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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암은 그리스도인을 이길 수 없다

사진: Jon Tyson on Unsplash

 암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 교회 성도 데럴 카르멘이 6개월 전에 암으로 죽었다. 그가 죽기 6개월 전엔 그의 아내 앤이 코로나로 사망했다(나는 앤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글에서 쓴 바 있다). 

데럴이 죽고 한동안 나는 그가 천국에서 누리고 있을 삶을 그려 보면서 “암을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티셔츠나 자동차 범퍼 스티커에서 “나는 암을 이겨냈다”라는 문구를 한번쯤은 본 적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이겼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라는 의미다. 이것이 ‘이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다. 사는 것이 승리이고 죽는 것은 실패라는 것이다(암이 치료되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데럴은 암에 졌다. 암이 데럴을 이겼다. 단순한 차원에서 이는 분명 사실이지만, 온전히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눈을 들어 말씀에 계시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성경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히 11:1).

보이는 것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암이 데럴을 이겼다고 결론짓겠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영광스럽고 더 큰 그림을 볼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어떻게 데럴이 사실상 암을 이긴 것이 되는지 성경적이고도 실제적인 세 가지 이유를 나눠 보고자 한다.

1. 암은 예수 안에 있는 데럴의 믿음을 죽이지 못했다

암이 주는 가장 심각한 폐해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아마도 몸이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암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믿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좋으신 분이 아니야,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게 아니야,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었어. 만일 하나님이 선하시고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시겠어?’ 암이 주는 가장 심각한 폐해는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다.

암은 데럴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가 여섯 달 전에 아내를 잃었을 때나 죽기 6주 전에 암 진단을 받았을 때나 그는 항상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리고 제게도 늘 선하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뵐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다.

데럴이 이러한 확신을 가졌던 것은 그가 완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그를 괴롭히는 많은 죄가 있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므로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혹 데럴처럼 예고된 죽음 앞에서 시간을 갖게 된다면, 사탄은 길고 긴 범죄 기록을 들이밀며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거기에는 내가 상처 준 사람들, 죄에 넘어진 모든 순간, 내가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수만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에 집중한다면, 죽는 것은 더욱더 두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데럴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았다(빌 3:13). 그가 뒤를 돌아볼 때는, 자신의 죄가 아닌 자신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성경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고 말씀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데럴 카르멘은 승리했다. 그는 암을 이겼다. 암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믿음을 죽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믿음을 더 단단하게 해 줄 뿐이었다.

2. 암은 데럴을 예수님에게서 떼어내지 못했다

사탄의 목적이 데럴과 예수님의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면, 사탄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암은 데럴을 그리스도에게서 떼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이끌어 주었다(빌 1:23). 하나님의 사랑에서 데럴을 떼어내는 데 암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예수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데럴을 잃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를 사랑하사 값 주고 사셨으며, 그가 주님 계시는 곳에 함께 거하도록 기도하신 주님이시기 때문이다(요 17:24). 그리고 이제 예수님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데럴이 이 땅에서 죽기 전 마지막 6주 동안 경험했던 것과 지금 천국에서 누리고 있을 일들 사이의 간격을 생각해 보라. 고통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고 의로 충만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50년을 함께 했던 아내와 재회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기쁨은 그가 마침내 예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사랑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어쨌든 암이 데럴을 이긴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암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손실”이라면, 우리 모두는 암을 빨리 없앨수록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손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유익”이라고 말한다(빌 1:21). 암은 데럴을 이기기는커녕, 그를 예수님 앞으로 곧장 인도해 주었다.

3. 암은 데럴에게서 빼앗은 것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암이 데럴을 이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최고의 근거는 그의 몸이 그의 고향 테네시주 하츠 빌에 묻혔다는 것이다. 물론 암이 그의 몸을 앗아간 것은 사실이며, 이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도 실제로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에 패배했다.

암도 이와 같다. 암은 기껏해야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과 같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결전은 이미 치러졌고, 결과는 승리이다. 오래된 부활절 축하 인사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죽음으로 죽음을 짓밟으시고, 무덤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암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그의 육체가 전부이다. 그뿐이다. 암은 그의 몸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데럴의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셨을 때, 그는 데럴의 몸에 계약금을 걸어 놓으셨으며 후에 그것을 찾기 위해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엡 1:14; 롬 8:11). 이 일이 일어날 때, 힘없이 뿌려진 죽은 몸은 권능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또한 낮고 낮은 몸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화될 것이다.

데럴이 죽기 전 며칠 동안 그의 곁에 앉아 암으로 쇠약해져 가는 그를 지켜보면서, 우연히 그의 침대 탁자에서 그의 젊은 시절이 담긴 액자를 보았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젊음의 활력이 넘치는 데럴, 이제 막 결혼한 남자의 유쾌한 미소가 가득한 모습. ‘이다음에 그를 만날 땐 바로 이 모습이겠구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암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데럴을 위해 울되,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믿음은 큰 그림을 보게 한다. 최후 승리를 기다리는 우리는 데럴 카르멘이 암을 이겼다고 믿음으로 말할 수 있다. [복음기도신문]

 암은 기껏해야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과 같다.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 결전은 이미 치러졌고 결과는 승리이다 

저스틴 딜리헤이(Justin Dillehay) | 저스틴 딜리헤이는 The Gospel Coalition의 협력 편집자로 미국 테네시주에 있는 Grace Baptist Church의 목사로 섬기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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