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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교회의 하나됨 Part 1

▲ 우크라이나의 한 교회. ⓒ 복음기도신문

지난 10여년의 시간 동안 미국 땅에서 교회를 섬기고, 학업을 하는 과정 가운데 이곳 미국 내의 크고 작은 한인 이민 교회들의 소식들을 종종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민 교회들로부터 들려왔던 소식 가운데 가장 빈번했던 이슈가 있었다면, 그것은 단연 교회 내 분열이라는 이슈였습니다. 교회 내 분열의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한 교회 안에 사역자들 간의 불화가 서로 다른 두 그룹을 이루어 교회가 반으로 나뉘기도 하였고, 때론 담임 목회자를 신임하는 성도들과 그렇지 않은 성도들 간의 의견차가 교회 안에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교회 내의 특정한 사업 이슈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한 교회 안에 기나긴 갈등을 만들고, 결국 교회가 분리되는 사태로 마무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교회 안의 분열, 나뉨의 문제는 특정 교회 혹은, 특정 지역적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몇 해 전인가, 한 선교 관련 책자에서 선교사가 자신이 피, 땀을 흘려 섬겨오던, 선교지를 떠나게 되는 가장 많은 원인 중 하나가 함께 사역하던 선교사와의 갈등, 분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한 생각에 대해 더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 내의 분열의 문제가 과거 초대 교회 안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던 일임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1. 예루살렘 교회의 분열

이 땅에 가장 처음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에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2

그러나, 공교롭게도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 내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문제는 교회 안에 불공평으로 인한 분쟁, 나뉨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특정 개인의 문제)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행 6:1

예루살렘 교회 안에 각기 다른 사상과 문화, 언어적 차이를 가진 두 유대인 그룹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한 교회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을 때에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 즉, 유대교 전통을 고수하며 나름 율법에 더욱 입각한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을 자신들의 부류보다 낮게 여기고, 경시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특별히, 당시 사회적 약자였던 과부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욱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과부들을 향하여 구제 활동을 할 때에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해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을 차별하여 공정하지 못하게 대우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갈등과 분쟁으로 번지게 되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2. 고린도 교회의 분열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편지를 기록할 당시, 그의 편지에서 가장 처음으로 언급한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 역시, 당을 지어 파를 나누는 또다른 형태의 분쟁의 문제였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 1:11)

그들은 서로 자신에게 침례를 베푼 사도의 권위가 더 크다고 주장하며, 자신에게 침례를 베푼 사도들의 이름을 따라 각 각의 당을 지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3. 바울과 바나바

이 땅에 가장 처음으로 구성되었던, 선교팀, 바울과 바나바, 그들도 이 분쟁과 분열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행 15:37-40

이처럼, 분쟁, 분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무너뜨리는 문제임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분쟁이 구원 받은 성도의 모임인 교회 내에서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우리의 육체가 맺는 열매, 즉,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아닌, 우리의 죄악 된 육신이 맺는 육체의 열매들이 무엇인지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20-21

본 서신에서 바울은 분쟁, 분열과 같은 일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육신의 죄악 된 열매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육신의 열매 가운데 4가지가 “나뉨” 이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 있음을 통하여 우리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성격과 점진적인 모습 등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도 바울은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분쟁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3

바울의 언급을 통하여, 우리는 분쟁, 분열과 같은 행위들이 교회 안에서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육신의 일, 즉, 우리가 속한 육체가 맺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분쟁, 분열과 같이 당을 지어 나뉘는 모습들은 아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구분할 것없이 우리가 삶의 주변에서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일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분쟁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고통을 주는 당사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은연 중에 편을 나누고, 내가 서있는 편에서 상대편의 약함을 짓누르고, 상대의 무너짐을 보며 그 안에서 쾌락과 만족을 얻기도 하는 삶을 추구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육신의 죄악 된 본성이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그 습성을 따라 분쟁, 분열을 조장할 것임을 경계하고 그것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교회란 무엇인지, 교회론과 관련하여 성도에게 올바른 관점과 가르침을 전하는 에베소서는 교회 안의 분쟁, 분열과 반대되는 개념인 교회의 연합과 하나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에베소서의 절반인 1장에서 3장에서 바울은 교회로 부름 받은 성도가 어떠한 은혜와 성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하여 구원 받았는가를 조직적으로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절반인 4장에서 6장을 통하여, 구원 받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 교회로써 마땅히 살아야 하는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특별히, 4장의 도입부에서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는 말의 시작과 함께 성도가 추구해야 하는 합당한 삶의 모습 7가지를 제시하는데, 그것 가운데, 가장 첫번째가 바로 성도의 연합, 교회의 하나됨 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성도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합니다.

바울의 권면, 그 외침을 들어봅시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3

이 바울의 외침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전달합니다.

첫째로, 성령께서 성도의 하나됨을 이미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의 연합이 교회 안의 구성원들이 새롭게 만들어 나아가야 할 어떤 새로운 가치로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미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심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완료된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성도의 하나됨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연합을 이루고 있는가를 7가지에 걸쳐서 제시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4-6

두번째로,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은 성도가 힘써 지켜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힘써”라고 번역한 헬라어 “σπουδάζω“(스포우다조)라는 단어의 의미는 “열성적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다” “고통을 감내하다”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지키라”로 번역된 헬라어 “τηρέω”(테레오)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지켜보다, 보호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교회의 연합, 하나됨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과 최선을 다해, 때로는 고통까지 감내하면서까지 그것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권면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연합, 하나됨이 성도가 보존하여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점과 동시에 얼마나 쉽게 공격 받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하나됨, 연합이 왜 성도가 그토록 힘써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일까요? 다음에 연재될 글에서 간략하게 성경의 두가지 본문을 통해서 성도가 교회의 하나됨, 연합의 수호를 위해 힘써야 할 그 이유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성현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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