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의 한 교회 카페에서 크리스토퍼, 캐서린 선교사 부부를 만났다. 인터뷰에 응한 그들의 첫마디는 자신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눌 게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복음스터디를 통해 행하신 하나님 이야기밖에는.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크리스토퍼(이하 크리스): “2013년에 선교지로 파송을 받아 떠났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선교지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장에 던져지고 보니 영혼의 목마름이 느껴졌습니다. I국에는 교회들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 문제해결, 기적의 하나님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교회가 많습니다. 목회자들의 열심 또한 대단합니다. 40일 금식기도도 어렵지 않게 하면서도 그것이 어느새 자기의 자랑이 되고 맙니다. 현지 목회자들과는 친구로 만난 사이였기 때문에 복음 강의를 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다만 내가 만난 복음이 이곳에도 선포되기만 바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십자가의 복음이 공급되나. 기도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 기도만 하면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누군가를 보내주시면 그분을 돕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사역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셨나요?
캐서린: “기도한 지 2년이 채 안 되어 복음학교로 국내외 성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있는 한 선교단체의 선교사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I국 남부지역 선교사들과 교제하고 싶다면서요. 저에겐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선교사님 부부가 I국에 올 때마다 날이 새도록 복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보내주시면 우리가 그분들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크리스: “그러나 언어 때문에 쉽게 오실 수 있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한국의 아웃리치팀을 보내주셔서 자신들이 준비한 복음스터디 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 막상 복음을 전해보니 저 또한 이런 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즉석에서 영어통역을 하다 보니 적당한 단어 선택이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누가 오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복음이 선포될 날을 대비해 영어로 자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역을 하면서 은혜가 넘쳤습니다. 문장들을 번역하려면 어떤 단어가 좋을까 묵상해야 했고 그 내용이 마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순서구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음에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정말 복음을 몰랐구나. 복음훈련을 받았을 때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면서 제게 큰 은혜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포할 복음을 영어로 번역하며 준비
– 먼저 복음의 수혜자가 되셨군요? 누가 오셨나요?
크리스: “계속 한국의 도움만 바라던 저희에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제가 복음스터디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알게된 현지 목회자 친구들이 “너, 복음 강의 번역하고 있다며? 우리도 공부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너무 반가운 말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친구지만 복음에 대해 깊이 나눌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은 메가 처치(Mega church)를 꿈꾸며 자신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집중되어있고 또 사역에 관한 주장을 강하게 펼칠 때면 대화의 한계를 경험케 했습니다.
그래서 외로웠고 동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런 말을 듣다니 꿈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순간 ‘번역이 다 안 됐는데, 가르쳐줄 사람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못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의 솔직한 심정을 나눴습니다. “우리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 나도 공부해야 할 사람이지 가르쳐줄 상황은 안 된다. 그러니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우리 같이 공부하자. 성령님이 우리를 왜 안 가르쳐주시겠냐?” 그렇게 성령님만을 의지하고 같이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 믿음으로 용기를 내셨군요. 그래도 스터디를 준비하는데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크리스: “3개월 동안 매주 한 번 모여 공부를 하기로 하고 첫 모임을 준비하는데 너무 긴장됐습니다. 한국에 있는 중보기도자들에게 릴레이 금식기도표를 짜가며 기도부탁도 드렸습니다. 3주 치 분량의 원고를 완성하면서 제게 얼마나 은혜가 임했는지, 저 혼자만의 부흥회를 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현지 목회자들에게 나눌 생각을 하니 내가 말해놓고 ‘복음으로 못살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복음의 영광이 가려지는 거 아니야?’ 두려움에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제가 해야 합니까?’ 시작하기 전날까지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이 이러시더군요. ‘너 정말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게 맞니?’ 곧바로 ‘네’라는 대답이 나왔는데 그러면 그걸 누가 하는거냐는 질문 앞에 서게 됐습니다. 난 죽었다고 고백하면서 내가 하느니 마느니 그러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고 나니 숨겨져 있던 제 마음이 무엇인지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두려움 이면에 복음으로 살지 못하고 안 되는 내 존재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곧바로 ‘나 죽은 거 맞고, 내 이름표가 아니라 주님 이름표 붙이고 하겠습니다’ 고백하며 주님이 하신다는 믿음으로 첫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 복음스터디를 하는 동안 어떤 은혜가 있었나요?
크리스: “자료를 나눠주고 함께 읽었습니다. 만약 이해를 못했을 땐 제가 다시 그 내용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내용에 대한 눈을 열어주시면서 저도 복음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고 그것들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모임이 진행되면서 목회자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이런 게 복음이란 것을 한 번도 못 들어봤다. I국 교회 안에 이 복음이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종이 나눠주면서 읽으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들겠습니까. 모임이 지속될 수 있을까 염려도 됐는데 목회자들의 반응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나눠주기만 하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데 그 모습을 보니 더욱 번역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됐습니다. 믿음의 실제, 죄에 관해 이야기 하면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3개월간 복음에만 집중했습니다”
– 놀랍네요. 복음을 만난 현지 목회자들은 어떻게 됐나요?
캐서린: “그들은 교회에서 복음스터디를 통해 자신들이 만난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도 목회자들이 있다. 여기서도 공부하자. 지역도 여러 곳인데다 10시간씩 떨어진 거리, 게다가 남편은 학교도 다녀야 하는 상황에 도저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짧은 시간 합숙으로 진행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목회자들도 처음 들어본다는 ‘복음’
크리스: “한국에서는 5박 6일간 복음학교를 하는데 과연 이곳에서도 그렇게 하면 현지 목회자들이 올 수 있을까? 그것도 걱정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일단 칸나다(kannada)어로 번역이 필요했습니다. 즉석에서 통역하면 제대로 통역됐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서 이 메시지가 가감 없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되도록 2개월 동안 기도하며 준비했습니다. 복음이라는 단어도 없는 칸나다어와 텔루구(telugu)어로 먼저 번역이 되었습니다. 전문 번역사들이 먼저 번역을 하면 복음스터디를 한 사람이 철저히 검수를 했습니다. 절대 복음의 농도를 희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힌디어가 그렇게 열리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그렇게 번역이 마쳐지고 4일 합숙 복음스터디가 시작됐습니다”
– 합숙 복음스터디는 어땠나요?
캐서린: “합숙훈련은 오직 복음에 집중하는 것을 돕기 위해 휴대폰을 4일간 반납하도록 하고, 약속시간에 늦는 이 나라 문화 때문에 첫 강의시간 5분만 지나도 등록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나누는 것 외에는 재정이나 선물을 주는 등의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사전 전화인터뷰를 통해 안내한 후 신청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내용을 잘 알아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소수의 사람만 받았습니다. 이들은 다 목회자인데 대충하고 나가서 나 복음스터디했다면서 지식으로만 복음을 배웠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 “물론 이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도 사람들이 과연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부담이 되어 한국 중보자들에게 금식기도 부탁을 또 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항상 못 박는 게 있습니다. ‘나는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난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도 할 때마다 배운다. 아마 내가 엄청난 죄인이라 주님이 계속 복음공부를 시키시는 것 같다’ 이 정도의 수준이지만 주님은 나눌 때마다 제가 먼저 주님의 은혜에 깊이 빠져들어 가게 하셨습니다. 덩달아 목회자들도 더 깊은 복음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스터디 1기 때가 기억납니다. 온도는 40도, 쉬는 시간 15분, 식사시간 30분. 3일째 되니까 저의 체력이 안 되기도 하고 그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쉬는 시간을 30분 갖자고 했는데 왜 30분 쉬냐, 자기들은 15분이면 된다는 말에 15분만 쉬면서 그렇게 은혜 중에 끝까지 마치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요청하는 순회복음스터디
– 복음을 사모하는 열정과 복음의 능력을 실감하게 되네요.
캐서린: “집중 복음스터디라는 이름으로 처음 모였던 사람들이 헤어지면서 이 복음의 물결이 I국 안에서 일어나길, 성령님이 일으켜주시길 기도했습니다. 근데 또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도 집중 복음스터디를 해달라고요. 여기저기 가야 하니 한꺼번에 갈 수도 없고 결국은 1개월에 한 번씩 순회하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크리스: “그렇게 한 기수, 한 기수 진행되면서 더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복음을 이렇게 모르고 있었구나. 복음 내용을 들으면서 살아왔고 책도 읽고 복음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삶은 복음으로 전혀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내가 복음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손해인지 깨닫게 되었죠. 또 현지 목회자들과 복음을 나누는 것도 기쁨이 되었지만 이 복음스터디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 부부는 죽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게 우리의 생명이고 기쁨입니다”
– 어떤 부분에서 두 분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셨죠?
크리스: “진짜 안 되는 것은 거룩한 삶이나 복음을 내가 살아내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다른 영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데 아내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일어나는 미움은 해결이 안 되더군요. 기도할 때 하나님께 아내를 참소했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기도 아닙니까. 그때 한 목사님의 책을 통해 부부관계를 통해 자아추구가 분명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내와 부딪칠 때 사랑으로 품어지지 않는 것은 내 뜻대로 해주지 않아서, 결국 나를 위해 미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꿈꿔왔던 믿음의 가정, 믿음의 아내, 선교사. 이런 그림대로 맞춰주지 않으면 답답하고 분노했습니다. 이건 아내를 향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자아추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을 나누면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한 나를 보면서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찾아와주셨습니다. ‘너 아직도 복음으로 너를 고치고 개선해서 완전한 너를 만들고 싶어하니?’ 그런데 말씀은 나를 고치는 게 아니라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고 이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을 통해 새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함을 입는 은혜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한번 새 생명을 받고 그것으로 사는 것이 아닌, 계속 솟아나는 샘물같이 계속 새로움을 받고 계속 새로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질그릇인 내가 아닌 예수님께만 소망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예수의 새 생명이 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이루어가실 것이기 때문이죠”
<이상 복음기도신문 186호 게재>
– I국에 대한 어떤 비전이 있으신가요?
캐서린: “우리의 궁극적인 비전은 현지 교회와 목회자들이 복음으로 서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외국인 선교사가 끌어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복음스터디를 하신 한 목회자가 ‘I국 교회를 위해 복음에 헌신하고 싶다. 내가 복음에 더 깨져야 한다’면서 먼저 찾아와주셨고 기도하면서 I국 복음기도선교회를 세웠습니다. I국 교회 안에 복음이 회복되고 이곳에 많은 미전도종족들에게 I국 목회자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I국 목회자를 선교사로 훈련하는 센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각 언어권별로 복음의 메신저들이 세워지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크리스: “현지 목회자들은 복음스터디를 통해 복음을 총체적으로 공부한 후 교회에 돌아가 교우들에게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쉽지 않습니다. 복음스터디 한번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목회자 스스로도 복음으로 살아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일단 먼저 한 주간 열방을 위해 기도하는 느헤미야52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되는 목회자들이 모여 기도를 시작했고, 지방에 있는 목회자들을 위해 칸나다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제가 그 모든 교회를 방문하며 다닐 수 없다는 것인데 동역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고 저도 한 교회씩 방문하여 함께 기도할 계획 중에 있습니다”
-기도제목 있으면 나눠주세요.
크리스: “I국복음기도선교회는 이제 막 세워진 상태인데 이곳에서 I국의 리더십이 세워지고 십자가 복음의 생명력 있는 스피커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캐서린: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분들도 저희가 복음 안에서 세워져가는 것처럼 함께 세워져가도록 기도해주세요. I국 선교기도모임으로 모여서 기도하시는데 현장에 있으면 기도로 공동운명이 되었다는 것을 느껴요. 그렇게 주 안에서 한 생명으로 I국 영혼들이 돌아오기까지 함께 달려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크리스토퍼 선교사의 못 다한 이야기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준비하는 과정 중에 주님은 나의 교만을 철저히 깨뜨리셨습니다. 전 잘난 척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적을 잘 했기 때문에 윗사람들과도 잘 부딪쳤는데 선교를 준비하며 나의 이런 모습을 직면하고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내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숨겨져 있는 자신감도 무너졌습니다. 나 선교사로 준비가 안됐구나.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C형 간염검사에서 양성이 나와 다시 재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불치의 병으로 사망에 이르기에 빠른 병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빨리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애들은 어떡하지? 부모님은 괜찮으실까.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죽을 준비를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 맡겨드리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오진이었습니다. 아니, 오진하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 마음이 그냥 준비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이 이 일로 저를 빚어가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락하심이 최선이다
저는 아내보다 1년 먼저 I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먼저 나가 현지에 적응하면 좋겠다는 담임목사님의 권유에서였습니다. 사실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왜 가족하고 떨어져있어야 하나. 내가 적응한다 해도, 아내도 다시 적응하는 기간을 또 거쳐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최선이라는 말씀을 붙들게 되어 믿음으로 그 땅을 밟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살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이 같이 왔으면 언어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을 겁니다. 현지인들과도 친구가 아니라 선교의 대상으로만 대했을 겁니다. 선교단체 베이스캠프에서 현지 목회자들과 지내면서 영어를 하며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복음스터디 번역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 선교사로 준비된 사람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를 누리면서 사는 것이지 사역한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주님은 저를 잘 아셨습니다. 복음을 생명으로 만나지 못한 제가 선교지에서 복음을 번역하다 복음을 만났으니까요. 전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복음 전하는 일에서 빠졌을 겁니다. 그렇게 기다린 사람이 오지 않았던 것은 주님의 완전한 조치였습니다. 제가 복음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 땅의 영혼들이 복음을 듣겠다는데, 이 복음이 나눠져야겠는데 어쩌겠습니까. 저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상황은 완전했습니다.
이 땅은 많은 종족이 함께 살고 있고 언어도 다 다릅니다. 그래서 각 종족 언어로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땅끝에서 주님 맞을 준비 하겠습니다.”
Y.K.