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모든 것을 내려놓자, 주님은 다시 사역현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맹기원 목사

저는 무속신앙이 일상이던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때때로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일 년 몇 차례 가족 제사를 지내고, 수많은 조상 묘에 절하며 소원과 복을 빌곤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사고로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어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던 형님에 대한 부끄러움. 아버지의 음주와 주사는 온 가족의 가슴속에 가난에 대한 불행의식과 원망, 분노, 두려움을 깊이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먼저 도시로 나가 예수님을 만난 큰 누님의 가족 전도를 향한 눈물겨운 기도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온 식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시절의 저에게도, 어둠 자체였던 영혼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어두운 글과 노래를 가까이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찬양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름 성경을 읽고, 밤샘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흉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은혜의 환경 속에서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병든 옛 자아의 모습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진심으로 가득했지만 나의 전심은 다른 곳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나를 위한 십자가, 나를 위한 교회, 나를 위한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착한 아이’ ‘선한 자아’는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두 번이나 받은 선행상은 자기 의를 삼는 외식증명서가 될 뿐이었습니다. 모범생, 좋은 목회자, 좋은 가장이라는 가면 뒤에 본질적으로 죄인된 나를 꽁꽁 감추면서 기도로 선행으로 의롭고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눈물겨운 최선의 노력을 해왔던 삶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처럼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척 했던 소경이요 속에 썩은 것들이 가득한 외식주의자였습니다. 욕심나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은 탐심을 이기지 못해 여러 차례 부모님의 주머니를 뒤지고, 친구와 선생님의 것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도리어 멈출 수 없어 자위하고 은밀하게 성추행하며 음란한 마음 때문에 20대의 숱한 날을 자학적으로 금식하며 노력했지만 잠시 뿐,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이고 존재적인 고멜이었습니다. 전도사 사역 중에 혼전관계가 발각될까 두려워 임신을 하게 되면 당연하게 낙태를 계획했던 살인자였습니다.

신대원 졸업 후 5년간의 전임 부교역자 생활은 그동안의 애씀이 얼마나 헛된 것이고 무력한지를 보여주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알지 못하고 나이 40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복음적인 교회를 해 보겠다고 구호를 내 걸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면 되겠지, 열심히 전도하면 되겠지.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절망이 깊어지던 어느 날, 복음학교라는 곳을 통해서 총체적인 복음 앞에 처음 섰습니다. 나에게 복음으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살인하고도 의로운 형의 옷을 입고 살아남은 염치없는 동생이 되었습니다. 호세아를 끝까지 배신하고 음란한 길을 가던 고멜이었습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죄 된 생명, 그래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나였습니다.

‘정말 나 죽었구나’ ‘지옥이구나’ 하는 마음의 사형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드디어 십자가 복음이 진리가 되고 결론이 되었습니다. 그날, 인정과 평판을 위해 애쓰는 나, 눈물겨운 최선의 삶을 꿈꾸었던 나, 옛사람인 맹기원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는 창조 전 하나님의 품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원형인 나, 정죄함이 없는 생명입니다. 운영하던 까페에 나의 복음을 올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이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나의 존재처럼 되어버려 목숨처럼 알고 있던 나의 1%는 목회성공임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인정받는 목회가 결론이 아니라 순종이 결론 되었습니다.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목회라면 충분합니다.

2008년 여름 24365 기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슬린 자에게 기도는 고역 자체였습니다. 부담백배였습니다. 목사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실제가 되자, 기도도 실제가 되어갔습니다.

그 후 주님이 인도해주신 기도와 선교훈련을 통해 제 자신이 중보적 존재임을 더 깊이 확인하고 열방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된 비전을 보고 생생하게 참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창하게 기도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참석했던 기도훈련학교를 통해 아픈 기도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이 한 영혼과 족속과 민족과 나라들 때문에 얼마나 아프신지, 그들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절절한지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선교하는 교회’의 목회방법을 고민하던 그 때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어디든지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보내심을 받은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핍박받는 땅과 그 곳의 사람들이 도망하지 않고 그 땅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하곤 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고스란히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들을 위하여, 열방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비수 같은 질문이 되어 돌아옵니다.

예수 생명 된 나는 주님께서 부르신 삶의 자리를 땅 끝 삼아 복음과 한 운명되어 그들과 동일한 농도로 설 것을 믿음으로 취하며 선포합니다. 내가 이겨야 열방이 이깁니다. 홀로가 아닙니다. 열방 곳곳에 십자가의 복음을 든 복음의 증인들이 영적 전쟁터에 서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던 중 주님은 저를 다시 교회 사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 교회, 나에게 주겠느냐?’, ‘당연하죠?’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주님께서 친히 말씀을 따라 주님의 교회로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예수생명교회와 제 자신을 열방기도센터로 올려드립니다.

‘예수생명’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유익하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습니다. 예수생명으로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요 교회로 서고자 합니다.

느헤미야52기도를 비롯해서 열방기도센터로 이주민사역센터로 하나님께서 마음껏 교회를 사용하시도록 드립니다. 주님께서 신부로 받으신 땅 끝에서 존재로 나의 복음을 써 나가겠습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아멘!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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