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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도 박성춘

사진: pixabay.com
무어 선교사에게 백정 사역에 관심을 갖게 한 백정의 회심기

무어 선교사가 백정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그가 설립한 곤당골학당에 다니던 학생 봉출의 사연을 듣게 되 면서 시작됐다. 소년 봉출의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당시 갖바치로 불리며 가장 천민으로 취급받던 백정이었다.

조선시대 백정은 성인 남자의 징표였던 갓과 망건을 쓸 수 없었고, 호적에 올릴 이 름조차 없었다. 양반들에게 재산을 빼앗기 거나 학대받기 일쑤였고, 심지어 사내아이 들에게도 업신여김을 당하는 등 사람 대접 을 받지 못하는 부류였다. 그런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박성춘. 게다 가 그는 어려서 부모마저 잃고, 모르는 사 람의 손에서 자랐다. 장성한 후 아내를 얻 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술과 도박에 빠져 가족에게 고통만 안겨주는 존재로 비참한 삶을 살았다.

1894년 어느 날 박성춘은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다. 전염병 콜레라에 걸린 것이다. 박성춘의 아들 봉출은 자신이 다니던 곤당골학당을 세운 무어 선교사를 아버지에게 모셨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그를 무어 선교사는 위로했고, 당시 고종황제 의 전담 의사였던 에비슨 선교사를 데려왔 다. 박성춘은 그를 통해 치료받아 완쾌됐다. 박성춘은 황제의 의사가 왜 짐승같은 나를 치료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때 받은 충격으로 곤당골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1894년 무어 선교사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성춘(成春)이라는 이름도 갖게 됐다.

백정 박성춘의 회심은 무어 선교사의 사역이 백정들에게 집중 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박성춘은 또한 백정 전도와 백정 해방운 동의 선구자였다. 갑오개혁이 진행되던 때 에 그는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하여 개혁의 혜택이 백정들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결정 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이로 인해 백정들도 갓과 망건을 쓸 수 있고, 호적에 이름을 올 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이 기쁨을 전국 의 3만 여명의 백정들에게 전하기 위해 백 정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지방을 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국적 조직체인 백정조합의 책임자 가 됐다. 가는 곳마다 백정들 계몽에 힘쓰는 동시에, 자기가 얻은 큰 구원에 대해 전 하고 기독교 서적을 나누어 주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의 전도로 전국의 수많은 백정들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이같은 영향력을 배경으로 박성춘은 1898년 10월 28일 서울 종로에서 독립협회 가 주관하는 관민공동회에 민중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연설을 하기도 했다. 그 의 연설은 한국사사료에 남아있다.

한편 박성춘의 아들 봉출은 훗날 박서양 이란 이름을 갖게 되고, 곤당골교회 예수학 당을 나온 뒤 1899년 제중원의학교, 즉 오늘의 세브란스의대에 입학했다. 박서양은 1908년 제1회 졸업생이자 조선 최초의 서 양의사가 됐다. 그는 1917년 간도로 이주 해 병원을 세우고 의사로 활동하였고 민족 교육기관인 숭신학교를 세워 청년교육에 헌신했다. 또한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 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한국민회 산하 군사령부의 유일한 군의(軍醫)로 임명 됐다. 그의 이야기는 TV드라마로 제작되어 2010년 ‘제중원’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복음기도신문]

“나는 대한의 가장 천한 사람이고 무지 몰각합니다. 그러나 충군애국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이에 이국편민(利 國便民)의 길인즉, 관민이 합심한 연후 에야 가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차일(遮 日)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친 즉 역부족이나, 많은 장대를 합한즉 그 힘이 공고합니다. 원컨대 관민이 합심 하여 우리 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 운(國運)이 만만세 이어지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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