 하고 있었다. 나눠준 도시락에는 ‘1959년 11월~2023년 3월까지 소중한 시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씌어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잡채, 부추부침개, 김밥, 수육, 김치가 담겨 있다. 우리네 음식이다.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 부부와 딸에게 비옷을 입고 수건을 두른 교장선생님이 급하게 오셨다.

받은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시며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한다.

우리 학교 아이들과 재일 조선인을 향한 하나님 마음을 담은 책과 칼럼집을 한 달 전 만남에 드렸었다. 조선인들을 좋아해 줘서, 우리(조선) 학교 이야기를 글로 고지해주어 고맙다고들 말한다. 요즘 이것이 신기하다. 이렇게 해도 괜찮으려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너희는 지금 이 땅을 두고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이며,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간 땅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밭을 살 것이다(렘32:43)

교실에 아이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기에 딸과 함께 1학년 교실, 2학년 교실… 돌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한 분이 다가오시며 혹 지난번 조선 고등학교에 오셨던 분 아니냐고 하신다. 2월에 선교팀과 방문했을 때이다. 가만히 뵈니 학교에서 자주색 치마저고리를 입으시고 열정적으로 수업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셨다. 실은 나도 선생님 수업이 기억에 남아 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당신이 가르치는 조선말을 한국인인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 몇 번을 확인하셨다.

그날 한국인들을 만나서 기뻤다고 하시며 언젠가는 우리 조국을 꼭 밟고 싶다고 하셨다. 그날을 기다리신다고. 실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세상에 없는 나라, 조선 국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올 수 없다. 일반 조선인들은 ‘여행증명서’를 영사관에서 발급받아 올 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은 그것도 불가능하단다.

복도에서 만난 남편을 소개하자 남편을 알고 있었는 듯 목사님 가족이었구나 기뻐하시며 더 좋아해 주셨다. 이것이 또 신기하다. 마냥 좋아해 주다니.

돌아오는 차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문득 드는 생각은 ‘우리 선생님들 가슴이 참 허전하구나!’ 그 가슴에 꽃다발 마음껏 담아주고 싶어라~

지금, 내게 은혜는 이 뜸 들이시는 하나님의 시간을 인내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인 가슴속에 예수생명 담아질 때까지.

주님, 당신의 나라가 진짜입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계11:15)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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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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