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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칼럼]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

출처: 창조과학선교회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창 2:5)

“한 몸을 이룸”으로써 최초의 결혼이 성취되었고 최초의 가정이 세워졌다(창 2:24).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서로 다른 한쪽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보충해 주는 진정한 “한 몸”이었다. 죄가 들어오기 이전 이들의 모습은 참으로 이상적인 부부와 가정이었으며 그들의 좋았던 상황을 그린 표현이 바로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다”이다.

창조될 당시 이 첫 부부는 흠 없이 완전히 거룩한 상태였기 때문에 부끄러움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둘은 서로 간에 죄의식이나 도덕적 그릇됨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이는 ‘보시기에 좋았던’ 상태로 창조하신 선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수치감이나 부끄러워할 만한 원인을 넣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주위에 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타락 직후의 모습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창세기 3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도 동일하게 둘만 있었지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창 3:7). 즉 창조 당시에는 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았던 이유가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범죄 이전에 수치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완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둘이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었던 상황에 주목해 보자. 이는 단지 그들의 거룩한 상태뿐 아니라, 자신들이 살던 창조 당시의 좋았던 환경도 암시한다. 옷이란 단지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만 입는 것이 아니다. 뾰족하거나 거친 물체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옷을 입으며, 추위를 차단하거나 뜨거운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옷을 입는다. 그러므로 이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은 피부를 보호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시 환경이 좋았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좋지 않은 환경은 범죄 이후에 등장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왔으며, 노아 때의 홍수 심판 이후에 ‘추위와 더위’가 처음 등장한다. 즉 처음의 좋았던 환경은 범죄와 홍수 심판을 겪으며 악화 되었음을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환경은 보시기에 좋았던 첫 모습이 아닌 인류의 범죄로 인하여 첫 상태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벌거벗었다는 상황은 오늘날의 불편한 환경과 비교할 수 없이 좋았음을 말해준다.

“타락 이전의 세상”을 그릴 때 많은 식물을 그려 넣는 것은 “타락 이후 세상”에 살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그리기 기술의 열쇠이다.

이 첫 부부가 범죄 하자마자 다른 부위가 아닌 치마로 자신들의 생식기를 가렸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했을 때 이들에게 하신 첫 명령인 “생육하라” 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생육(生肉)은 다음 세대에 생명을 전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실 때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창 2:7)라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육 과정은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기에, 사람이 행하는 생육도 그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생명의 근원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을 때 진정한 의미의 생육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엄밀히 살아있는 자를 낳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지만 생명과 단절된 자녀를 낳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범죄 후 이들의 첫 행위는 얼굴이나 다른 신체 부위가 아닌 생육을 위해 디자인된 생식기를 가린 것이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첫 명령을 거역함에 따른 반응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본문에 둘이 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때는 단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도 완전했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 전체에 걸친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한 마무리가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로 끝을 마친 것은 참으로 완벽한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마무리 구절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끝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하신 창세기 1장의 마지막 말씀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과연 이 마무리 속에 진화 역사가 들어갈 틈이 있는지 생각해보라! 수십억 년 동안 진행되었던 자연선택, 생존경쟁, 적자생존, 돌연변이, 멸종과 죽음… 이런 악한 진화 과정의 어떤 모습도 들어갈 틈이 없다. 진화와 성경 역사를 함께 믿어보려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수십억 년 동안 이런 잔인한 과정들을 겪는 가운데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를 넘어 반 성경적 자세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옷을 입고 있다. 과연 옷은 어떻게 입게 된 것일까? 단지 진화론이란 애매한 용어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날씨가 추워서, 피부를 보호하려고, 창피하니까…” 란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런 안 좋은 상황은 처음에 없었다. 이런 안 좋은 상황을 겪었기 때문에 옷을 입게 된 것이 아니라, 죄를 짓자 부끄러움이 생겨 옷을 입었고, 옷을 입은 이후에 이런 안 좋은 환경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창세기 2장과 1장의 마무리인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와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의 말씀은 옷을 입게 된 과정조차도 우리가 스스로 깨달아 알려고 하는 시도를 무색하게 만든다. 과연 피부가 상할 필요도 없는 환경,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날씨, 서로가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순결함을 어떻게 그려볼 수 있겠는가! 성경의 기록을 보며 이 사실을 믿고 있는 것이 감격일 뿐이다. [복음기도신문]

lee jm 2024

이재만 | 창조과학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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