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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거짓 선생에 관한 놀라운 진실

ⓒ 복음기도신문

 당신이 거짓 목소리를 아예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이 거짓에 노출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예 거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굳이 던질 필요도 없다. 누구나 다 들으니까. 문제는 ‘과연 그 메시지를 듣고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분별할 수 있는가’이다.

텔레비전, 라디오, 팟캐스트, 뉴스 등을 보고 듣거나 또는 다른 누군가와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될 때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거짓 가르침에 쉽게 노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신이 거짓 목소리를 아예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건 당신이 거짓에 노출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아예 거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를 통틀어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언제나 엄청난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말씀을 손으로 필사했거나 말씀을 전파하는 선생들은 걷거나 말을 타고 움직여야 했다. 그땐 자동차도, 비행기도 또 인쇄기술이나 웹사이트 또는 페이스북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모든 거짓 선생들은 다 트위터 계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기가 훨씬 쉬워진 지금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수많은 거짓 선생들 중에서 참된 선생을 분별할 수 있을까?

거짓 선생들이 일어난다

거짓 가르침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에서 들리는 잘못된 가르침에 놀랄 필요가 없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거짓 선생들이 무수히 생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장담할 정도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막 13:22-23; 혹은 마 24:24).

마찬가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경고했고(행 20:29-31), 또 그의 제자 디모데에게도(딤후 4:3-4) 거짓 선생들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딤전 4:1과 딤후 3:1-6). 우리가 이런 부분에 여전히 의구심을 가진다면, 이런 경고에는 베드로까지 가세해서 그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벧후 2:1).

자, 거짓 선생들이 이미 교회 역사를 통해서 숱하게 생겼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건 지금 우리 시대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교리와 삶을 자세히 보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아주 놀라운 사실은 거짓 선생들의 삶이 그들의 거짓 가르침을 증명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르침에서만 거짓이 아니라, 삶에서도 거짓이다.

교리적인 오류 아래에는 비록 매우 교묘하고 속기 쉽지만 언제나 윤리적인 타협이 숨어있다. 그런 타협은 보통 하룻밤 사이에 밖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15-20에서 우리에게 대비할 것을 알려주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눅 6:43–44도 참조).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했고, 우리는 그걸 놓치면 안 된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처음에 보면 예수님의 경고가 명확하고 단순한 것 같지만, 우리가 다 알고 있다시피 나무는 하룻밤 사이에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에는 열매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윤리적인 타협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인 방에서 속삭임으로 시작한 것이 조만간 지붕 위에서 외치는 소리로 바뀔 수 있다(눅 12:3). 그렇기에 바울은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지도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르침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행 20:28; 딤전 4:16).

의심의 여지없이 단번에 거짓 선생을 알아볼 수는 없다.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없는 경우에, 또 교리적 타락이 행동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경우에, 그들이 바른 선생인지 거짓 선생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이룬 사역의 양과 숫자의 열매가 아니라 사역의 특징과 인내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에서 드러나는 열매로 알게 될 것이다.

돈, 성, 그리고 권력이 주는 매력

거짓 가르침의 열매에 대한 예수님의 경고가 새삼 어떻게 확장되는가라는 측면에서, 베드로후서 2장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짓 가르침에 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은 베드로가 타락한 삶에 관해서는 긴 설명을 하고 있다.

1절과 3절에서 ‘멸망하게 할 이단’과 ‘지어낸 말’이라는 용어를 통해 잘못된 가르침에 대해 일반적인 언급을 하고 더 이상 그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나머지 모든 구절은 다 삶에 관해서이다.

핵심적인 내용으로 다음 세 가지를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다 가르침이 아닌 성품과 행동에 대한 것이다.

• 교만 또는 주관하는 이를 멸시함(10절) – 1절,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12-13절과 18절).
• 정욕, 보통 성적인 죄를 의미함 – 2절,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10, 12-14 그리고 19절).
• 탐욕, 보통 돈과 물질적인 취득을 바람 – 3절,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14-15절).

베드로는 반복해서 탐욕, 정욕, 교만, 즉 다른 말로 하면 돈과 섹스 그리고 권력을 묘사한다. 역사를 통틀어서 볼 때, 거짓 선생들의 공통점은 그릇된 어떤 특정 교리가 아니라 지금 말한 세 가지 영역 중 어딘가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도덕적 타락이다.

이 세 가지를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거짓 선생들이 저지르는 오류는 자신에게 짓는 죄, 타인에게 짓는 죄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짓는 죄라는 것이다. 탐욕으로 인해 그들은 양 떼를 물질적 필요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정욕으로 인해 그들은 성적 범죄를 저지른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말하듯이 간음, 간통 또는 동성애를 통해서이다. 교만으로 인해서, 그들은 “주관하는 이를 무시한다”(벧후 2:10), 그리고 더 큰 권위, 이 세상 모든 권위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무시한다.

모든 거짓을 다 공부할 수는 없다

거짓 가르침이 단지 그들이 말하고 쓰는 게 아니라 삶에 관한 것이라면, 오늘날 교회는 어떻게 그런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고 폭로할 수 있을까? 온라인이나 큰 집회를 통해서 설교를 듣는 건 어렵지 않지만, 그들이 개인적으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은가?

거짓 가르침에 대한 가장 좋은 방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말씀대로 살고 또 말씀을 즐거워하는 지역교회 공동체이다. 그리고 그 지역교회의 리더가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먼 곳에 있는 지도자가 나를 돕는 것은 힘들겠지만, 내가 다니는 지역교회 지도자라면 훨씬 더 현실적이고 확실하게 나를 도울 수 있다.

우리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너무 높게 평가해서 일반 그리스도인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목자는 양과 똑같이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목자도 다름 아닌 양무리 사이에서 살고 생활하는 존재이지 무리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똑같은 양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각한 목사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런 자각 이후에 자신을 리더이자 선생으로 인식하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사역을 일궈낸 지도자라는 명성보다 천국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 그런 목사가 필요하다(눅 10:20).

예수님이 그의 교회를 지키신다

그러나 그걸 알고 있는가? 우리는 거짓 가르침에 대항한 좋은 시스템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지도자의 삶과 교리를 제대로 검증하기 위한 시스템도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인간이 만든 이상, 절대 완전한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 사실이 거짓 가르침에 대한 말씀 중에서도 절정에 해당하는 베드로후서 2:9이 제공하는 달콤한 확신이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가르침이 아무리 왜곡되어도, 비윤리적인 지도자 때문에 아무리 교회가 부끄러움을 당해도, 우리 주변이 아무리 어둡게 느껴져도, 복음을 지키고 또 복음에 따른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게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우리에게는 이 지속적인 위대한 희망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신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가장 위대하고 진실한 선생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죄로부터 구하고 또 우리 영혼을 파괴하는 잘못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가장 위대한 구원자이다. 교회가 아무리 소수가 되어도, 우리가 아무리 무력하게 느껴져도, 진정한 가르침과 진정한 삶의 모델이 되신 바로 그분은 우리 삶과 영혼을 지켜주신다.

하나님이 노아를 지켜주셨듯이(벧후 2:5) 또 롯을 구하셨듯이(벧후 2:7), 주님되신 예수님은 그의 경건한 백성을 거짓된 삶을 사는 거짓된 선생의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지켜주신다. [복음기도신문]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목자는 양과 똑같이 냄새를 맡을 수 있어야 한다. 목자도 다름 아닌 양무리 사이에서 살고 생활하는 존재이지 무리에서 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매티스(David Mathis) | 데이비드 매티스는 desiringGod.org의 주필이며,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Cities Church의 목사이다. ‘은혜받는 습관’의 저자이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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