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기독교(1)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 아프리카 수단을 수차례 방문한 바가 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1990년대 후반 수단은 글자 그대로 지구 상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한번은 심한 갈증으로 물을 마시고 싶었는데, 생수를 구할 수 없어 콜라 한 병을 샀다. 그런데, 그 콜라가 참 희한한 상태였다. 병 모양은 틀림없이 코카콜라였는데 병뚜껑은 세븐업이었고, 내용물은 누런색이었다. 찜찜한 마음에 콜라가 왜 이러냐고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 나라는 워낙 가난해서 모든 것을 재활용하기 때문인데 내용물은 정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병을 따고 마셨더니, 그것은 오렌지 맛 환타였다. 주인에게 따졌더니 자기 나라에서는 ‘병 모양이 콜라면 다 콜라’라고 부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냥 넘어갔다.
요즘 들어 이 시대의 기독교를 살펴보면, 기독교가 마치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하다. 겉모양은 기독교이고 타이틀은 교회인데, 실제 내용물은 인본주의(휴머니즘)인 예배와 가르침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으며, 이런 추세는 현대 교회의 위기를 점점 증폭시키고 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이미지가 좋은(즉, 인기가 높은)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 기독교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실상 적지 않은 경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보다는 그 반대의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톨스토이, 링컨, 헬렌 켈러, 마더 테레사, C. S. 루이스, 마틴 루터 킹, 오프라 윈프리 같은 인물들이 사실은 성경적 뿌리가 아닌 인본주의적 뿌리에서 비롯된 열매를 맺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비록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실상 하나님의 나라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아니 어떤 면으로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유사품(짝퉁)에 속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진품인 것으로 착각하는 부작용도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이 글이 근본주의(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라는 비판이 있을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원래 좋은 의미였던 근본주의가 현재는 잘못된 꼴통 신앙을 지칭하는 의미로 변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물론 근본주의를 넘어선 개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적 근본주의를 부정하는 개혁주의가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10년 전인 2012년 4월,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 한신대 등 네 개 신학대학교 도서관장이 소위 ‘신학생 필독서 100권’을 발간하고 독서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장차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에게 교리적 차이를 넘어 양서(良番)를 통해 연합과 일치의 정신을 제시해주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라 한다. 여기에 포함된 ‘양서’의 목록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융과 그리스도교’, ‘폴 틸리히’, ‘간디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 ‘뜻으로 본 한국역사’, ‘사랑의 기술’, ‘상처 입은 치유자’, ‘소유냐 존재냐’, ‘신화의 힘’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긍정적으로 제시되는 인물들인 융, 틸리히, 간디, 슈바이처, 함석헌, 에리히 프름, 헨리 나우웬, 조지프 캠벨은 한결 같이 뉴에이지, 자유주의, 합리주의, 이교사상 등에 함몰됐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저해하고 왜곡시킨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과 그의 사상들)을 배우는 것이 마치 바람직하고 필수적인 요소인 양 예비 목회자들에게 제시되고 있는 현실이 필자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다.
목회자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성경이 아닌 세상 가르침, 하나님 말씀이 아닌 인본주의를 청중에게 전하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러한 모습이 한국 교회 안에 이미 많이 퍼져있다. 지금의 기독교는 점점 더 인간의 생각을 많이 가미(加味)해서 새로운 영성을 만들어내는 중이다. 이 새로운 영성은 혼합된 영성이며 잡탕 영성이지만, 세상에서는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 시대의 기독교는 마치 예수가 경고한 바처럼 “눈먼 사람이 눈먼 사람을 인도하여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고 있는” 형국이다(누가복음 6장 39절, 새번역). 대중은 기독교 자체가 ‘눈먼’ 종교인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는가!
미국에서 하나님 중심의 기독교 신앙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를 종교의 경지로 올려놓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존 듀이는 ‘인본주의 선언(Humanist Manifesto)’에서 “인간을 신(神)으로부터 해방시키자”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진정한 철학이라면 어떠한 절대적 원인이나 궁극성을 찾는 임무를 이제는 내던져야 할 것이다”라며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강조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듀이와 그의 추종자들이 기대한 대로, 인간이 하나님음 대신하며 또한 인간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이 인정을 받는 시대가 돼버렸다. 이러한 영적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깨어서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고 신랑 되신 예수를 기다리는 현명한 다섯 처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눈먼 기독교>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박태양 목사 | 중앙대 졸. LG애드에서 5년 근무. 총신신대원(목회학), 풀러신대원(선교학 석사) 졸업. 충현교회 전도사, 사랑의교회 부목사, 개명교회 담임목사로 총 18년간 목회를 했다. 현재는 (사)복음과도시 사무총장으로서 소속 단체인 TGC코리아 대표와 공동체성경읽기 교회연합회 대표로 겸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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