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동행] 신학교에서 내 꼿꼿한 성격을 꺾으시다

사진: Markus Winkler on Unsplash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 13:20)
본지가 [동행]이란 코너를 통해 믿음의 삶을 소개합니다.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추억과 재헌신의 결단을, 다음세대의 독자들은 도전과 권면의 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그가 나를 데리고(9)

신학교에 입학하여 여자 기숙사의 1층 입구 쪽 첫 방에 배정되었다.

밤에 자는데 뭔가 창문에 어른거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았으나 신경 안 쓰고 잤다.

이튿날 사감 선생님이 모두 소집해서 영문도 모른 채 모임실로 갔다.

선생님이 비장한 얼굴로 어젯밤에 늦게 창문으로 몰래 들어온 학생은 기회를 줄 테니 자백하라고 하신다.

여학생들은 선후배 할 것 없이 끽 소리 없이 가만히 있었다.

사감 선생님이 갑자기 나를 지목하시더니, 신입생이 돼서 발칙하게 첫날 밤부터 도둑 출입을 한다고 왜 자백 안 하냐고 호통을 치신다. 아니라고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해도 끝내 믿어주지 않으셨다. 그 밤 내내 너무 억울했다. 내 얼굴이 그리도 발칙해 보였나 보다. 아직도 세파에 찌든 때가 더덕더덕 묻어서였을까?

“무슨 신학교가 이따위야. 당장 학장을 찾아가서 따져야겠다.”고 울근불근 씩씩거리면서 꼬박 밤을 새웠다.

룸메이트는 뭘 아는 모양인데 얘기를 안 해주고 나보고 무조건 참으란다.

홀딱 밤을 새우고 속상해서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타고 머리를 창문에 기대었는데 밖에서 웬 아이가 내 머리를 팡 때린다. 바로 일어나서 그 녀석을 쫓아가 응징을 하려는데 버스는 부웅 떠나버리고 만다.

업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날 금요 철야 기도가 있기에 교회 가서 한껏 찡그리고 용을 쓰고 있는데 어머니가 오셨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네가 참아라.” 하신다.

그때 느꼈다. 내가 아무리 대쪽 같은 성격에 의협심이 많아도 그것은 부러져야만 한다는 것을! 야곱이 왜 평생 절뚝거렸는지 알 것 같았다.

후일 친구들이 말하길 2층 애들이 늦게 오면 우리 창문을 타고 올라가곤 했단다.

거긴 유명한 목사님 딸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급해도 너의 꺾이지 않은 성격은 안 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 성격은 내 사역에 안 쓴다.” 늘 내 머리에 맴돌았다.

그 누명 사건은 내 꼿꼿한 성격을 딱 부러뜨렸다. 그 이후 한 번도 불같은 내 성격을 사역이나 어디에도 사용해 본 일이 없다. 완전히 부러진 것이다. 의협심 그것은 휴지통 불쏘시개감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아주머니한테 빨래터에서 아랫물에 있는 내가 빨래를 헹구는데 윗물에서 똥 빨래를 한다고 대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애들이 전학 온 나를 왕따 시킨다고 교장선생님한테 편지해서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고등학교 때 직장에서 선생님이 급사에게 차별 대우한다고 바락바락 대들었다.

졸업식 때도 사감 선생님이 비싼 카메라가 없어졌다고 또 나를 지목하시고 야단을 내셔도 그때는 억울하지도 않았다. 변명 한마디도 안 했다. 이미 내 성격이 부러져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다.

그 후에 사람들 통해서 내 귀에 들린 이야기다.

사감 선생님이 “선숙이는 참 하나님의 훌륭한 여종이다.”라고 하셨단다. 변명도 변변히 못 해 본 나였는데 누가 변호해 주었을까?

신학교 들어가자마자 누명 쓰게 하시고 끝까지 내 성격을 손보신 하나님의 섭리에 참 감사하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가 300명 이상으로 부흥했는데 딱 하나 터줏대감 장로님이 너무 못되게 하셔서 1:1로 맞짱을 뜨셨단다. 목사님이 이기기는 했는데 그 이후로 장로님은 교회를 뜨시고 동네에 “저 교회는 목사님이 쌈쟁이래.” 소문나면서 교인이 줄어들기 시작했단다. 은퇴하실 때 가보니 목사님 가족과 억지로 붙어 있는 6명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목사는 성질이 죽어야 돼.” 하시던 어떤 목사님 절규가 생각난다.

나도 이렇게 호되게 초반에 다루시지 않았으면 성격 강한 내가 얼마나 못난 모양으로 하나님 영광을 가렸을 것이다. 에구 주여 감사합니다. 아픈 회초리요.

히브리서 12:7~8 말씀이 늘 어려움 앞의 나를 붙들어준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7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8절)

<계속> [복음기도신문]

황선숙 | 강변교회 명예전도사. 서울신학대학교 졸. 강변성결교회 30년 시무전도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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