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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아름다운 차이: 가족과 교회에서

ⓒ unsplash

“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한다. 사랑, 성실, 차이, 연합, 희생적 리더십, 상호 봉사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

상보성과 가족

기독교인은 이 시대에서 남자와 여자 간의 상보성을 표현하도록 부름받았다. 이것은 단지 특정한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뿐 아니라 – 물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지만! – 그 사실을 봐야함에도 불구하고 무시하는 세상을 향해서 그 아름다운 차이를 드러낼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이슬람이 말하는 것처럼) 멀지도 않고, 또 (이교도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안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건 무슨 의미인가?” 라고 물을 때,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는 바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콘텍스트는 바로 가족이다.

이것의 가장 명백한 형태는 결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1-32).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한다. 사랑, 성실, 차이, 연합, 희생적 리더십, 상호 봉사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남편은 머리가 몸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그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말씀의 물로 그녀를 거룩하게 하고 그녀를 빛나게 만들어야 한다(바울이 여기서 일반적으로 여자가 하는 일인 세탁, 청소, 다림질을 남편이 하도록 묘사한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바울은 고의적으로 당시 그레코-로마가 말하는 남성의 이미지를 뒤집고 있다). 이에 따라 아내도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그럼 복종은 일방통행인가? 아니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복종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인가? 바울은 방금 성령 충만한 교회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그런 다음 그는 고대 평균 가정을 묘사하고 이를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녀, 그리고 노예와 주인에게 적용한다. 복종의 상호성(5:21)이 복종이 표현되는 방식(5:22-6:9)의 차이점을 무시하는가? 아니면 바울은 단지 아내, 자녀, 노예만이 (각각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때, 대답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아내와 남편은 서로 복종하도록 부름 받았지만 실제로 부모와 자녀가 또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복종하는 방식과 동일한 방식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서로를 섬기지만 같은 방식은 아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한 예수님은 우리를 섬긴다. 우리는 그의 주인되심에 믿음으로 응답함으로써 그를 섬긴다. (물론 우리 둘 다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물로 우리 자신을 바치지만, 그건 매우 다른 방식이다. 만약에 이 둘을 잘 융합하게 되면, 전체 복음이 더 잘 풀릴 것이다.) N. T. 라이트(N. T. Wright)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울은 대부분의 문화가 그렇듯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단순한 생물학적 및 생식 기능을 뛰어넘는, 훨씬 더 큰 차이점이 있다고 가정한다. 따라서 그들의 관계와 역할은 동일하기보다는 상보적이다. 투표권과 고용 기회 및 보수 (많은 곳에서 여전히 현실적이지 않음)의 평등이 그러한 정체성을 모두 다 암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 그가 주는 지침은 분명하다. 남편은 솔선수범해야 한다. 물론 그 솔선수범은 메시아가 보여준 자기 희생적 모델을 염두에 둔 모습이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 “솔선수범”이 괴롭힘이나 거만함으로 변질된다면, 가족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상보성이 단지 결혼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면 독신, 유족, 이혼 또는 버림받은 사람은 여성성 또는 남성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게 된다(교회에는 언제나 상당수의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건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와 여자로 남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르고, 형제는 자매와 다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또 다르다. 나는 아버지나 형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 어머니와 자매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건 내가 그들에 대한 권한이 있음을 의미하거나 내가 그들을 위해 대신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나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내 여동생은 런던 병원에서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면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하고 그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지침도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족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간 성적 차이를 가정한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1-2). 그렇기에 우리는 친척, 교회 가족, 직장, 심지어 소셜 미디어에서조차 연로한 사람들을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같은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 물론 이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서구에서는 나보다 어린 여자도 얼마든지 나의 상사가 될 수 있지만, 예멘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이성과 식사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과 함께 사는 독신 남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은 독신 여성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과 중요한 면에서 달라야 한다. 그리고 “젊은 여성을 자매로 대하는 것”의 범위를 단지 “그들과 성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만 제한한다면, 그건 바울의 가르침을 완전히 곡해하는 것이다.

상보성과 교회

교회와 관련해서, 넓은 신학과 인류학의 시각을 잃고 단지 성경 구절 몇 개와 복종과 주인(hupotassō or authenteō)과 같은 잡초에 불과한 단어 몇 개에 집착해서 길을 헤매기 쉽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텍스트의 정확한 의미와 그것을 지역 교회에 올바르게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남자 장로의 경우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다음 두 가지 관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a) 장로들이 근본적으로 교회의 수호자라는 것과 (b) 에덴 동산에서 장막, 성전, 예수의 사역, 신약의 교회에서 종말에 이르기까지, 구속 역사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그들을 해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남자라는 사실이다.

신약성경의 “장로”, “목자”, “감독자”라는 용어가 대체로 서로 호환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행 20:17-38; 딛 1:5-9; 벧전 5:1-4). 각각의 직책을 맡은 사람은 교회를 해로부터 보호하고,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책임을 갖고 있다. 성경적으로 말해, 장로는 교회의 보호자이다. 여기 인용한 구절들을 하나씩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라.

1. 목자/목사

목자(또는 “목사”)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양을 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그는 양을 새로운 목초지로 인도하고 그들을 위해 음식과 물을 준비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 목자를 고용하는 주된 이유는 양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부상과 도둑질, 분산과 늑대 및 기타 야생 동물 등등. 이런 사실은 성경의 핵심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목자는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목자는 자신의 피를 흘린다. 이런 사실은 구약에도 잘 드러나있다. 다윗과 같은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사자와 곰을 죽이고 지팡이로 양을 보호했다. 목자에게 중요한 것은 양을 잡아먹는 게 아니라 양을 지키는 일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목양하는 것은 약하거나 다친 양을 보호하고 공격하는 적으로부터 전체 무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2. 감독자/주교

영어 단어 “감독자”는 ‘episkopos’를 문자 그대로 번역한 것으로, 그 단어의 공명을 감안할 때 “주교(bishop)”보다는 확실히 감독자라는 단어가 더 낫지만, 여전히 콜센터를 감독하는 관리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성경에 쓰인 그리스어에 따르면 이 단어에는 “가디언, 수호자”의 의미가 있다. 에스겔에 나오는 스코포스(skopos, 파수꾼)처럼 들렸을 것이다. 존 칼빈은 스코포스(skopos)를 이렇게 이해했다. “신실한 감독자는 양떼를 돌보며 다른 남자는 잠자는 동안에도 일하는 ‘충실한 파수꾼’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수꾼은 노동자를 감시하는 관리자라기보다 보초의 의미가 더 강하다. 물론 감독자의 역할은 교회에서 건전한 교리를 보존하는 것이었으며, 이 역할은 시간이 흘러 결국은 1세기 후반에 들어서 장로(Elder)와 주교로 구분되게 되었다.

3. 장로

놀랍게도 장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렉 빌(Greg Beale)은 신약에서 장로의 목적이 종말론적 환난 동안 교회를 보존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오순절과 재림(parousia) 사이의 기간은 속임수와 거짓 가르침, 그리고 박해와 고통으로 특징되며, 목회 서신이 강조하는 장로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교회가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명령을 담은 구절로 빌이 제시하는 것은 사도행전 20장뿐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 제자들에게 쓴 다음 구절도 포함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14:22),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14:23). 마치 이것이 고난에 대한 해결책인 것처럼 말이다. 교회 역사를 통틀어 주교와 장로는 그들이 섬기는 교회를 대신하여 순교했다. 오늘날에도 똑같은 역동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우크라이나에서 장로들이 체포되는 이유는 적대적인 당국이 회중이 아닌 교회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레고리 대왕은 6세기에 교회를 지키는 것이 고귀한 일이라는 바울의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이 보통 가장 먼저 순교의 고통으로 인도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로의 책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세 가지 D를 사용한다. 교리(doctrine), 규율(discipline), 지시(direction)가 그것인데, 우리는 거기에 네 번째 D를 포함해야 할 지도 모른다. 죽음(death).

이 세 단어를 취합하면 분명한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장로는 다름 아닌 보호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성경 역사 속 모든 시기에서 사람들과 하나님의 성소를 보호하는 지키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아담은 “경작하며 지키도록” 에덴동산에서 창조되었다(창 2:15). 같은 두 개의 동사가 레위 인에게도 사용된다(민 3:7-8; 18:7).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를 죽인 타락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은 하와가 아니라 아담이 져야 한다.

– 족장들은 모두 남자이다.

– 성소 보호와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보호하는 레위 제사장들은 모두 남자이고 그 일을 위해서 필요하면 폭력을 행사해야 했다. 그들은 동물을 죽였고, 심지어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일 정도로 야훼를 향한 열망이 있었기에 그들은 처음 제사장으로 선임되었다(출 32:25-29).

– 이것은 유다에서 남자 군주제와 함께 남자 사제직이 운영되었던 첫 번째 성전 기간 동안에도 동일하다(아달랴는 결코 “여왕”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 저자에 의해서 합법성을 부여받은 적도 없다. 그런 예외는 남성 중심의 규칙이 합법적이었음을 증거한다).

– 스가랴와 세례 요한 시대에 이르는 두 번째 성전 시대까지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모두가 다 남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세계 교회를 하나로 묶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라고 하셨다.

– 신약 교회의 감독자, 늑대와 거짓 목자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는 일을 맡은 장로와 목자 그리고 파수꾼의 자격은 오로지 남성에게만 주어진다.

–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을 포함하는, 여성의 도시(역자 주: 모든 믿는 이는 예수의 신부가 되기 때문에 여성의 도시라고 표현함)로 끝난다. 그 도시는 성별과 상관없이 남자 구세주에 의해서 구원받은 모든 이가 다 그의 신부가 되는데, 도시의 기초와 성벽은 남자 사도와 남자 족장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로의 책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세 가지 D를 사용한다. 교리(doctrine), 규율(discipline), 지시(direction)가 그것인데 … 이 세 단어를 취합하면 분명한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장로는 다름 아닌 보호자이다 

앤드류 윌슨 Andrew Wilson | 영국 런던에 위치한 King’s Church의 교육목사. ‘Echoes of Exodus’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공동으로 저술.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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