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위험을 모를 때는 병에 걸릴 만한 행동을 마음 놓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진단을 받았는데 당뇨 수치가 높고, 관리를 잘못하면 합병증으로 발을 절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태도가 확 바뀝니다. 의사의 지침에 따라 위험한 것을 피하고 절대 하지 않게 됩니다. 적을 알면 싸울 태세를 갖추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죄가 그렇습니다. 죄를 우리가 싸워야 할 적으로 정확히 알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절제할 수 있습니다. 죄의 끔찍함이 자신에게 실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는 나쁘고 지으면 안돼죠. 그래도 또 짓게 되면 어떻게 하죠?” 이런 태도는 뒷문을 열어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죄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니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죄인에게 내려지는 것은 모든 지독한 질병의 양성 판정을 받은 것보다 더 무서운 사형선고, 곧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나병 환자라는 낙인만 찍혀도 이 세상에서 죽음을 경험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죄와 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가 곧 나요, 나 곧 죄’라고 말합니다. 죄는 이렇게 심판을 받아야만 끝이 납니다.
“그래도 나는 심각한 죄인은 아니에요.” 혹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선해질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죄인은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은 너무 분명합니다. 이렇게 나를 특별하게 보려고 하는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죽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어마어마한 역사의 숙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가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더듬어서 마지막 결론으로 알게 된 진리! “우리 죄, 자아가 죽어야 되는군요!”라고 인정할 때, 주님은 “그래서 너희 ‘옛 사람’을 내 아들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노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기도신문]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김용의.규장.2017)에서 발췌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관련기사]
죄는 ‘열매’가 아닌, 열매를 맺는 ‘나무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자아(自我)’는 스스로 죽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