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양육을 힘들게 하는 것들 (2)
오늘날 인기 있는 자녀양육 잡지를 보면, 어떻게 자녀들을 확실하게 잘 양육할 수 있는지에 대한 끝없는 정보들과 방법들을 본다. 하루 일정표, 건강식, 아기 에어로빅 운동, 그리고 영재 교육 등, 세상은 성공적인 자녀양육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좌절한 아버지들과 절박한 어머니들이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서 그들의 즉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만일 아이가 콩을 먹지 않으려고 하면 아이가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먹게 하지 말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먹이라. 그리고 아기들이 자신을 표현할 때 절대로 야단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정보들은 필사적인 부모에게 즉각적인 편안함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오늘 존 목사님께로부터 들을 내용처럼, 이러한 실용주의적이며 단기적인 세상의 해결책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존 맥아더 목사님의 설명을 들어보자.
외부에서 오는 막대한 압박은 내부로부터 오는 더 막대한 압박 때문에 더 복잡해집니다. 우선 내부적인 요인부터 알아봅시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진하고, 아는 것이 없고, 경험이 없고, 귀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에 대하여는 무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온갖 모든 죄의 씨가 이미 모든 아이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뿌려졌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온갖 모든 죄의 씨가 이미 모든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 심어져 있습니다.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잘못되어서 우리 아이들이 더럽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심히 더럽혀져 있습니다.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잘되지 않아서 우리 자녀들이 영적으로 헤매고, 도덕적으로 방황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본성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 충동 때문에, 즉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파멸로 향하는 내적 충동 때문에 방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충동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하나님과 의로움을 추구하려고 세상에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 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내 말을 잘 들어보십시오. 비극적인 결과는 자녀들이 자신의 가장 악한 욕망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대량 살해범들에 대하여 많이 얘기하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그들 이야기를 항상 방송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끔찍한 범죄인 아동 성추행을 저지르는 소아 대상 성욕자, 강간범, 동성애 성도착자와 만성적인 범죄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항상 의문을 갖습니다.
“그들이 어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의 부모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그들은 분명히 학대받는 환경에서 자랐음에 틀림이 없어. 그들은 학대받고 혹사당하는 상황에 처했었을 거야.” 의문은 항상 그들의 부모들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었나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량 살해범들, 소아 대상 성욕자들, 강간범들, 변태성욕자들, 평생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부모들이 무엇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만일 제프리 다머(연쇄 살인범)가 어렸을 때 상처를 깊이 받은 일이 있었는지를 찾아내려고 할지라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한 동성애자의 살인 만행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의 부모가 그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무엇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 22:15)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저 자기의 죄 된 본성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부모들이 이 작은 사악한 아이들을 낳아서, 그들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려고 전혀 헌신하지 않고 또 매로 징계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자녀들이 그들의 악하고 부패함을 마음껏 전부 표현하도록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에 우리가 아이들의 재앙이 아니라 성인의 재앙을 직면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전혀 교훈을 받지도 않았고 제한받지 않았기 때문에, 태어날 때 그들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던 대로 자라난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시금석이 되는 시편을 몇 편 읽어 드리겠습니다. 시편 58: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아기들을 작은 뱀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태에서 나올 때부터 사악하며 태어나자마자 거짓을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한 타락”이라고 합니다.
시편 51:5에 다윗이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가 사생아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사생아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뜻은 그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태어날 때까지 그에게 죄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우리의 자녀들이 “완전히 타락한” 상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자녀양육의 가장 중요한 기초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잘못했을 때에 사랑으로, 하지만 단호하게 징계함으로써 그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 부모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어둠에서 나와서 빛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마음이 변화되어서 죄를 사랑하는 대신 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바랍니다. 그들이 자신의 죄 된 욕망들을 전부 드러내는 대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온 마음을 드리게 되는 것을 우리 부모들은 원합니다.
이 모든 범죄자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하여,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요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놓치게 합니다. 누가 그들에게 무엇을 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해야만 했던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였고, 아무도 그들의 사악함을 대면하여 책망하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준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사랑하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만, 아무도 그들에게 신체적으로 벌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기준에 순종하도록 붙들어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무도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여서, 초자연적인 통제자를 마음에 모실 수 있도록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실생활의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자녀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의 스케줄에 무엇을 넣고 안 넣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우리의 타락한 죄인인 자녀를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은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의 자녀들과 손자들을 이렇게 생각하기 싫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삐뚤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아야 할 거룩하고 작은 천사들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타락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아야 할 작은 천사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성도가 되도록 인도받아야만 하는 작은 타락한 죄인들입니다. 이 말이 듣기 싫으시다면, 당신의 자녀들을 당신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요즘에 세상은 이 재앙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아이들은 엄청난 문젯거리이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분노하는 세대입니다.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의 영화를 보십시오. 복수, 분노, 무자비,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누구에게 가장 분노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좌절시킨 부모들에게 가장 분노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4이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거나 쓴 뿌리가 생기게 하지 말라.
세상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습니까? 모든 심리학자들이 모여서 답을 찾았습니다. 이 해결책은 지옥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존심이 낮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이 해결책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찾아와서, 당신이 그들이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게 하고는 돈을 지불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자존심이 없는 것, 자신을 자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자신을 선하고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한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 젊은이들을 보고 “자신을 있는 대로 사랑해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좋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지금 당신은 불에다 기름을 들어붓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뜻과 자신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당신은 그들에게 그들이 정당하다고 말할 뿐 입니다.
자존심은 작은 야수들을 길들이지 못하고 오직 불에다 기름을 부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은 자만의 죄를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답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아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를 말합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외부적으로 세상이 자녀들을 공격하고, 내부적으로 이렇게 타락한 자녀들을 제멋대로 자라게 두어서, 이 두 요인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어린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서 전도자입니다. 당신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도자입니다. 자녀들이 삐뚤어지는 것은 당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된 원인은 당신이 무엇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존 목사님의 설교에서 발췌한 내용을 듣고 아래 질문에 대해 답해 봅시다.
1. 교회들이 자존심을 높여주는 자녀양육 운동을 장려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자녀양육 교실, 청소년 교실)? 구체적으로 말해보세요.
2. 하나님께서는 질서와 규율을 지키기 위한 수단들을 각 사회 기관에게 규정해 주셨습니다. 정부에게는 칼을; 교회에게는 파문을; 그리고 부모들에게는 바로잡을 회초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한 권위들이 징계하기를 거부할 때 사회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 유사점은 무엇입니까?
3. 부모님들, 당신은 자존심을 높이는 자녀양육으로 치닫는 어머니 혹은 아버지에게 어떤 충고를 해줄수 있습니까? 이미 그들을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습니까? 너무 늦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들이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까? [복음기도신문]
참조: http://www.gty.org/blog/B100928
존 맥아더 (John MacArthurn)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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