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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삶에서 부요한 삶으로 이끄시는 은혜 누려요”

칼림 존 비숍·레베카 사모(파키스탄 하이드라바드 교구)

한국의 후원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한 기독학교 방문 등의 목적으로 최근 방한한 파키스탄의 칼림 존 비숍(하이드라바드 주)을 부인 레베카 여사와 함께 만났다. 모든 교단이 하나로 통합된 파키스탄의 교단 체제에서 비숍 칼림은 현재 26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인터뷰 사전에 민감한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밝혀, 개인 간증을 중심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편집자>

– 비숍이란 직임은 교회에서 어떤 역할인가요?

“목사가 개별 교회를 섬기는 직임이라면, 비숍은 교회의 수장입니다. 행정권역별로 구분된 교구를 섬기는 것입니다. 현재 제가 섬기고 있는 하이드라바드 교구에는 30명의 목회자가 있는데, 이들의 삶과 교회 상황을 살피고 돕는 것입니다. 이런 체제는 파키스탄의 여러 교단이 통합돼 1980년대 이후 시작됐는데, 힘들고 가난한 지체들을 섬기는 것이 비숍의 역할인 셈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신학교 입학

– 어떻게 주님을 만나셨는지, 믿음의 첫 출발 당시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파키스탄에 살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을 때였어요. 당시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70년대 후반쯤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다는 마음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순종할 수 없었어요. 학업을 계속 진행해 가면서 1980년도부터 실제적인 믿음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전 세상적인 것에 대해 염려를 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콜링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직장과 돈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많은 사람들이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곤 하죠.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실 수 있었나요?

“1982년 저는 중동으로 일을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직업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돈을 많이 벌었지만 하나님이 나를 부르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90년까지 계속 일을 하다 직장을 정리하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카라치에 있는 성토마스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습니다. 세상적인 염려를 버려두고 신학교로 입학했던 것이죠.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가는 삶이 시작된 거군요.

“그때 나이가 30대였습니다. 학교는 91년부터 95년까지 다녔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종이 돼야겠다는 마음을 정한 상태여서 마음으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중동에서 일할 때 보다 훨씬 적은 수입이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죠. 그러나 상관없었습니다. 95년에 신학교의 모든 과정을 이수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카라치 교구를 5년 동안 섬겼습니다. 신학공부를 조금 더하려고 다시 가족들과 영국에 갔습니다”

– 영국에서 신학공부와 목회활동도 하셨겠네요.

“2002년에 영국 감리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병원 원목으로도 일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에 있으면서 믿음의 도전을 받는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시 교회에서 죄에 대해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구원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구원에 대해, 영생에 대해 설교하지 못한다면 성도들에게 무엇을 설교해야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데 말입니다”

영국 떠나 파키스탄에서 귀국해 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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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 전통악기로 찬양하는 현지교회 예배 모습

– 영국에서 왜 그런 주제로 설교를 할 수 없었나요?

“교단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죄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회중들을 낙담시킨다는 것이죠. 언제부터 이런 일들이 있어 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런 설교를 할 때면 사람들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성도들과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자연히 목회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수년을 그곳에서 일했지만 결국 설교 자유가 보장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2010년 그렇게 파키스탄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가족들은 영국에 남겨두고 와야 했습니다. 제가 섬기기로 한 하이드라바드 교구의 여건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런 이유로 영국을 떠나신 거군요.

“저는 2010년 하이드라바드 교구에 들어가 2011년 10월, 교구의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2012년 아내도 직장을 내려놓고 파키스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감독 직분을 감당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당시 제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신실한 은혜로 감독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에 온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영국에서는 두 교회를 섬겼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이드라바드 교구에서는 사례가 정말 작았습니다. 그래서 그 재정규모에 맞춰 생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어서 힘과 건강문제에 대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 어려운 상황들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요?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했습니다. 교구로부터 허락된 숙소에는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테이블도 없고,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이 없었습니다. 제공된 것은 오직 잠자리뿐이었습니다. 모든 기반을 스스로 마련해야한다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영국에서는 좋은 차도 있었는데 파키스탄에 귀국한 이후, 대중교통을 이용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몇 년 후 오토바이를 구입해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제게 비난을 했습니다. 영국 국적도 있고 직장도 있던 사람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느냐, 영국으로 돌아가라. 그러나 ‘전에 카라치에서 5년 동안 사역했을 때도 어렵게 살았다. 지금이라고 왜 그렇게 못하느냐. 허락하신 만큼 살아갈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부족함없이 살아갈 수 있게 허락해주십니다. 그러면서 인내하며 하나님을 섬겨야한다는 결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때 궁핍했지만 채우시는 주님 은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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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의 자리가 구분된 파키스탄 교회

– 사모님 말씀도 듣고 싶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내려놓고 목회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결혼한 이후 남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보았기 때문에 쉽게 동의가 됐습니다. 남편은 뭐든 저보다 잘할 것 같아 지지했어요. 지금까지 어려운 과정이 많았지만, 지금까지 잘 역할을 감당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도할 제목은 많습니다. 인간적인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도 있습니다. 파키스탄 교회를 위해 기도 부탁 드립니다”

레베카 사모는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현지 교회의 상황들을 털어놓으며 기도를 요청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로 파키스탄 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소망하며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기도 했다.

– 현재 감독직인 비숍은 교회를 섬기는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파키스탄의 전체 감리교단 성도는 1400가정 정도 됩니다. 지금 제가 섬기고 있는 교구는 중간크기로 120가정의 성도가 있습니다. 감독의 역할은 각 구역의 교회들을 섬기며 특히 세례를 집례합니다. 각 교회에 세례식이 있을 때마다 가서 세례를 줍니다. 이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고 있어요”

– 그 외에 다른 사역도 있나요?

“우리 교구에서는 학생들이 기숙하는 호스텔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시작했으며 30~3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두 개의 건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고등학생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럽 교회의 도움으로 1974년에 지어진 이 건물에서 지금은 학교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인정한 교육과정에 기독교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이 호스텔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부산에서 저희 호스텔을 후원해주시는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번에 그 교회를 방문했는데 참 크지 않은 규모에도 정성껏 후원해주시는 것을 보고 참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 한국에서 기독교학교 교육과정을 돌아보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파키스탄 현지 한국인의 추천으로 제가 방문한 학교가 복음적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단계적으로 부분적인 협력과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등교 이후부터 2시까지 정규교육을 받고, 이후부터는 호스텔에서 기독교 환경아래 교육을 받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현재 자매들이 사용하는 호스텔이 화재로 인해 수리가 필요합니다. 기도하며 주님이 다시 시작하게 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 또 다른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많은 공격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또 제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 부탁드립니다. 늘 긴장 상태에 있어서 그런지 강대상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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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학교 헤브론원형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칼림 존 비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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