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고정희 칼럼] 추우니까 더 따뜻하다

사진: Photo by mizunaka on Unsplash

계절이 바뀌어서 오사카 아마미 집에 왔다. 다다미 방, 세월의 흔적을 먹은 짙은 나무기둥, 줄을 당겨 켤 수 있는 전등, 쌓여 있는 우편물이 맞이한다. 오후 늦은 비행기를 탔기에 밤 시간에 도착했다. 기름통에 조금 남은 석유로 차가운 방 공기가 금세 따뜻해졌다. 먹고 싶었던 일본 컵라면 국물로 몸을 녹이기는 충분했다. 집이구나 안도감이 평안히 임했다. 짧지 않은 몇 달간을 인도하시는 나그네의 여정으로 지냈다. 살림에 굶주린 나는 몇 날을 닦고, 빨고, 차가운 것에서 따뜻한 것으로 바꾸며 일본을 다시 안고 있다.

온 마음으로 안아야 따뜻하다. 이 땅이 그렇다. 추우니까 더 따뜻하다.

한국 목포 여정 중에 받은 문준경 전도사님 찬양 CD를 차에서 듣노라니 그 은혜로 이 땅이 따뜻하다. ‘주님 없는 천국은 내가 원치 않구요~ 주님 있는 지옥도 내가 싫지 않아요~’ 예수님이 함께라면 그것으로 충분함이 함께 고백되어 졌다.

예수께서 깨어 바다를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잔잔하여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39~40)

바다에 풍랑이 이는 배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두려울까. 하지만 그 배에 예수님이 함께라면 괜찮다.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셔도 함께라면 괜찮다. 이 땅에 살면서 두렵다는 마음으로,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곤 했다. 내가 죽을 것 같다고, 무섭다고, 왜 가만히 계시냐고 했다. 예수님 말씀처럼 믿음이 참 없다. 풍랑이는 바다도 주님의 것이거늘.

일본은 지진의 나라이다. 정말이지 자주 일본 전역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그것을 보도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기에 일본 집들은 온돌문화가 아니다. 전기온풍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들은 석유난로를 사용하고 있다. 지진을 대비해서 전기 없이 심지로 켜는 석유난로도 이 땅에서는 꼭 필요조건이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빠알간 불이 달아오르고 그 위에 물 주전자를 올려 놓는다. 주전자에서 피어나는 수증기가 정겹다. 호일에 싼 고구마가 맛있게 익는다. 더 따뜻하다. 캠핑장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정경은 덤이다.

이 계절이 오면 사무치게 설레이고 두려웠던 때가 생각난다. 토요타에서 오사카로 부르심을 받고 텅 빈 방에 난로 앞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창문 너머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조선(우리)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고구마가 익는 난로 앞에서 우리 부부는 학교 교문을 열고 들어가는 두려움으로 몇 날을 보내었다. 남편은 여자 혼자 가는 것이 부드럽고 좋은 것 같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은혜를 입었을까, 내게 무슨 용기이었을까. 벌떡 일어나 굳게 닫힌 녹슨 철 교문을 열고 운동장을 지나 현관의 글귀들을 읽으면서 교무실로 향했다. 우리학교 아이들을 보러왔다고, 청소를 해도 좋고 밥을 해도 좋고 무슨 일이든 함께 하고 싶다고 그냥 말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걸음걸음은 숨겨져 있는 우리민족의 한 퍼즐 조각을 찾게 하셨다.

그 때 그 입은 용기로 하나님은 내게 우리 민족의 기름부음을 낳는 은혜을 주셨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았지만 닫혀 있던 이 땅의 문이 열렸다. 이 땅에는 변함없이 하늘의 만나가 내리고 있다. 공중 나는 새를 보아도. 들의 백합화를 보아도. 그리고 새 시대, 새 선교가 시작되고 있다. 3년간 오지 못한 선교의 발길이 우리(조선)학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걸음 걸음은 설레이면서도 두려운 것을 안다. 먼저 걸어왔으니까. 그 두려움은 기쁨으로 띠 띄우실 것을 또한 안다. 나도 보았으니까.

이 땅에 오는 마음들을 맞으러 기름통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왔다. 이 땅을 밟는 걸음 걸음들이 온 마음으로 이 땅을 따뜻하게 안고가길 기도한다. 추우니까 더 따뜻한 것을 아는가. 이 땅의 은혜가 그렇다.

바람이 불면 어떠하랴, 파도가 친들 어떠하랴, 주무시는 주님인들 어떠하랴. 주님과 함께 타고 있는 배 안이라면 충분하다. 때가 되면 풍랑도 바다도 순종하거늘.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편 46:10) 

[복음기도신문]

고정희 선교사 | 2011년 4월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족이 일본으로 떠나 2014년 일본 속에 있는 재일 조선인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처음 만나,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저서로 재일 조선인 선교 간증인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었다'(도서출판 나침반, 202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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