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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이야기(4)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만약 빅뱅이론의 주장(빅뱅으로 우주가 배열이 되었고, 진화가 이뤄져 더 나은 생물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물질은 골고루 배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빅뱅이론의 아주 심각한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 영국의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나는 빅뱅이론에 병약한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하면 모든 것들은 무질서를 향해 가고 있다. 어떤 물체든 한동안 그냥 내버려두면 썩거나, 녹거나, 죽거나, 부서진다. 저절로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가르친다.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히 1:10~11) 아무것도 저절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사람은 20살 때는 젊고 육체도 건강하다. 그러나 90세가 되면 허리도 굽고 주름이 가득하고 피부도 거칠어진다. 그리고 3000세가 되면 먼지가 된다. 무엇이든 관리하지 않는 순간부터 낡아지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헤어진다. 이것이 열역학 제 2법칙이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사람은 아마도 40억 년 전에 살았던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했을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당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박테리아인가?
어떤 진화론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에너지를 가하면 열역학 제 2법칙을 극복할 수 있다. 또한 지구는 태양으부터 에너지를 얻는 개방계(열린 체계)이기 때문에, 지구에 사는 우리는 그 법칙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요점을 놓치고 있다.
저절로 개선되는 것은 없다
첫째로 우주는 폐쇄계(닫힌 체계)라는 것이고, 둘째로 에너지를 사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특별한 체계가 없는 상태로 에너지를 가하는 것은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일본이 어느 날 진주만에 많은 에너지를 가했다. 그러나 그 행동은 아무것도 질서 있게 해주지 않았다. 그 일로부터 몇 년 후 미국도 일본의 도시에 더 큰 오히려 에너지를 가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에게 어떤 유익을 주지 못했다. 에너지를 가하는 것은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해는 집 지붕에 에너지를 가한다. 그 에너지는 집을 망가뜨린다. 그리고 차의 지붕을 낡게 하고 차량 의자도 망가지게 하며 차 페인트를 벗겨내버린다.
사실상 태양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엽록소다. 식물의 세포 하나가 우주선보다 훨씬 더 복잡함을 아는가? 이처럼 열역학 제 2법칙을 위반하는 ‘진화’는 틀렸다.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교과서는 불가사리 화석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34억 년 전의 현대 인류의 초기 조상들의 잔해’ 우리의 조상이 불가사리라 말하는 것이다. 잡지 디스커버리 2004년 11월 판에는 ‘여러분의 조상은 바다 스펀지였습니다’라는 내용을 싣고 있다. 또 다른 교과서에는 ‘3000만 년 전에 원숭이들이 진화해서 현대 유인원과 지금의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인류가 동물에 불과하다고 가르쳐왔고, 요즘 많은 아이들은 동물처럼 행동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바바라 레놀드도 이 사실을 지적한다. “여러분의 아이가 학교에서 원숭이처럼 행동하나요? 그 이유는 그 아이가 진화론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해본 적 있는가. 당신이 믿는 것이 당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요즘 아이들은 ‘너는 그냥 동물일 뿐이다’라고 배우고, 아이들이 즐겨듣는 록 음악은 죽음과 파괴와 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잠 8:36)
5분 후에 총으로 너를 쏠 수 있어
그리고 아이들은 이제 절대적인 것은 없다고 배우고 있다. 오래전에 펜실베이니아 주의 한 공립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을 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자신은 무신론자이고 하나님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얘야, 그럼 너는 모든 것의 반은 알고 있니? 아니, 반의 반은 알고 있니? 잠시 네가 모든 것의 반을 안다고 가정해보자. 네가 모르는 그 반쪽 편에 하나님이 존재할 가능성은 있을까?”
그리고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네가 무신론자라면, 너는 옳고 그른 것을 어떻게 구별하지?” 그 아이는 자신 있게 자신 스스로가 결정한다고 대답했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우주의 하나님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어서 기쁘다. 왜냐하면 나는 5분 후에 너를 총으로 쏠 거니까” 학생이 정색하며 소리쳤다. “그러면 안 되죠!” “그래도 되지. 내가 내 우주의 하나님이고 나는 너를 쏘는 것이 괜찮다고 결정했거든!”
이 논리가 우리를 어디로 몰아가고 있는지 보이는가? 사사기에서 말하듯이, 만일 모든 사람이 자기 눈에 옳게 보이는 대로 행동하면 사회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옳고 그름을 어떻게 구별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절대적이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레 19:28) 누군가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거나, 다른 누군가는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과거에 이렇게 행하였다면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안 하면 된다. “하나님, 죄송해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용서해주세요”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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