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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하나님식 자녀 양육법 (2)

사진: Irina Murza on unsplash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하나님식 자녀 양육법의 독특하면서도 놀라운 특징은 매우 단순하다는 데 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자녀 양육법과 관련 자료가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얼마나 많은 자녀 양육서가 쏟아져 나오고,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치료하기 위한 복잡한 심리학 이론과 기술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자녀의 말투, 표정, 행동 등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문제를 아동심리학의 기준으로 진단하면서(각종 트라우마, 장애, 증상, 현상 등) 부모에게 그 모든 자세한 정보를 아이를 위해 알아두고 양육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을 권면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늘날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보를 찾을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것이 참인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정말 귀하고 소중한 자녀에게 어떤 방식의 자녀 양육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확신을 가질 수 없어서 괴로워한다. 그래서 케빈 드영은 <미친 듯이 바쁜>에서 자녀 양육에 대한 지나친 극성을 경계하며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기본적인 자녀 양육의 원칙만 지킨다면 그 외의 대부분의 양육 기술이나 방침들은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여러 해 전, 나는 알리스테어 베그 목사님이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인용하신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랬다. ‘어렸을 때 나는 여섯 개의 이론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 자녀도 없었다. 지금 나는 여섯 명의 자녀를 가지고 있고 아무 이론도 없다.’…나는 내 자녀들이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난 우리 부모님들이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말 모른다. 심지어 부모님 자신들이 그 모든 것을 얼마나 알고 하셨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분들이 예수님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언제나 알고 있었다.’”(부흥과 개혁사, 92-93p)

하나님식 자녀 양육법은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책임과 내용 그리고 목적을 갖는다.

1. 책임: “아비들아”

흔히 자녀 양육의 책임은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맞벌이를 많이 하지만, 일반적으로 아빠는 밖에서 양육비를 위한 경제활동을 하고 엄마가 자녀를 돌봐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인격과 성격이 형성되는 시기의 양육 책임을 엄마에게 돌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나님식 자녀 양육법에서 그 책임은 “아비들”에게 있다.

그러면 엄마는 자녀 양육의 책임이 없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가득했던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 여러 번 아빠와 엄마 모두에게 양육의 책임이 있고 자녀도 그 돌봄 아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잠 6:20),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그러면 왜 성경은 “아비들아”라는 말을 했을까? 에베소서 본문에서 바로 앞에 있는 문맥은 아내와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 신자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가정 안에서 특히 부부 관계 안에서 사는 법을 제시한다. 성령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가정의 질서를 분명하게 가르치시는데,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라고 말한다(엡 5:23). 가부장적인 문화의 폐해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신학자들은 “머리 됨”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려고 애쓰지만, 본문이 말하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다.

이 말은 가부장적인 문화가 옳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남편이 가정의 모든 일의 최종 권위자이자 책임자라는 것이다.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하신 것처럼(엡 5:23-30) 자기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의 리더십으로 아내와 자녀를 인도하고 돌보고 공급하고 사랑할 책임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식 자녀 양육의 책임을 “아비들”에게 물으시는 것이다. 엄마도 자녀를 훈계하고 양육하고 돌보고 먹이며 사랑할 책임이 있지만, 자녀와 엄마까지 포함하여 가정의 총책임자가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빠는 절대로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 집에서 가정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애를 어떻게 키운 거야?” 도리어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이를 어떻게 양육할지 함께 얘기해보자, 함께 기도해보자, 내가 앞장설게!”

2. 내용: “주의 교훈과 훈계”

아이는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먹는 것, 입는 것, 말하는 것, 듣고 이해하는 것. 자랄수록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배우는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말하는 걸 배울 때부터 외국어를 가르치려 하고, 한글을 익히기 전에 알파벳도 배우게 한다. ‘안 된다’라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고, ‘최고야’라는 말을 자주 하면 자기중심적인 아이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 미신이 섞여 있는 양육 방식, 가령 ‘아이를 북쪽을 향해 재우면 좋지 않다’ 따위까지 부모는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진지하게 받는다.

하나님식 자녀 양육법은 가르치는 내용을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우선순위를 분명히 한다. 모든 부모가 원하는 자녀의 미래는 솔로몬처럼 되는 것이다(그리스도인 부모는 솔로몬의 말년을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는 자녀가 가졌으면 하는 모든 것 곧 부와 명예와 인기와 권력과 지혜를 모두 가졌다. 재산과 지혜가 세상의 그 어느 왕보다 컸다(왕상 10:23). 하나님께 받은 총명과 지혜로 쓴 잠언에서 솔로몬은 지식의 근본이 무엇인지 이렇게 밝힌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모든 지식과 지혜가 배운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안개와 같은 짧은 인생을 자기 잘난 맛에 남들 보기에 성공적으로 살다 갈지 모르지만, 죽음 이후 영원한 생애를 하나님과 단절된 곳에서 고통과 슬픔을 당하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엄밀히 말해 이 땅의 삶도 행복하지 않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의 삶은 온갖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이기 때문에 영원히 목마른 삶, 무거운 짐 진 것 같은 삶, 목적과 방향과 가치를 상실한 채 자기 육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의 풍조에 따라,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에 이끌려 사는 삶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 혹은 감정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 그분의 주권 앞에 굴복하며 선하심을 기뻐하고 사랑을 신뢰하며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모든 사람의 본분을 정의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삶의 원칙, 기준이 하나님이 되시는 것, 사람들 눈앞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율법 교육과 훈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언약을 주신 하나님은 이제 새 마음과 새 영 곧 성령을 통해 자녀의 마음에 하나님을 아는 빛을 비추신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 경외하는 법을 복음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율법은 아이의 도덕성을 빚는 도구가 아니라 주신 목적대로 죄를 깨닫게 하고 복음의 은혜로 나아가게 하는 초등 교사가 되어야 한다.

3. 목적

자녀의 삶이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되길 원한다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보실 때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도록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녀를 항상 말씀으로 양육하라고 권면하셨다(신 6:6-9). 아삽은 시편 78편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노래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시 78:5-8)

물론, 자녀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렸다(롬 9:18). 하지만 주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양육법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한 부모는 자녀가 하나님 앞에서 완고하고 패역하여 불충한 자가 되었을 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녀에게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것을 그 어떤 것을 희생해서라도 주고 싶은 부모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 영원한 복에 대해 알려주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녀가 먼저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없다. 부모는 세상을 떠날 때 남은 자녀를 걱정하고 그들의 잘 됨을 소망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을 부모보다 더 아끼고 귀하게 여기며 하나뿐인 자기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분의 손에 맡기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 아닌가? 그분의 손을 붙잡도록 최선을 다해 알려주고 인도하고 가르치는 것, 그것이 하나님식 자녀 양육의 목적이다. 당신이 배우고 적용하는 수많은 자녀 양육 방식은 어떻게 이 중대한 우선순위와 연결되어 있는가? [복음기도신문]

추천도서: 잭 클럼펜하우어 <주일학교에서 오직 복음을 전하라> 새물결플러스, 2020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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