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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12 사도 연구 (2)

ⓒ unsplash

II. 예수의 1차 즉위식과 12 사도

개혁신학에 따르면, 신약의 예수와 열 사도는 구약의 이스라엘에서 야곱과 그의 12 아들(12지파)로 예표가 되는 하나님 백성을 실제로 성취한 자들이며, 새 이스라엘의 기둥 같은 자들이다. 또한, 계시록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12지파(족장)의 이름이 열두 문 위에 기록되어 있고(계 21:12), 신약의 12 사도의 이름은 성곽의 열두 기초석에 기록되어(계 21:14), 서로가 중요한 위치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앞에서 우리가 살펴본 세대주의는 개혁신학을 대체신학이라 비판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초림 예수 즉위론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논의했다. 필자가 이해한 개혁신학에 따르면, 초림 예수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이미 왕으로 즉위하셨다. 이제 1차 즉위식이 어떻게 거행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본 후에, 그리고 예수의 열두 사도는 어떻게 세워졌는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예수의 열두 사도를 연구하는 가운데, 개혁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실체신학’ 또는 ‘성취신학’이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1. 예수의 1차 즉위식

예수의 1차 즉위식은 세례 직후에 크게 세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① 하늘이 열리고, ② 세례를 받으신 예수 위에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리고, ③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 그때 선포되었던 말씀은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마 3:17; 눅 3:22)이다. 이는 시편 2:7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와 이사야 42장 1절의 “내 기뻐하는 자라…”가 통합 인용된 것이다.[1] 역사적으로는 다윗의 후손들이 왕이 되는 즉위식에서 이와 같은 말씀이 낭송되었다. 그러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직접 하늘의 소리로 선포하시는 가운데 예수 위에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게 하시며 친히 즉위/등극시키셨다.

2. 예수의 최초 제자들 

예수의 최초 제자들이 부름을 받게 되는 장면과 시기에 대해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각각 다르게 묘사한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그 장소는 그들이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현장이다. 그 시기는 그의 1차 즉위식 후, 40일 금식 기도 중에, 세례 요한이 투옥됨에 따라, 서둘러 갈릴리로 돌아가신 직후인 것처럼 보인다. 한편,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 장소는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이다. 세례 요한은 그 마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예수를 맞이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요 1:29~34), 그의 제자들까지도 예수께 양도하였다(요 1:35~40). 또한, 그 후에도 아직 투옥되지 않는 가운데,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라고 하였다.

  1) 공관복음과 예수의 최초 네 제자

최초의 네 제자, 즉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세워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거의 일치한다. 한편, 이에 대해 누가복음에는 좀 더 자세히 기록된다.

    (1)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록

예수께서는 그의 즉위식을 마치신 직후에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마지막 날에는 마귀가 세 번에 걸쳐 유혹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에 의해 섬김을 받으셨다(마 4:1~11; 막 1:12~13; 눅 4:1~13). 예수께서는 바로 그때 세례 요한의 체포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가셨던 것처럼 보인다(마 4:12; 막 1:14). 그 후에 스블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셨다(마 4:1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막 1:15)라고 선포하심으로 그의 사역을 시작하셨고(마 4:17),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던 네 어부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그들이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예수의 부름을 받게 된 베드로라 하는 시몬, 안드레,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남겨두고 예수를 따랐다(마 4:18~22; 막 1:16~20). 

그런데,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며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셨던 사건은 예수께서 구약 예레레미야 16:1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에 대한 성취적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람들의 어부’는 흩어진 (북조) 이스라엘 자손들(아홉 지파 반)을 불러 모으는 어부를 가리키는데, 예수의 제자들로 부름을 받은 자들의 역할이 곧 이스라엘 지파들의 회복 사역을 할 자들로서 ‘사람들의 어부들’이다.[2] 예수 당시에는 두 지파 반(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와 레위지파 일부)만이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잃어버린 아홉 지파 반(열 지파라고 간주됨)이 종말에 회복되리라고 기대하였다(참조. 사 27:12~13; 49:5~6; 슥 10:10).[3]

그러나 한.이성경연구(Korea Israel Bible Institue: KIBI)는 “유대인 귀한 사역지원(알리야)”라는 이름으로 예레미야 16:14~15를 이루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위한 쥬이시 에이전시”(JAFI: The Jewish Agency for Israel)와 함께 “피싱트립 (Fishing Trip)”을 이끌고 잇다. 이는 곧 유대인 귀환을 위하여 재정 지원 뿐만 아니라 직접 극동 러시아 및 구소련 지역으로 어부들(Fishermen, 렘 16:16)을 보내어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을 권면하고 돕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4]

    (2) 누가복음의 기록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눅 4:1~13)을 마친 후, 갈릴리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그에 대한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다(눅 4:14). 그는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눅 4:15). 안식일에 나사렛의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사건으로 인하여 동네 사람들이 그를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어뜨려 죽이고자 하였다(눅 4:16~29).

예수께서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하신 후,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자 그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도 퍼졌다(눅 4:31~37).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나오신 후에 열병으로 앓고 있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셨다(눅 4:38~39; 마 8:14~17; 막 1:29~34). 마가복음 1:29~-30에 따르면, 예수와 함께 회당에서 나온 자들이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갔을 때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다. 당시 시몬 베드로의 집은 상당한 규모의 집이었던 것으로 예수님의 가버나움 사역의 근거지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참조. 막 2:1; 9:33).[5]

예수께서는 갈릴리 여러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눅 4:42~44).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갈릴리 호수에 있는 시몬의 배에 오르신 후에 그 배를 육지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 하신 후에 무리에게 가르치셨다(눅 5:3).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라고 하셨다. 그러자, 그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5)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여 심히 많은 고기가 잡혔고, 모두 다 놀랐다(눅 5:6~7).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였다(눅 5:8). 그리하여, 시몬 베드로를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야고보, 그리고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그들의 배를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예수를 따라나섰다(눅 5:11).

2) 요한복음과 예수의 최초 다섯 제자

창세기처럼 “태초에”로 시작되는 요한복음의 서론(1:1~18)은 말씀(예수)과 하나님, 창조, 인간과의 관계(1:1~5), 세례 요한의 증거(1:6~8), 예수께서 말씀, 빛으로 오셨으나 배척당함(1: 9~11),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혜택(1:12~13), 말씀의 오심과 영접(1:14), 세례 요한의 증거(1:15), 말씀과 인간, 재창조 또는 새 창조, 하나님과의 관계(1:16~18)와 같은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1:1~18) 직후에는,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과 그의 사역이 소개된다(1:19~28). 이 마을을 다시 찾아오신 예수와 그의 재회를 통해 예수의 최초 제자 둘이 세워진다. 그들의 형제 또는 친구들이 가세하여 총 다섯 명이 예수의 최초의 제자들로 세워진다(1:19~51). 그들은 예수와 함께 갈릴리 가나의 혼례에 참여하여 예수께서 행하신 첫 표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예수를 더욱 믿었다(2:1~11).

세례 요한이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첫 날부터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첫 표적을 보고 믿기까지의 전 과정이 일주일 동안에 걸쳐 일어난 사건으로 보도된다. 첫날, 또는 제1일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암시되어 있다(1:19~28).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1:28)는 제2일부터 제5일(1:43~51)까지의 배경이 된다. 제6일은 베다니를 출발하여 제7일의 배경이 되는 갈릴리 가나(요 2:1~11)까지의 이동의 날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첫 한 주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펼치는 새 창조의 첫 한 주간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그의 마지막 주간, 즉 수난 주간과 대조를 이룬다.[6] 이 새 창조는 곧 예수께서 새 이스라엘 또는 참 이스라엘을 세우시는 가운데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역사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고린도후서 5:17 말씀, 즉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창조, NIV)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은 새 피조물(창조)의 대표들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제자들은 곧 새 이스라엘 또는 참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며, 회복된 이스라엘의 대표들이다. 특별히, “새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제4일에 예수의 제자로 세움을 받게 되는 시몬 베드로와 더불어, “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제5일에 예수의 제자로 세움을 받게 되는 나다나엘과 그의 동료들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제1일: 세례 요한(1:19~28)

공관복음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선포하기 시작하여(마 3:1), 요단강 부근 전역을 순회하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가운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였다(눅 3:3). 한편, 요한복음에 따르면, 세례 요한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보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맞이하여 그들과의 질의 문답에서 자신은 메시아나 엘리야도 아니라고 하였다. 또한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함으로써 제2의 모세로 일컬어지는 메시아(신 18:15, 18)도 아니라고 하였다. 그들에게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라고 하였다(요 1:23). 또한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겠노라”(요 1:26)라고 답하였다.

이와 같은 내용이 공관복음에도 소개되는데(마 3:11; 막 1:7; 눅 3:16), 거기에는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라는 문장이 없다. 요한복음에서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임박한 상황이 더욱 고조된 분위기이다. 이는 곧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 메시아가 곧 출현한다는 뜻이었다. 요한복음은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전 과정을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서 마치 하루 동안에 일어난 것처럼 묘사한다. 다시 말해서, 이 단락(1:19~28)의 내용들은 바로 암시된 첫날 또는 1일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7] 그런데, 그렇게 암시된 “첫째 날”, 즉 1일의 배경이 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은 세례 요한의 사역 장소이자, 바로 메시아 예수를 맞이한 장소가 되고, 예수의 첫 제자들이 세워진 장소가 된다.

앞에서 우리는 “태초에”라고 시작된 서문에 이어 요한복음의 첫 한 주간이 소개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가 기술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우리는 암시된 첫날(1:19)과 세 번에 걸친 “이튿날”(1:29, 35, 43),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2:1)을 기초하여 또 하나의 날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새 창조의 한 주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숨겨진 또 하나의 날은 바로 둘째 “이튿날”에서 찾을 수가 있다(1:35~42). 

     제2일: 세례 요한과 예수(1:29~34)

“이튿날”이 세 번 나오는데(1:29, 35, 43), 첫 번째 “이튿날”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 머물고 있던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설교하기 시작하였다(요 1:29). 그렇다면, 앞에서 우리는 1일이 곧 메시아의 오심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해석하였는데(요 1:19~28), 마침내, 2일에 예수께서 메시아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 마을에 오셨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이튿날”(1:29), 즉 1일과 2일은 연대기적으로 해석될 수가 없다. 만일에 그렇게 되면, 요한복음의 예수와 공관복음의 예수가 서로 다르게 된다.

요한복음에는 예수의 세례와 즉위식, 그리고 40일 동안에 걸쳐 광야에서 진행되었던 금식과 40일째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천사의 도움으로 회복하셨던 사건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2일의 예수는 이와 같은 모든 일정을 이미 마무리하신 후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그의 제자들을 양도받기 위하여 오셨다. 따라서,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을 염두에 두고 “(예수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선포한 시점과 장면은 예수의 세례식과 즉위식, 그리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를 마친 후 마귀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회복하신 후 자기 앞에 다시 오신 예수와 재회 때이다. 그의 설교 전부를 마저 들어보자.

(예수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 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 1:29~34).

세례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하였다는 뜻은 무엇인가? 이는 곧 그가 예수께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결정적인 순간에 두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준비된 대체 제물(창 22:13)의 실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선포했다는 뜻이다. 또한, “유월절 어린 양”(출 12:3)과 “도살할 양같이 우리의 죄를 감당하는 여호와의 종”(사 53:7)을 종합해서 가리키는 것으로 그가 족히 이해하였다는 뜻이기도 한다.[8]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양도되는 것은 제2일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3일: 안드레와 요한(요 1:35~40)

두 번째 “이튿날”(요 1:35), 즉 3일에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그의 두 제자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다시 찾아오셨다. 마침내, 그 둘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따르고자 하였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을 떠나 자신을 따라오는 그들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되물었다. 그때 예수께서 “와서 보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날 예수와 함께 지냈다. 그 둘은 곧 안드레와 그의 무명의 친구였다. 그 무명의 친구는 곧 요한복음의 저자이며, 세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요한으로 추정된다(요 1:40).

    제4일: 시몬 베드로(요 1:41~42)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시쯤’ 되었다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보라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하였다.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1:41)”. 리차드 보컴은 ‘열시쯤’(1:39)과 “먼저‘(1:41)라는 표현을 기초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1:39과 다음 절에서 안드레라고 불리는 그 사람과 무명의 동행인은 “그날”에 예수와 함께 거하였는데, 이것은 이후 낮부터 저녁이 되기까지(유대 방식으로 셈하면 다음 날이 시작하기 전까지)를 가리킨다. 이것은 이어서 안드레가 한 일이 (1:41에 따르면) 다음 날에 일어난 일이 틀림 없음을 뜻한다. 그래서 요한은 “다음 날”이라고 명시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전날 끝났음을 (상세한 설명들을 생략하고 꼭 필요한 부분만 설명하는 독립된 사화에서) 이미 명시했기 때문이다.[9]

열시쯤(1:39)이 오늘날 오후 네시 정도가 되며, 그날의 일과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먼저”(요 1:41)는 곧 그다음 날이 시작된 후의 “먼저”이다. 그렇다면, 안드레가 예수의 제자가 된 날은 3일이며, 그 형 시몬을 예수께로 데려온 날은 4일이 된다. 여기에서 본문 1:40~42에 귀를 기울여 보자.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여기서 세례 요한의 제자 안드레가 그의 형 시몬을 찾아,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하였던 점에 대해 생각하여 보자. 그들은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1:29,36),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자”(1:33), “하나님의 선택자”[아들](1:34)라고 소개받았다. 세례 요한의 천거로 예수를 따라가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가운데, 그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메시아라고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몬을 예수께로 데리고 왔다. 그에 대하여 존 칼빈의 설명을 들어보자.

안드레가 그의 형 시몬을 향하여 손을 펼쳤다. 이는 그가 시몬도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그와 함께 동료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10] 

칼빈은 그리스도의 학교라고만 하였는데, 세례 요한의 학교라는 표현도 덧붙이면, 시몬이 그의 형제 안드레와 안드레를 뒤따라 세례 요한의 학교에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의 학교로 전학하였다고 이해될 수 있다. 안드레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라고 하고 그를 데리고 예수께 왔다(요 1:41). 이제 안드레의 안내를 받고 예수를 찾아 뵙게 된 시몬 베드로에게 집중하여 보자. 예수께서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약속하셨다(요 1:42). 안드레가 베드로보다 먼저 소개되면서도,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소개되었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바는 아람어로 반석이며, 헬라어로 “베드로”이다. 그런데, 이사야 45:4(‘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에서 이름을 새로 지어 바꾸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택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11]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아브람과 사래를 아브라함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각각 그들의 이름을 바꿔주셨던 여호와 하나님과 그 자신을 일치시키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이는 곧 요한복음 저자가 예수의 성자 하나님 되심을 계시하는 여러 말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게바’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하시고, 그를 반석으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키셨다는 말씀이기도 한 이사야 51장 1~2절을 염두에 두셨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12]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퍼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사 51:1~2). 1절의 “너희는 반석… 생각하여 보라”와 2절의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 생각하여 보라”가 평행을 이루어, 반석이 곧 아브라함이 된다. 이 점에 대해 게리 스미스(Garry Smith)의 설명에 귀를 기울여 보자.

반석과 구덩이의 이 흔치 않은 이미지는 이들의 고대 선조와 어머니인 아브라함과 사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설명된다. 청중은 두 번째로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해 약속한 것을 믿고 걸었던 자들과 같은 사람이었음을 “보라, 고려하라, 주목하라”고 권면받는다. 의로운 사람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거론한 한 가지 이유는 이 나라의 과거 역사와 미래 사이에 비교를 지적한 것이다. 오래전에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불렀는데, 그 사람은 자녀가 없어서 시온과 같았고, 시온도 마찬가지로 “사별하고 자녀를 낳지 못했다”(사 49:21). 하나님께서 오래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이는 “내가 그에게 복주고 그를 번성케 하려는 것‘(창 12:1~3)이었고, 이는 아직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해 하나님께서 품은 계획이었다. 아브라함의 자녀가 오랜 세월 동안 증가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시온에 있는 자기 백성을 위해 행동해서 이들을 번성하게 만들 것이다.[13]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이 그의 이름이 아직 아브라함으로 바뀌기 전에 그의 후손들이 큰 민족(국가)을 이루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당시 아브람에게는 자녀가 없는 상태였다. 그의 손자인 야곱은 그의 후손들이 유다왕국을 이루게 될 것에 대하여 예언하였고, 그 예언은 유다 지파의 다윗을 통하여 성취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종말의 메시아 예수는 그 예언의 진정한 성취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 1차 즉위식을 거행하신 후에 이제 그의 제자들을 부르기 시작하셨다. 특별히, 시몬에게 장차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게바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곧 예수께서 시몬의 이름을 반석이라고 하시는 가운데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과 일치시키고 그를 새로운 반석으로 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새로운 이스라엘을 세우시겠다는 뜻이다. 신현우는 “새 아브라함 또는 새 이스라엘의 역할을 하는 시몬을 비롯한 열두 명의 새 족장을 통해 이스라엘을 종말론적으로 재창조하시기 위한 예수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4] 물론, 당시 그는 그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는 언제쯤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하여 보자. <계속> [복음기도신문]


[1] 김세윤, 『예수와 바울』, (서울: 도서출판 제자, 1995), 25.

[2]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마가복음 3:13-19 주해”, 『신약논단』. 제28권 제1호, 2021년 봄. 81.

[3]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마가복음 3:13-19 주해”, 82.

[4] 유대인 귀환 (kibikorea.com). 확인 2021.7.30.

[5] 양용의,『마가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10), 57.

[6] Richard Bauckham,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 문우일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248-249.

[7] Richard Bauckham,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 247.

[8] 유상섭, 『설교를 돕는 분석 요한복음』,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9), 44.

[9] Richard Bauckham, 『요한복음 새롭게 보기』, 245-246.

[10] John Calvin,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1-10, trans. Thomas H. L. Parker (Grand Rapids: Eerdmans; Carlisle: Paternoster, 1995), 72.

[11]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마가복음 3:13-19 주해”, 『신약논단』. 제28권 제1호(2021년 봄), 85-86.

[12] F.F. Bruce, 『예수의 난해한 말씀들』, 정명섭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88) 168-169. 신현우, 90-91.

[13] Garry Smith, 『이사야 2』, 권대영 역,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20), 492.

[14] 신현우, “예수의 열두 제자 임명과 새 이스라엘­마가복음 3:13-19 주해”,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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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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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12 사도 연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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