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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튀르키예 사람들 이해하기

사진: 필자제공

밖에서 보는 이슬람(26)

문화와 경작

문화는 영어로 ‘culture’이다. 이 말은 ‘경작한다’라는 뜻을 가진 ‘cultivate’라는 말에서 나왔다. 즉, 문화는 밭에 무엇인가를 심고 경작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튀르키예(터키)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영혼이라는 밭에 과거에 어떤 정신적 씨앗이 심어졌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의 의식구조, 신념, 그리고, 정신적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이슬람 이전, 튀르키예인들의 문화

튀르키예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 거주해온 유목 민족이었다. 광대한 대초원을 말을 타고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농업을 제외하고는삶의 대부분은 늘 이동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짐승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는 동안에 기다리는 일 외에 그들이 할 일은 없었다. 이들은 낮의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밤에는 함께 춤을 추는 등 주어진 환경을 지혜롭게 터득해야 했다.

그들은 나그네 같은 삶 속에서 인내와 낙천적 삶을 배웠다. 그들은 늘 이동하는 생활에 익숙해 있었고, 광활한 땅은 공동의 소유였다. 그들이 가진 재산은 땅이 아니라, 짐승의 숫자였다. 이들은 이런 유목 생활을 통해 합당한 정신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낙천적인 삶

일반적으로, 튀르키예인들은 낙천적이다. 그들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어떤 큰 사고를 만나도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상을 매우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기나긴 시간, 아무도 없는 광활한 땅, 이곳에서 단조로운 삶을 살다 보니 전지전능의 조물주가 만든 대자연에서 무능할 대로 무능한 자기들의 나약함을 발견했을 것이다.

춤의 생활화

튀르키예인들은 놀기를 좋아하고, 놀 때는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춤을 춘다. 물론, 그들이 춤을 출 때는 굳이 술을 마실 필요는 없다. 거리나 소풍 간 장소, 심지어 일터에서도 춤곡이 나오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손에 손을 맞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춘다.

강한 형제 의식

튀르키예인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가족이나 친척관계가 아니면서도 서로를 다정하게 부른다. 남자들은 서로를 형(아비), 여자들은 누나(아블라), 남의 부인에게는 형수(옌게), 나이 든 이들에게는 아버지(바바), 어머니(안네), 할아버지(데데), 할머니(니네) 등으로 부른다.

친절한 손님 대접

과거 이들의 유목 생활은 매우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그래서, 멀리서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고, 외부의 새로운 소식들을 듣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도 외국 사람을 만나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같이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그들의 문화유산이다.

상호관계를 중요시하는 사회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나’라는 의식보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게 보인다. 과거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유목 생활은 필요에 따라 타협과 투쟁이 늘 반복되는 사회였다. 이동하는 유목민들에게는 한 번의 따돌림은 영원한 헤어짐이었다. 그들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버림받게 되면 죽음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외부의 위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친척, 그리고, 친구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강한 집단의식

튀르키예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매우 강한 민족이다. 그 집단이 좋든 나쁘든 그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 집단에 한 번 소속되면 좀처럼 나오는 일은 없다.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든, 운동팀이든, 심지어 그것이 종교라도 한번 속하면 그 안에서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

우리 사회도 학연,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유목 민족은 각기 흩어진 부족장을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한 지도자를 선정하게 되면 무조건 그 지도자에 순종하는 것이 그들의 하도록 하였다.

이 같은 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셀주크 제국, 오스만제국 그리고, 튀르키예공화국이 세워졌다. 튀르키예는 늘 강력한 지도자를 요구한다. 만일 지도력이 약하면, 민주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서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진다. 튀르키예인들은 자기들이 어떤 강력한 지도자 밑에 있었다는 이유로 서로 친해지기도 한 이유가 여기 있다.

남성 위주의 문화

튀르키예 남자들에게 ‘당신은 사자(아슬란)다.’라는 말로 칭찬해 준다. 남자답다는 말이 튀르키예 남자들에게 가장 기분 좋게 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튀르키예의 문화는 전쟁문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에서 용감하고 힘 있는 사람이 존경받던 과거의 문화가 지금도 여전히 이들의 의식 속에 흐르고 있다.

튀르키예공화국을 창시한 초대 대통령인 케말 아타투르크가 여성의 지위를 유럽 수준으로 높여 주었지만, 국내 이슬람문화가 강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남성 위주의 사회로 존재한다. 가정에서 남자들의 보수적인 권위 밑에서 발언권도 없이 살아가는 여자들이 많고, 심지어 남자들에게 반대의견을 제시할 때 맞고 사는 여성들도 상당수 있으며, 흑해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남자들보다 여성들이 들에 나가 일하는 예도 적지 않다.

자존심이 강한 민족

튀르키예인들 사이에서 자존심이 상하면 그 사람과 어떤 일도 함께할 수 없다. 그리고, 튀르키예인들은 좀처럼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마치 약하고 비굴한 행동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신 문화의 양분화

튀르키예 사람들은 과거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을 형성하기 전까지는 집단으로 이동하는 삶이었다. 이런 이동의 사회에서는 좀처럼 정신 문화유산이 탄생할 수 없었다. 당시는 단지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만이 영웅으로 존경받는 사회였다. 그러므로, 당시 튀르키예 사람들의 문화란 오직 전쟁문화였다.

한편,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오랜 기간 기근으로 생존의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서쪽으로 지속해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아랍인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만났으며, 생존의 수단으로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들의 오랜 토속 신앙을 버렸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슬람 사상이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오스만제국 후기부터 서구 영향을 받은 인본주의 사상가와 철학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는 인본주의 철학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오스만제국 말에 새로 나타난 정당으로서의 ‘젊은 튀르키예 당(Jön Türkler, 혹은 Genç Türkler)’을 중심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시작될 때, 유럽의 진보 사상 영향을 받은 일부 사상가가 나타났다. 오스만제국이 결국 이들에 의해 망하게 될지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스만제국 말기에 나타난 새로운 정신 문화중 가장 강력하게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타튀르크(ATATURK)’ 사상이다. 이 정신 사상이 오늘날까지 현 튀르키예(터키) 공화국을 지탱해 오는 정신적인 지주가 된다. 이는 민족주의 운동과 함께 탄생한 서구세속주의를 추진하는 인본주의 문화이다. 지금 튀르키예 공화국을 이끄는 새로운 이 정신 문화와 오랜 시간 튀르키예 사람들 안에 자리 잡은 이슬람 사상이 지금 터키에 공존하며 때로는 충돌로, 때로는 타협으로 이어오면서 공화국 탄생 10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슬람문화의 영향

지금 튀르키예(터키) 공화국은 인구의 99%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다. 그러므로, 튀르키예 사람들의 올바른 이해는 이슬람 사상을 통해 완성된다. 튀르키예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이슬람교가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지금, 튀르키예 사람들이 가진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이들의 유목문화로부터 축적된 여러 정신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졸업, 전,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현, 터키어권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M-NET KOREA) 회장, 저널 ‘전방개척선교(KJFM)’ 편집인, 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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