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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새해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의 목표로!

▲ 사진: Pablo Heimplatz on unsplash

이런저런 목록과 목표를 만들 때, 나의 내면의 한 부분은 분명히 하나님을 원했지만, 또 다른 부분은 성취, 생산성, 종교적 확인, 신학 지식을 쫓고 있었다

2016년 이후 1월 초가 되면 남편과 나는 스물네 시간에서 마흔여덟 시간을 따로 만들어서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평가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작년 휴가 때, 나는 카페에 앉아서 저널에 이런저런 생각을 휘갈겨 썼다. 삶의 원칙을 수정하고, 읽어야 할 신앙 서적 목록을 정리하고, 또 내 삶에 꼭 정착시키고 싶은 영적 습관과 훈련과 목표를 적었다. 그러던 중에 떠오른 질문 하나가 열심히 펜을 움직이던 내 손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순간 나는 내 동기가 반드시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유죄 판결을 받은 느낌이었다. 새해에 달성하고 싶은 영적 성장과 봉사를 계획할 때조차도 내 마음속 ‘우상을 만드는 공장’(idol factory)은 열심히 작업 중이었다. 이런저런 목록과 목표를 만들 때, 나의 내면의 한 부분은 분명히 하나님을 원했지만, 또 다른 부분은 성취, 생산성, 종교적 확인, 신학 지식을 쫓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게 가장 중요한 동기는 하나님과 다른 모든 사람의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또다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주 빠지는 두 가지 미묘한 왜곡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첫째,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음 정체성에 따라 사는 대신, 나는 또다시 하나님의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님의 직원으로 살고 있었다. 둘째, 목적과 수단을 뒤섞어버렸다. 습관, 목표, 규칙을 만드는 외적인 행동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그것들은 단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겠다는 결심

카페에서 그렇게 나를 겸손하게 만든 그 깨달음은 새해 목표를 세우는 당신에게 몇 가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질문은 던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왜 영적 훈련에 참여하는가? 왜 굳이 삶의 규칙을 만들고 또 지키려고 하는가? 왜 새로운 기도 습관, 성경 읽기, 또는 소셜 미디어 금식을 실행하려고 하는가?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게 그 자체로 의미를 가져서는 안 된다. 또는 단지 명목상 하나님을 갖다붙일 수 있는 어떤 이차적인 혜택을 위한 게 되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고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 분을 더 많이 알고 만나기 위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시편 42편과 84편에서 고라의 아들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바라는 열망을 표현한다.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시편 42:1-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시편 84:2)

시편 84편을 주해하면서 팀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시편 기자는 마음속 가장 깊은 갈망이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비인격적인 신성한 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즉 인격적이고 살아 있는 그분의 임재를 통해서만 충족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결코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정 민족이나 기독교 하위문화의 마스코트, 적절한 예배 환경에서 얻는 경험, 또는 문제가 있을 때만 찾아가는 치료사도 아니다. 더더욱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에 해당하는 목록도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체이고 활동하며 우리 곁에 계신 존재이다. 그리스도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게 실제로 접근해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시편 기자처럼 우리도 목마른 사슴이 광야에서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듯, 또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먼 여행길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가는 꿈을 꾸는 순례자가 된 듯, 그분과의 교통 안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길

영적 지향의 모든 새해 결심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잡는다는 면에서 도움을 준다. 그 모두는 다 하나님의 임재로 가는 길, 하나님의 팔로 인도하는 방향타, 그리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하려는 이들을 위한 로드맵이다. 

개인적인 변화 또는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취”하는 것이 결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살아 계신 하나님, 그분이다. 하나님만이 목적이고 핵심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일보다 낫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가 은이나 금보다도 낫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은 어떤 종교적인 성취, 잘 짜인 “예배” 경험 또는 마치 성경이 학술 교과서라도 되는 것처럼 공부하다가 깨달아서 내뱉는 비인격적 환희의 감탄보다 낫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부분이 마치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있는지, 아니면 단지 기계적으로 표준화된 기독교 절차를 따르고 있는 게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행여라도 나는 지금 연극의 인물처럼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만든 천박한 가짜 신을 쫓으면서 정작 진짜 하나님을 저 멀리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닌가? 

새해 목표로 성경 통독과 성경 암송을 결심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금식과 같은 영적 훈련도 고려하라. 삶의 규칙과 새로운 습관을 고민하자. 영양이 풍부한 기독교 서적을 읽고 또 신학과 교리도 열심히 공부하자. 새로운 기도 습관을 세우고, 교회의 제자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하고, 또 지역 사회에 봉사하겠다고 결심하자.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더 알고 만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조품 또는 가짜 하나님을 쫓는 과정에서 얻는 부수적인 유익이 아닌, 오직 하나님 그분을 얻기 위한 영적 훈련과 습관을 만들어가자. 

하나님이 목적이자 수단이다

복음의 좋은 소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목표이며, 그분은 이미 우리가 자신을 만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제공하셨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중보를 통해, 우리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얼마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 히브리서 4:14-16과 에베소서 3:12은 나의 의가 아니라 대제사장 예수의 의에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가르친다. 더욱이 성령님은 하나님을 사모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신다. 우리 마음에 그의 법을 기록하시고, 그의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감히 눈을 뜨고 그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영적 훈련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함께하는 삶에 씨를 뿌릴 수 있다. 새해를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살아계신 임재와 은혜의 비옥한 토양에 당신의 신앙이 깊이 뿌리 내리도록 하라. 그것보다 더 좋은 곳도 없고, 더 높은 목표도 없다. [복음기도신문]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살아 계신 하나님, 그분이다. 하나님만이 목적이고 핵심이다

캐롤라인 콥 Caroline Cobb | 싱어송라이터, 조만간 발표할 앨범은 Psalms: The Poetry of Prayer(May 2023)가 있다. 이미 발표한 앨범으로는 A King & His Kindness(2021), A Seed, A Sunrise(2020), The Blood + the Breath(2013), 그리고 TGC의 “Best Christian Albums of the 2010s”에 선정된 A Home & A Hunger(2017)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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